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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카트린 벵사이드.장이브 를루프 지음, 박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사랑을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내가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지(혹은 사랑이라고 믿는지)를
정신분석과 영성의 관점에서 차근차근 풀어주는 인문 심리 에세이다.
연애나 관계 조언처럼 단정적으로 답을 내리기보다는,
사랑을 둘러싼 내 마음의 구조와 관계의 습관을 질문으로 정리해준다.
서문 첫머리에 인용된 카뮈의 말 ㅡ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이다.”는
이 책 전체를 요약하기에 꽤 정확한 문장 같다.
이 문장에서 말하는 사랑하는 법은 그저 다정하게 말하고 잘해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저자들이 말하는 사랑은, 상대를 통해 내 결핍을 메우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를 나와 다른 한 사람으로 대하면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태도다.
그러니까 카뮈의 문장은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랑하는 방식이 삶을 바꾼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내가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할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사랑이란 말이 너무 익숙해져서 오히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준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저자 조합부터 다르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 다른 한 사람은 사제이자 신학·철학·심리학을 공부한 학자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두 사람 모두 정신분석과 영성에 관심이 깊다.
그래서 사랑을 다룰 때도 마음의 상처와 욕망(임상)과 삶의 의미와 관계의 태도(성경/영성)를 같이 놓고 본다. 사랑을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타인을 향한 마음(사랑의 대상)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사랑의 주체)를 동시에 살피는 방식이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한다.
“사랑해”라고 말하면 설명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저자들은 오히려 묻는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에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내가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기준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모습이 다르듯, 사랑하는 방식도 다양할 텐데
우리는 혹시 한 가지 방식만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닌가?
책에서 반복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갈증’이다.
사랑은 때때로 설렘보다 결핍에서 시작된다. 내가 외로울 때, 내 삶이 불안할 때, 누군가가 그 빈자리를 채워줄 것처럼 느껴질 때 사랑은 더 강해진다. 저자들은 이런 상태를 너무 큰 사랑의 갈망 때문에 나도 상대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갓난아기에 비유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당장 이 목마름만 해결하고 싶어지는 상태다. 그래서 사랑이 아름다운 감정인 동시에, 쉽게 흔들리고 아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좋은 건 여기서 ”그렇다면 사랑하지 마!”로 단정적으로 결론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랑을 고독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쓰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말해준다.
고독을 샘물을 찾지 못하는 목마름으로 설명하고,
사랑을 그 목마름을 적셔주는 샘물에 비유한다.
핵심은 그 샘물이 기대를 채우기 위한 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사랑을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상대가 ‘상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인정과 존중에 가깝다.
장이브 룰루프의 서문은 관계를 더 또렷하게 정리해준다.
“둘이 있으면 반드시 세 번째가 있다”는 말처럼,
모든 관계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둘을 이어주거나 구별해주는 ‘제삼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없으면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사라지는 밀착(융합)이 되거나, 서로를 밀어내는 대립(배척)으로 흐르기 쉽다.
결국 성숙한 사랑은 너와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만들고, 그 거리에서 우리가 자랄 수 있게 하는 관계에 가깝다.
“우린 취향도 똑같아, 너무 잘 맞아”로 시작한 관계가 시간이 지나며,
“왜 넌 그걸 안 해?” “네가 좀 더 이랬으면 좋겠어”로 변해가는 과정을 다룬다.
처음에는 상대를 내 꿈에 맞춰 해석하다가, 결국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해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상대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상대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결국 내가 사랑한 건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불편한 결론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랑을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을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더 건강하게 만든다.
사랑이 의존으로 변하지 않게, 환상이 상대를 지우는 방식이 되지 않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해”라는 말이 끝맺음이 아니라 상대를 더 잘 알아가기 위한 시작이 되게 해준다.
결국 카뮈의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사랑하는 법’은 상대를 붙잡는 방법이 아니라,
내 결핍을 먼저 알아차리고 상대를 나와 다른 사람으로 존중하며 둘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사랑이 삶을 흔들기도 하지만, 제대로 사랑하는 방식은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고 삶을 넓혀준다. 이 책은 그것을 감정이 아닌 질문과 사례와 사유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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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이 불친절한 세상에서 둘이 되어 함께 길을 가며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인생의 달콤함과 고됨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독이 야기하는 두려움을 치유하기 위한 사랑의 조급한 추구는 우리를 영원히 혼자 있게 할 수도 있다. 먼저 온전한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어떻게 둘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가 내게 새로운 삶을 선사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로서 또 다른 살아 있는 존재를 만나는 것뿐이다. 내게는 나 혼자 감당해야 할 고독이 있고, 그에게는 자신만의 고독이 있는 법이다. 자신의 ’혼자 있음’을, 자신의 존재가 유일함을 인정할 때만이 비로소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유일한 존재이다. 따라서 둘이 되기 전에 먼저 하나임을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열어 보이고, 그와 하나로 합쳐지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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