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3 - 박경리 대하소설, 4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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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3권』은 4부 1편은 1929년 조선. 3·1운동 이후 품었던 희망이 현실의 쓰라림과 체념으로 기울어가던 무렵이다. 원산 총파업과 광주학생항일운동 같은 움직임이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은 분명 굵직한 역사이지만,

이 권에서 더 오래 남는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안의 사람이야기다.


이 책은 도입부부터 분노를 건드리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조선인은 게으르다”, “조선에는 웬 거지가 이리 많으냐” 같은 말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는 장면은, 무례한 개인의 발언을 넘어 약탈과 착취로 만들어진 결과를 조선인에게 책임지우는 식민 권력의 논리처럼 느껴졌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들의 폭력은 늘 ‘정당한 조치’처럼 포장되고, 그 결과로 생기는 피해는 조선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분위기다. 그런 공기 속에서 강쇠는 길에서 시비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상대가 일본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가해자로 둔갑해 유치장에 갇힌다.

이런 부당함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점점 말을 잃는다. 억울함을 설명할수록 더 불리해지는 세계에서, 분노는 밖으로 터지지 못하고 안쪽으로 쌓여 마음을 곪게 만든다.


13권이 인상적인 건 주요 인물뿐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인물에게도 각자의 서사를 붙여,

식민지 조선인의 삶을 다각도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도 고향을 떠나지 못한 채 멸시를 견디던 한복이,

학생운동으로 잡혀간 아들 때문에 영웅의 아비라는 이름을 얻는 아이러니.

가진 것이 무거워 죄의식을 느끼는 환국,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 방황하는 윤국,

평생 되찾아온 최참판댁의 집과 재산이 아들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걸 직감하며 마음이 흔들리는 서희.

여기에 종교를 붙들고도 한계를 실감하는 전도부인 여옥,

일본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하는 오가타 지로,

그를 사랑하면서도 일본인과 결혼할 순 없다며 스스로를 끝까지 조선인으로 세우는 인실

ㅡ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삶의 온도는 다르지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가 만들어 놓은 한계와 부딪치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환국의 내면은 13권이 던지는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남보다 더 가졌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고백은 단순히 ‘특권층의 반성’으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환국이 느끼는 감정은 부유함에서 오는 여유보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고립감에 더 가깝다. 우월감을 누리기보다는 소외감을 더 많이 느꼈다는 말 속에는, 특권이 삶을 편하게 만들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오히려 벌려 놓는 역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읽는 나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죄의식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출발점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갉아먹는 감정일까?

『토지』는 이 질문에 쉽게 결론내리지 않는다. 환국이 죄의식 때문에 더 단단해지는지, 혹은 더 약해지는지 판단을 독자에게 남겨 둔 채, 그의 흔들림과 고민을 끝까지 따라가게 만든다.


토지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쯤에서 또렷해진다. 이 소설은 선과 악을 “강자는 악, 약자는 선”처럼 간단한 구도로 정리해주지 않는다. 그런 도식은 읽는 사람에게 빠른 판단과 편안함을 주지만, 『토지』는 그 편안함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13권에서 환국과 장서방 등이 주고받는 대화에는 이런 질문이 깔려 있다. 힘을 가진 쪽이 언제나 악한가, 반대로 약한 쪽이 언제나 정의로운가. 소설은 ‘빼앗고 빼앗기는’ 관계에서는 강자가 악처럼 보이지만, ‘이룩하고 다스리는’ 과정에서는 책임을 지고 질서를 세우는 강자가 선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약자라고 해서 모두 선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에 기대어 기생하거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태도는 악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이 대목이 불편한 건, 우리가 흔히 쓰는 판단의 프레임을 흔들기 때문이다. 정의감이 강할수록 세상을 단순하게 나누고 싶어진다. 그런데 『토지』는 “누가 강자냐, 누가 약자냐”가 아니라, 무엇이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세우는가, 무엇이 사람을 소모시키고 공동체를 망가뜨리는가를 기준으로 다시 보라고 요구한다. 읽는 동안 마음이 자꾸 불편해지는데, 그 불편함이 오히려 내가 가진 판단의 틀을 점검하게 만든다.

여옥의 고백을 따라가면, 이 질문은 종교의 문제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넓어진다.

여옥은 전도부인으로서 ‘봉사’와 ‘희생’이 진심이라 믿고 달려왔지만, 현실에서는 교회가 순수한 믿음의 자리로만 남지 않는 장면들을 목격한다. 사람이 모이고 조직이 커지면서, 신앙은 어느새 계층과 체면을 확인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같은 ‘좋은 말’을 입에 올리더라도, 누군가는 그 말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행동하고, 누군가는 말로만 체면을 세운 채 아무 일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여옥의 고백은 단순한 신앙의 회의가 아니라, 이런 질문으로 이어진다.

공동체 안에서 ‘옳은 말’이 힘을 가질수록, 우리는 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그 말은 사람을 살리고 있는가? 아니면 보기 좋게 포장하고 있을 뿐인가?

『토지』는 이 문제를 ‘교회’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지만,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의 조직과 관계로 확대된다.

학교든 회사든 모임이든, 말이 화려해질수록 더 중요해지는 건 그 말이 실제로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말 아래에서 누가 소외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오래 시선을 붙잡은 건 길상과 용이었다.

길상은 이 권에서 직접 등장하는 분량이 거의 없는데도, 그의 ‘부재’가 사람들의 선택과 마음을 계속 움직인다.

존재감이란 행동의 총합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남기는 방향성으로 결정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용은 영웅도 지도자도 아니다. 그저 농사짓고 가정을 지키고 이웃을 돕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삶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것 같다.

거대한 정의의 언어보다, 도리를 지키는 매일의 반복이 더 현실적인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용을 통해 조용히 보여준다. 사회를 버티게 하는 건 때때로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작은 약속과 반복된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서희의 변화는 시간이 사람을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모습이다.

젊은 날의 서희가 투쟁과 집념으로 버텼다면,

이 권의 서희는 장성한 아들들 앞에서 더 이상 예전처럼 모든 것을 붙잡아 둘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한다.

아들들이 각자의 길로 멀어질수록, 어미로서의 외로움은 더 또렷해진다.


최참판댁의 집과 땅은 서희에게 삶의 뿌리이자 기억이 쌓인 자리다.

하지만 동시에, 지키기 위해 끝없이 마음을 소모해야 하는 짐이 되기도 한다.

무엇인가를 손에 넣는다는 건 그만큼 잃을 가능성도 함께 떠안는 일이라는 사실을,

서희는 점점 더 선명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소유는 흔히 안정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토지』는 소유가 때로는 책임이 되고, 어떤 순간에는 상실로 이어지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소유했는지, 또 무엇을 소유했기 때문에 잃게 되는지—서희가 흔들리는 장면들은 그 역설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드러낸다.


『토지 13권』은 사건보다 사람들의 삶을 통해 시대를 보여준다.

강쇠의 억울함, 환국의 흔들림, 용의 성실함처럼 이름 없는 사람들의 작은 삶이 겹겹이 쌓여 비로소 한 시대의 진짜 모습이 만들어진다. 결국 이 소설은 역사를 만든 힘이 사건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살아내려는 인간의 선택과 책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chae_seongmo

@dasanbooks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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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복락을 얻기 위하여 산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인 한에서는 복락은 축복이 아니다. 개인이나 민족을 막론하고 간악한 곳에 복락이 있었으니 말이야. 어찌하여 악한 자가 복락을 누리며 착한 자가 바람 부는 벌판에서 울어야 하는가, 참 많은 사람들이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했어. 과연 하나님은 계신가. 옛날 오선권이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아놓고 갔을 때 밤마다 하나님은 계신가 하고 울부짖었다. 잃은 사랑 때문에 아니었어. 하나님은 계신가, 그것은 진실이 있는가 영혼이 있는가 그 물음이었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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