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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는 밤 - 그림과 문장과 삶을 엮은 내 영혼의 미술관
이소영 지음 / 청림Life / 2025년 12월
평점 :
일이 한꺼번에 몰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난 날이었다.
빼곡한 글을 더 읽기엔 마음이 먼저 지치는 것 같아, 조금 가볍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책을 찾다가 『그림 읽는 밤』을 골랐다.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손이 갔다. 예쁜데, 그 예쁨이 과하지 않고 조용히 마음을 끌어당기는 책이었다.
책을 펼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그림은 칼 라르손의 〈부엌, 집으로부터〉였다.
부엌 한가운데 서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이 시선을 붙잡는다. 언니가 동생을 챙기는 듯한 아주 짧은 순간을 담은 그림인데, 그 찰나 안에 집이라는 공간의 공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냄비가 놓인 가스레인지, 창문으로 스며드는 바람, 슬쩍 밖으로 나가려는 고양이까지. 그림 속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마도 우리가 기억하는 삶의 대부분이 이런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 등장하는 시네이 메르세 팔의 열기구 그림은 분위기를 바꾼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열기구 위의 인물. 목적지에 닿지 않은 채 떠 있는 모습은 불안함을 품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불행해 보이지도 않는다. 열기구 밖으로 몸을 내밀어 주변을 바라보는 모습 때문일까.
이 그림은 목적지를 보여 주기보다, 흘러가는 시간에 머무르게 한다. 앞날이 분명하지 않아도 잠시 쉬어 가도 괜찮다는 걸, 말없이 전해 주는 그림처럼 느껴졌다.
에바 곤잘레스의 〈침실에서〉는 아주 고요하다.
매일 같은 침실, 같은 커튼. 하지만 오늘의 빛은 어제와 다르다. 우리는 늘 비슷한 하루를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일 조금씩 다른 하루를 지나고 있다는 걸 이 그림은 부드럽게 알려 준다.
그리고 ‘시작’은 거창한 결심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순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데서도 충분히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언덕을 달려 내려오는 베렌스키올드의 그림을 보며 문득 웃음이 났다.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왜 달리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달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아이들은 누군가의 미래로 준비된 존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언젠가 우리도 저런 시간을 지나왔다는 사실이 괜히 마음을 건드린다.
이 책을 읽으며 자주 멈춰 서게 된 이유는 그림뿐만 아니라, 그 옆에 적힌 짧은 문장들 때문이기도 하다.
아포리즘처럼 놓인 문장들은 그림의 여운을 길게 끌고 간다. 어떤 문장은 밑줄을 긋게 만들고, 어떤 문장은 그대로 옮겨 적고 싶어진다.
페이지 아래 남겨진 빈 줄을 보며, 이 책이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사람의 생각도 이 책 안에 남겨도 괜찮다고, 조용히 허락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책이 익숙한 이름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란츠 폰 슈투크, 니콜라에 토니차, 요제프 리플 로나이, 레옹 스필리에르트, 스탠리 스펜서, 장 조프루아, 앙리 루소, 피에르 보나르, 페데리코 잔도메네기,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오딜롱 르동, 니콜라 드 스탈, 파울 클레, 맥스필드 패리시 등.
각기 다른 나라와 삶을 살아온 화가들의 그림이 이 한 권 안에 담겨 있다.
자주 접하지 못했던 그림과 여운을 남기는 글들은 자연스럽게 생각이 머무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화가들의 삶과 그림을 함께 읽다 보면, 막연하게 느껴지던 그림이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어렵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림 읽는 밤』을 읽고 나니 이미 지나온 하루를 조금 더 잘 바라보고 싶어졌다.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일보다, 있었던 것들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도, 내용도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오래 두고, 밤마다 조금씩 꺼내 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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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림라이프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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