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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2 - 박경리 대하소설, 3부 4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토지 12권을 읽는 동안,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보다
이미 일어난 일들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계속 보는 느낌이었다.
큰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지만, 그 사건들은 늘 조용히 처리된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남는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애도할 시간도 없이 다시 살아가야 한다.
가장 먼저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건 환이의 죽음이다.
강쇠는 환이를 떠올리며 “성님답게 죽은 기라”고 말한다.
울먹이면서도 그 말이 나오는 걸 보면,
환이는 끝까지 자기 길을 바꾸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듯하다.
하지만 그 말 뒤에 이어지는 강쇠의 독백은 더 씁쓸하다.
이제 남은 건 늙은 혜관과 관수뿐이고,
“우리 당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일 기다”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이 장면을 읽으며, ‘옳게 살았다’는 말과 ‘이룬 것이 있다’는 말이
반드시 같은 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이는 자신의 기준을 끝까지 지켰지만,
그 기준이 세상을 바꾸거나 삶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분명히 남는다.
환이 이후로 대비되듯 등장하는 인물이 지삼만이다.
지삼만은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청일교의 교주가 되고, 주색에 빠지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꾸민다.
그 모습은 처음부터 악하다기보다,
갈 곳을 잃은 사람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환이와 지삼만을 함께 떠올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둘 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막막함 앞에 서 있었다.
다만 환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선이 있었고,
지삼만은 살아남기 위해 그 선을 하나씩 내려놓았다는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한 사람은 죽은 뒤에도 ‘그 사람다움’이 남고,
다른 한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점점 자기 모습을 잃어간다.
12권에서 가장 아프게 남는 사건은 역시 봉순(기화)의 죽음이다.
기화는 상현을 사랑했고 그의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 사랑은 함께 살아가는 관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만 품은 채 기화는 조용히 스스로 생을 끊는다. 이 소식은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전해 들은 말로, 이미 지나간 일처럼 처리된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잔인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기화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드는 생각은 이랬다.
이 소설에서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사랑을 못 느껴서가 아니라,
사랑이 있어도 그걸 지켜 낼 방법이 없어서라는 점이다.
기화는 사랑을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없었다.
가난, 신분, 소문, 책임 같은 것들이 앞을 막았고 그 사이에서 기화는 점점 혼자 감당하게 됐다.
그래서 기화의 죽음은 한 사람의 슬픈 결말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가 누군가에게는 사랑조차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걸 보여 주는 장면으로 남는다.
기화의 죽음 뒤에 남은 사람은 상현이다.
그는 늘 한 박자 늦다.
기화가 살아 있을 때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고 죽은 뒤에야 사랑을 자각한다.
아이에게 원고료를 남기는 선택은 옳아 보이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뒤다.
상현을 보며 악한 선택보다 더 무서운 건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태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을 미루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그 사이 누군가의 인생은 이미 크게 달라져 버린다.
그 와중에 서희는 묵묵히 남아 있다.
남편의 부재 속에서도 집안을 지키고 기화의 아이 양현이를 거둔다.
크게 슬퍼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모습이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서희는 감정보다 책임을 앞세운 사람으로 보인다.
서희를 보며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느끼지 않는 일이 아니라, 느끼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희의 강함은 버티는 힘에 가깝다.
그리고 용이의 죽음.
그의 삶에 비해 마지막은 조용하다.
파란만장했지만 죽음은 담담하게 받아들여진다.
이 장면을 지나며 1세대 인물들이 조금씩 이야기의 중심에서 물러난다는 느낌이 든다.
용이의 죽음을 보며 ‘잘 살았다’는 말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말인지 자꾸 생각하게 됐다.
큰 업적도, 뚜렷한 결론도 없지만 그는 분명히 자기 몫의 시간을 살아냈다.
어쩌면 어떤 인생은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를 따지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살아냈는지를 남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12권의 끝에서 윤국은 광주학생사건을 이야기하며, 더 이상 어미 품에 머무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시대를 바라보기 시작한 세대로 등장한다. 그 장면은 “새로운 사건”이라기보다, 환이의 죽음과 지삼만의 파멸, 기화의 죽음, 서희가 버텨 온 삶처럼 부모 세대가 끝내 풀지 못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 세대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보여 준다.
그래서 12권은 결말을 내리는 권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질문과 시대의 무게를 윤국 세대에게 조용히 건네며 다음 권으로 이어지게 하는 전환점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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