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괜스레 물어본다 다시 시인들 10
박찬호 지음 / 다시문학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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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괜스레 물어본다』를 읽으면서,

그리움과 체념, 그리고 아주 조심스러운 희망 같은 감정들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시를 읽는 동안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게 했다.

이 시집에서 인상적이었던 시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입버릇처럼〉

눈길이 미끄러웠나 봅니다

다리의 힘이 점점 빠진다더니

돌아오는 길에 넘어져

흉골 한 대와 늑골 두 대

금이 갔다는군요

맨날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니

숨을 쉬기가 힘들대요

별 약도 없다네요

그냥 무리하지 말고 누워서

뼈가 자연적으로 붙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대요

뭐 별수 있나요?

그이 삶이 그렇듯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요

입버릇처럼 주저리더니

죽을 날이 빨라지는 것과

뼈가 붙을 날이 빨라지는 것이

결국 같은 얘기란 걸

이제야 알았다네요

나 원 참

예 들어가세요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이게 단순히 다친 사람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다친 것보다 그 사람의 삶이 방식이 더 오래 남는다.

'그이 삶이 그렇듯이 /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요'라는 구절이 특히 그랬다.

뭔가를 적극적으로 고치거나 바꾸려 하기보다,

상황이 지나가기를 견디듯 버티는 태도처럼 보인다.

살다 보면 정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몸이 아픈 것도, 삶이 고단한 것도 다 그냥 그런 거지 뭐하며 넘겨버리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죽을 날이 빨라지는 것과 / 뼈가 붙을 날이 빨라지는 것이 / 결국 같은 얘기란 걸'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회복과 쇠락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 속에서 같이 흘러간다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시는 웃기게 끝나지만 전혀 웃기지가 않았다. 담담해서 더 아픈 시 같은 느낌이다.

〈떨어진 열매에 대해〉

물어본다고 아는 것도 아니었고

안다고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괜스레 한마디 물어본다

마지막 가을볕은 따가웠고

제법 바람이 차가운 오후에도

당신의 손은 따뜻했다

힐끗 보면 소나무 같고

자세히 보면 잣나무 같은

저 나무에 대해

저 나무의 떨어진 열매에 대해

물으면서도

대답하면서도

우리는 서로 답을 알고 있지만

단답형의 답이 두려워

다시 물음으로 대답했다

뭐지?

글쎄?

마음속 가문비나무는

그렇게 익명의 나무로

그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

이 시는 읽자마자 어떤 관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다른 말을 꺼내는 순간들.

진짜 묻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괜히 엉뚱한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시간들 말이다.

특히 '단답형의 답이 두려워 / 다시 물음으로 대답했다'는 구절이 묘하게 와닿았다.

우리가 관계 안에서 얼마나 자주 이렇게 도망치듯 말하는지, 이 시는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음속 가문비나무는 / 그렇게 익명의 나무로 / 그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는 문장은,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 정리하지 못한 관계, 끝내 꺼내지 못한 마음 같은 것들이

모두 그 ‘익명의 나무’ 안에 조용히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시끄러운 밤을 보낸 날일수록 잠은 오지 않았고

울다가 지친 날일수록 오히려 정신은 더 맑았지요

그러면서 매년 그랬지요

이 겨울이 지나면 돌아가겠다고

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기분은 오히려 더 좋지 않았어요

부드러운 바람은 불지 않았고

단지 해만 높이 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이제 다시 떠날 준비를 해야 해요

올겨울이 지나면 꼭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죠

사실 매년 그랬습니다

내일은 눈이 올지도 몰라요

그러면 기분은 좋아지고

바람은 부드러워질 테니

그러면 정말 떠날 수 있을 듯해요

당신이 계신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해요

이 시는 이 시집의 제목이 왜 이렇게 붙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라고 느꼈다.

날씨는 맑은데 기분은 더 가라앉는 날.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우울해지는 날.

'울다가 지친 날일수록 오히려 정신은 더 맑았지요'라는 문장은 정말 많은 밤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의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이 꼭 좋은 순간은 아니라는 걸 이 시는 자연스럽게 말해준다.

그리고 '매년 그랬습니다'라는 반복이 너무 슬펐다.

돌아가겠다고 말하면서, 결국은 매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돌아간다는 말이 꼭 물리적인 장소만을 말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돌아간다는 건, 마음이 향하던 곳과 관계의 자리,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을 통째로 부르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괜스레 물어본다』는

상실, 기억, 관계, 그리고 이유 없는 감정들을 다루는 시집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 아주 조용하다. 울부짖지도 않고, 위로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런 마음도 있다는 걸 인정해 주는 쪽에 가깝다.

<시집을 관통하는 정서>

-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

- 끝내 말하지 못한 감정

- 회복되지 않아도 계속 흘러가는 삶

- 떠난 사람을 마음속에 남겨두는 방식 같은 것들

나는 이 시집이, 삶을 먼저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써 내려간 시들처럼 느껴졌다.

직접적으로 죽음을 말하지 않는데도, 이미 떠난 누군가의 그림자가 시집 곳곳에 조용히 깔려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내 삶의 어떤 장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이 시집은, 왜 우리는 날이 맑아도 괜히 슬퍼질까.

왜 이미 아는 답을 두고도 또 물어보게 될까.

왜 회복을 말하면서도, 마음은 자꾸 쇠락 쪽을 더 자주 떠올릴까.

하지만 이 책은 그 질문들에 굳이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얼굴로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쪽에 가깝다.

나는 이 시집이 마음이 괜히 무거운 날, 이유 없이 누군가가 그리운 날,

아무 일도 없는데 자꾸 과거가 떠오르는 날 펼쳐보기 좋은 책이라고 느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박찬호 네번째 시집/다시문학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메멘토 모리

사랑해
잘 가
걱정하지 마
그동안 고마웠어
감사했어요
아파도 괜찮으니까
그냥 오래오래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거예요
희망을 품고
두려워 말고
편히 가세요

그 병동에서
매일
울려 퍼지는 공명共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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