주역 필사 - 오늘의 태도로 내일을 읽는 시간
김동완 지음 / 양양하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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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무언가를 빨리 결정해야 할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만 같은 마음이 자주 든다.

그런데 정작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주역 필사』는 바로 그런 순간에 조용히 말을 건네는 책이었다.

오래된 고전인 『주역』을 어렵게 풀어 설명하기보다, 주역의 64괘를 따라 삶의 흐름을 천천히 짚어 가며, 삶의 갈림길 앞에 선 사람이 문장을 따라 쓰면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든 필사 노트다.

이 책은 흔히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주역을 한층 가까운 자리로 데려온다.

주역이라고 하면 먼저 한자와 해석, 난해한 철학부터 떠올리게 되지만, 이 책은 그 부담을 조금 내려놓게 한다. 주역은 누군가에게 정답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라, 변화하는 삶의 흐름 속에서 지금 내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비춰주는 책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기다려야 할 때인지, 나아가야 할 때인지, 잠시 물러서야 할 때인지 섣불리 답을 내리기보다,

지금의 형국을 찬찬히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주역 필사』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읽기’보다 ‘쓰기’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필사는 단순히 문장을 베껴 적는 일이 아니라, 눈으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문장을 손으로 붙잡아 마음속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하는 방식이다.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오히려 또렷하게 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 줄 한 줄 따라 쓰다 보면, 문장이 어느 순간 내 마음의 상태와 맞닿으며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이 책은 주역의 64괘를 필사라는 형식으로 차근차근 만나게 하면서, 고전을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시간으로 바꾸어 준다.

이 책에 실린 괘들의 문장도 무척 단단하게 느껴진다.

건괘는 스스로 움직이며 멈추지 않는 하늘의 리듬을 통해 삶에서 끝까지 바름을 지키는 태도를 이야기하고, 곤괘는 앞서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부드러움과 수용의 힘을 말해준다. 또한, 둔괘는 시작의 혼란을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흐름이 열리기 전의 자연스러운 진동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쓰는 시간은 고전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수괘의 문장이었다.

수괘 | 需 有孚 光亨 貞吉 利涉大川

기다림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 빛나고 형통하며,

바름을 지키면 큰 내도 건널 수 있다.

수(需)는 하늘 위의 구름처럼

멈추어 있는 듯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형상이다.

길은 막힌 듯 보여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멈춤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때를 모으는 과정이다.

수는 말한다.

때는 스스로 무르익으며,

성급함은 흐름을 거스른다고.

막혀 있던 물도 자연스레 흐르듯이

믿음을 갖고 준비하면

기다림 끝에 큰 내도 건널 수 있다.

이 문장은 요즘의 내 상황을 떠올리게 하며 유난히 깊이 들어왔다.

조바심은 나는데, 그렇다고 분명한 방향을 잡고 있는 것도 아닌 시간을 지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한데, 그렇다고 무작정 서두를 수도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럴 때 기다림은 자꾸 공백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기다림을 멈춤이나 지체가 아니라, 때를 모으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도 내면에서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고,

믿음을 잃지 않고 바름을 지키며 준비하는 시간이 결국 큰 물길을 건너게 한다는 뜻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이 문장은 단순히 좋은 구절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처럼 느껴졌다.

『주역 필사』는 삶을 선명하게 정리해 주는 책은 아니다. 대신 복잡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스스로에게 한 번 더 질문하게 만든다. 오늘 나는 어떤 시작 위에 서 있는지,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어떤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주역이 64괘의 문장을 따라 쓰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가까워지고,

낯설었던 문장이 어느새 내 하루를 붙잡아 주는 힘이 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참 조용히 깊은 울림을 남긴다.

'헤세드의 서재' 님을 통해 '양양하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5. 수괘 | 需 有孚 光亨 貞吉 利涉大川
기다림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 빛나고 형통하며,
바름을 지키면 큰 내도 건널 수 있다.

수(需)는 하늘 위의 구름처럼
멈추어 있는 듯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형상이다.

길은 막힌 듯 보여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멈춤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때를 모으는 과정이다.

수는 말한다.
때는 스스로 무르익으며,
성급함은 흐름을 거스른다고.

막혀 있던 물도 자연스레 흐르듯이
믿음을 갖고 준비하면
기다림 끝에 큰 내도 건널 수 있다.

기다릴 줄 아는 용기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내면을 다지는 시간이다.

오늘의 사유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이 시간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지금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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