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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평점 :

선거철만 되면 늘 비슷한 말들이 반복된다.
GTX, 지하화, 신공항, 공공기관 이전 같은 단어들이 쏟아지고,
사람들은 속으로 “이번에도 결국 말로 끝나겠지” 하고 넘기게 된다.
『한국 도시 2026』은 그런 익숙한 피로감부터 정면으로 다룬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공약들 가운데 예산과 공정, 안전과 민원, 지자체 갈등 같은 현실의 벽을 넘어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계획은 무엇인지, 반대로 말만 요란한 채 일정만 미뤄질 가능성이 큰 약속은 무엇인지를 가려 보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초반부에서는 ‘어디가 뜬다’는 결론을 서두르지 않고,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 일정(대선·지방선거), 인구와 산업의 흐름, 교통 인프라의 시간표를 차례로 짚으며 도시를 판단할 기준점을 잡게 해준다.
저자는 2024년 초 『한국 도시의 미래』를 낸 이후에도 세상이 너무 크게 바뀌었다고 말한다.
국제 정세가 흔들리고, 한국 정치 일정이 급격히 재편되면서 도시의 전망은 부동산 표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섣부르게 부동산 예측을 앞세우지 않는다.
국제 질서의 변화와 국내 정치 이벤트가 산업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고, 그 산업이 어디에 모이고 빠지며, 그 결과 인구와 교통이 어떤 방향으로 쏠리는지부터 차근차근 정리한다.
도시를 볼 때 먼저 봐야 할 건 어느 동네가 뜨냐가 아니라, 트럼프 2기 같은 국제 정세의 변화나 계엄·탄핵·조기 대선 같은 국내 정치 이벤트처럼, 도시의 산업·인구·교통을 한꺼번에 흔들어 놓는 큰 흐름이다.
이 흐름을 설명하면서 책은 방위산업과 동남권 메가시티를 예로 든다.
트럼프와 푸틴의 회담 소식이 돌자 언론이 전쟁이 곧 끝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고, 그 분위기에 주식시장에서 방산주가 흔들렸던 장면을 끌어온다. 하지만 저자는 국제 정세를 조금이라도 읽는 사람이라면, 그런 회담 한 번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리 없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순간은 주식을 팔 타이밍이 아니라 살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실제로 전쟁과 시장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정리한다.
이렇게 보면 동남권의 체력도 다르게 보인다. 방위산업이 모여 있는 동남권은 누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하루아침에 흔들리는 곳이 아니라, 국제 정세가 요동칠수록 오히려 산업 벨트로서 견실하게 버틸 가능성이 큰 권역이라는 것이다. 뉴스의 소음이 커질수록, 도시의 체력은 말이 아니라 산업의 자리에서 나온다는 점을 이 대목이 이해하기 쉽게 보여 준다.
국내 정치로 시선을 돌리면,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개발 공약의 패턴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2024년 총선과 2025년 대선을 거치며 김포·고양의 서울 편입, GTX·CTX 전국 확장, 철도·도로 지하화 같은 말이 쏟아졌지만, 선거가 끝나자 현실의 속도는 달랐다는 점을 짚는다.
착공이 늦어지고, 개통은 밀리고, 예산과 공사비, 민원과 안전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단순하다. 인프라는 누군가 하면 된다!는 의지를 외친다고 갑자기 앞당겨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적 조건이 바뀌고, 공공 공사비는 경직되고, 정치·행정권은 득실을 따져 내용을 바꾸려 한다. 그러니 초기 시간표를 절대적인 약속으로 믿고 인생 계획을 세우면 위험하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덕도 신공항 이야기는 그 ‘시간표의 함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공사 기간을 둘러싼 갈등, 안전 문제를 들어 사업에서 이탈한 시공사, 그리고 선거를 앞둔 지역 정치의 계산이 한 줄로 연결된다. 책은 과거의 속도전이 어떤 희생을 낳았는지까지 끌어오며 대형 인프라 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일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한다. 신공항 하나의 논쟁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개발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밀어붙이는지까지 드러낸다.
교통망 지하화와 광역철도 논의 역시 같은 톤으로 이어진다. 교통이 부족한 지역의 확충은 평등권과 생활권의 문제일 수 있지만, 이미 교통이 충분한 대도시에서 거액의 예산을 들여 지하화를 요구하는 건 논리와 재정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지하화 이야기가 다시 살아나는 이유도 결국 그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거창한 약속을 듣기 전에, 몇 년 전 던져진 공약이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를 먼저 보라고 권한다. 그 되돌아봄이 2026년 지방선거 공약을 해석하는 가장 좋은 예습이라는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각자도생’이라는 표현을 쓴 부분이 보인다.
이 말의 구체적인 뜻은 “이제는 누가 대신 지켜주지 못하니, 각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에 가깝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은 우주 개발 100조, AI 100조·200조, 철도에 몇 조 같은 말을 쉽게 꺼내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건설업계의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집 짓는 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도로·철도 같은 인프라 공사도 당연히 여유 있게 굴러가기 어렵다.
저자는 그래서 싱크홀이나 지반침하, 부실공사 같은 사건이 잇따르는 현실을 “우연”으로 보지 않는다. 비용은 오르는데 공공 공사비는 경직돼 있고, 공사를 밀어붙이면 안전 문제가 커지고, 다시 멈춰 서며 일정이 늘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공약과 광고가 더 장밋빛으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조 단위를 말하고, 부동산 시장에서는 그 말을 호재처럼 홍보한다. 하지만 실제 진척이 없는 공약도 많고, 결국 믿고 움직인 사람만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책은 한국은 각자도생의 사회라는 말을 꺼내며, 달콤한 말에 기대기보다 시민 스스로 공약과 광고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자체 간 갈등은 국가 사업이 표류하는 또 다른 이유로 등장한다. 수도권 메가시티 논란이 흐지부지된 배경, 김포와 인천의 교통망 갈등, 경기북도 분도 논란처럼 지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 “국가가 큰 그림을 그린다”는 말이 얼마나 쉽게 힘을 잃는지 보여 준다. 제2차 공공기관 이전, 군공항 이전, 우주 산업 거점 선정 같은 사안들이 선거 일정과 결합해 흔들리는 모습은 앞으로 더 자주 보게 될 장면이라고 말한다.
세종을 둘러싼 논의는 이 초반부의 모든 요소가 한데 모이는 지점이다. KTX 세종역, 대통령실 이전, 행정수도 완성 논의는 교통·정치·인구가 동시에 얽힌 문제이며,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정치적으로도 가능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시킨다. 한 지역의 편의가 다른 지역의 손해로 인식되는 순간 사업은 멈춰 서기 쉽고, 그래서 세종은 늘 기대와 회의 사이에서 “정치 테마”가 되기 쉽다는 현실까지 짚는다.
이렇게 1부에서 전국 공통의 변수를 정리한 뒤 2부로 넘어가면, 한국을 3대 메가시티와 6대 소권으로 나눠 살핀다. 대서울권·동남권·중부권, 그리고 대구·구미·김천, 동부 내륙, 동해안, 전북 서부, 전남 서부, 제주의 아홉 권역에서 2026년에 주목해야 할 지점을 점검하는 구성이다. 이때 기준은 단순한 ‘호재’가 아니라 산업의 체력, 교통의 현실성, 인구가 움직이는 방향이다.
결국 『한국 도시 2026』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도시는 공약처럼 움직이지 않고, 뉴스의 속도보다 훨씬 느린 ‘조건’ 위에서 바뀐다는 점이다. 국제 정세, 선거 일정, 산업의 자리, 인구 이동, 공사비와 안전, 지자체 갈등 같은 요소가 맞물리지 않으면 그럴듯한 약속도 쉽게 현실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어디가 뜬다’는 결론을 먼저 던지지 않는다. 대신 무엇이 실제로 굴러갈 수 있는 계획인지, 무엇이 말만 크고 계속 미뤄질 가능성이 큰지 가려내는 기준을 정리한다.
요란한 말과 자극적인 전망을 좇다 보면 남는 건 피로감이지만, 조건과 구조를 먼저 살피기 시작하면 도시의 방향은 훨씬 또렷해진다. 『한국 도시 2026』은 바로 그 지점을 짚는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가치는 특정 지역의 미래를 맞히는 데 있지 않다. 뉴스를 그대로 믿지 않고, 공약과 개발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며, 도시를 구조적으로 읽는 눈을 갖게 만드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눈을 갖게 되었을 때, 다음 선거와 다음 개발 이슈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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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그런데 애초에 왜 지금의 세종시 자리에 행정수도를 건설하려 했던 걸까요? 1970년대 말에 행정수도를 건설하려는 가장 큰 목적은 안보적 차원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인구 중심점으로 수도를 옮기되, 휴전선으로부터 평양보다 더 먼 거리인 70킬로미터 이상, 북한군의 해상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서해안 4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로 한국 전역을 위협함과 동시에 국지 도발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 천안함 피격 등이 그런 사례들이죠. 북한이 국지 도발을 일으켜 서울을 공격하면 서울 인구의 3분의 1이 사상하리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1970년대에 행정수도를 설계했던 대전제에 변화가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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