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타지 않는 삶 - 서른, 제네바에서 배운 흔들리지 않는 삶의 태도
안상아 지음 / 자크드앙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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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결혼을 계기로 스위스 제네바에 살게 되면서, 낯선 도시 안으로 직접 들어가 부딪히며 살아낸 시간을 일기처럼 풀어낸 기록이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스쳐 가는 풍경이 아니라,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일상 속에서 관계를 다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삶의 기록에 가깝다. 언어를 익히기까지의 막막함, 친구를 만들기 위해 실제로 움직이고 시도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저자가 새롭게 정리해 나간 생각들이 차분하게 이어진다.

유행을 타지 않는 삶(유타삶)은 ‘잘 산다’는 말을 다시 정의해 보려는 한 사람의 생활 실험이자 솔직한 고백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서른 초입까지의 삶에 큰 불만이 없었다고 말한다. 재능과 노력을 어디에 쓸지에 대한 계획, 결혼을 약속한 연인, 사회적으로 무난히 굴러갈 수 있는 기술과 태도를 갖췄다고 믿었다. 하루는 안정적으로 반복되었고, 삶은 매끈한 동그라미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안정이 안주가 되어 권태로 변해 있음을 깨닫는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동그라미는 익숙함이 만들어 낸 착각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그는 다른 모양의 삶을 직접 살아보고 싶어진다. 사각형이나 세모가 아닌,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낯선 모양으로.

그 실험의 무대가 된 제네바에서 저자는 말 그대로 배수진을 친다. 불어를 알아듣지 못해 대화를 눈빛과 손짓으로 짐작해야 했고,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따라붙던 역할과 설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는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감각이 들어섰지만, 동시에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지?’라는 질문이 고개를 든다. 특히 남편의 출장으로 혼자 남아 2박 3일 동안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날,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고백은 저자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한 계기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기에 자유롭지만, 동시에 나라는 존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은 언제든 쉽게 지워질 수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솔직하게 글로 풀어낸다.

이때 저자가 선택한 방식은 ‘증명하지 않는 삶’이었다. 과거와 미래를 내세워 자신을 설명하는 대신, 순간을 먼저 살아보고 그 안에서 답을 찾는 귀납적 방법. Here and now. 그래서 SNS 사용을 줄이고, 한국어를 쓰는 순간 시공간이 다시 한국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들어 한국 친구들과의 연락도 의도적으로 줄여 나간다. 백지 인생을 살아볼 기회라 여겼지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는 달콤한 동시에 차가웠다. 곧 그는 지금 여기에서의 존재감을 스스로 붙잡아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출발점은 아주 가까운 일상이었다. 집안일과 생활의 루틴, 매일 반복되는 식탁과 공간 정리. 저자는 제네바에 도착해 가장 먼저 공을 들인 일이 집안일이었다고 말한다. 헌신이나 봉사로 여겨지기 쉬운 이 일이, 오히려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자립적인 일이 되었다는 고백은 인상적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루를 스스로 붙잡아 세우는 감각, 그 안에서 그는 ‘쓸모 있음’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한다.

이후 삶의 과제는 관계로 확장된다. 언어를 배우고, 돈을 벌고, 친구를 만드는 일. 특히 친구를 만들기 위해 언어 교환 앱을 설치하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금 당장 내세울 수 있는 가치로 삼아 실제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은 현실적이고 솔직하다. 낯선 도시에서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막연한 용기가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이는 태도라는 점을 저자는 스스로의 경험으로 보여준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그 사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통로였기 때문이다.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태도는 ‘손해 보기 싫은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상처받기 싫어 다가가지 못하거나, 먼저 손을 내밀면 약해질 것 같아 멈추는 태도들이 결국은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시간과 에너지,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서 돈까지도 투자한다. 그 결과는 즉각적인 숫자로 환산되지 않지만, 낯선 공간에서 쌓인 신뢰와 분위기를 통해 ‘나도 이 도시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남는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불필요한 감정 낭비를 줄이는 연습이다. 애초부터 내 존재를 가볍게 여긴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기, 통제할 수 없는 일은 흘려보내기. “이 고민이 정말 내 시간을 들일 만큼 가치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은 인간관계를 넘어 삶 전체를 한결 가볍게 만든다. 집착과 조급함, FOMO에 대한 이야기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간절할수록 어긋나는 마음, 남들이 정해 둔 타이밍에 휘둘리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의식적으로 힘을 빼는 태도를 배워 나간다.

『유행을 타지 않는 삶』이 말하는 ‘유행을 타지 않음’은 세상과 등을 지는 일이 아니다.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구분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리듬을 지켜내는 일이다. 하늘을 바라보되 두 발은 땅에 단단히 붙이고, 균형을 잃지 않는 삶. 이 책은 더 멋진 사람이 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내 삶의 모양을 하나로 고정해 두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설계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유행처럼 소비되기보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조용히 다시 펼쳐 보게 되는 기록으로 남는다.

'자크드앙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Fuis-moi, je te suis.
Suis-moi, je te fuis.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곱씹을수록 너무 정확해서 소름이 돋았다.

당신이 나를 피하면 내가 당신을 쫓고,
당신이 나를 쫓으면 내가 당신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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