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 - 숨겨진 매력을 찾아 떠난 17번의 대만 여행, 그리고 사람 이야기
이수지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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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는 대만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사실은 한 사람이 여러 번의 여행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기록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여행기를 읽고 있다는 생각보다, 누군가의 오래된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다는 기분이 더 가까웠다.

저자가 처음 대만으로 떠난 이유가 참 소박했다.

자아를 찾겠다는 다짐도, 삶을 쉬게 해주겠다는 결심도 없이,

그저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고 말한다.

평소 밤 8시 이후 외출도 꺼리던 사람이 자정에 타오위안 공항에 내리는 장면을 읽다 보니,

그 긴장과 불안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엄마가 걱정할까 봐 출발 전까지 말하지 못했다는 고백도 오래 남는다.

그런데 그렇게 움츠러든 마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끈적한 공기, 활기찬 새벽의 분위기,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캐리어를 옮겨주던 택시 기사님의 미소가 마음을 풀어준다. 대만에서의 다정함은 늘 이런 식으로 다가온다.

타이베이에서의 첫 여행은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출구를 못 찾아 한참을 헤매고, 단수이를 가려다 반대 방향 MRT를 타고, 기차를 놓쳐 기대하던 음식도 놓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여행이 망쳤다는 느낌은 남지 않는다.

우연히 도착한 101타워에서 처음 먹은 샤오롱바오의 맛, 도로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 행렬,

장난감처럼 보이던 노란 택시와 신호등 같은 장면들이 오히려 또렷하게 기억된다.

길을 물을 때마다 끝까지 같이 안내해주던 사람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된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대만은 하나의 얼굴로 머물지 않는다.

타이베이뿐 아니라 타이난, 타이중, 가오슝이 차례로 등장하고,

르웨탄 자전거 도로처럼 풍경 안에 오래 머무는 여행도 이어진다.

이란의 소도시처럼 덜 알려진 지역들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어디를 가야 할지보다, 어떤 속도로 그곳을 지나고 싶은지가 먼저 떠오른다.

우라이 온천 마을 이야기를 읽을 때도 그랬다.

가는 길은 구불구불하고 쉽지 않지만, 막상 도착하면 그 번거로움을 잊게 만드는 풍경이 기다린다고 한다.

일정이 허락한다면 한 번쯤은 일부러 찾아가 보고 싶은 곳으로 마음속에 남는다.

이 책이 더 좋아지는 순간은 가이드북에는 잘 나오지 않는 장면들이 등장할 때다.

택시 안에서 나눈 짧은 대화,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노을, 계획에 없던 즉흥적인 경험들.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건 늘 이런 순간들이라는 걸 다시 떠올리게 된다.

기념품 숍과 카페를 천천히 둘러보는 이야기에서는 디화제 거리도 마음에 남는다.

오래된 시간 위에 작은 가게들과 감각적인 숍들이 겹겹이 쌓인 공간을 걷는 상상을 하게 된다.

다음에 대만에 간다면 일정 하나쯤은 비워 두고 그 거리를 오래 걷고 싶어진다.

‘친절한 타이완런’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과하지 않게 마음에 스며든다.

길을 헤매는 여행자에게 먼저 다가와 목적지까지 함께 걸어주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끝까지 기다려 주는 태도들.

형부가 버블티를 사러 갔다가 현금이 없어 난처해진 순간,

점원이 음료를 선물처럼 건네고 그 마음에 펑리수로 답례하는 장면은 오래 남는다.

선의는 숫자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결국 사람은 사람다운 방식으로 마음을 주고받게 되는 것 같다.

가장 마음이 오래 머무는 이야기는 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이다.

내가 사랑하는 대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정작 엄마에게는 불편함이 되었다는 고백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골목과 음식이 모두에게 편안한 선택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키키 레스토랑에서 흰밥을 맛있게 드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서야 깨닫는다. 좋은 여행이란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함께 가는 사람이 편안해질 수 있는 방향을 찾는 일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혼자 떠난 가오슝의 생일, 뤼다오에서 전동 오토바이를 타고 섬을 달리던 시간도 비슷한 결로 남는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음악과 커피, 산책만으로도 충분했던 하루. 느린 속도 덕분에 바다와 하늘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었던 순간들. 익숙한 방식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여행의 시간이 전혀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책을 읽고 나니 대만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진다. 비행기로 2시간 남짓이라서만은 아니다. 그곳에서는 누군가가 먼저 웃어주고, 먼저 기다려주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어서일 것이다.

그 기억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낯선 사람에게도 이유 없이 다정할 수 있을까?

내 여행의 속도를 누군가에게 맞춰 줄 수 있을까?

이 책은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여행을 대하는 내 태도를 조금씩 바꿔 놓는다. 결국 한 나라에 대한 인상도, 한 사람에 대한 기억도 ‘다정한 배려’ 같은 작은 순간들로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푸른향기 서포터즈 15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내 취향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일이라고 해서 꼭 누군가를 만나 근사한 식사를 해야 할까?‘
오히려 아무런 약속 없이 하루를 온전히 나에게 맡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이번 생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보내기 위해 혼자 가오슝으로 향했다. 생일이 시작되던 자정, 숙소 근처의 작은 라이브 바에 들렀다. 좋아하는 아마레또 샤워 한 잔을 앞에 두고, 자주 듣던 중국어 노래를 신청해 공연을 즐겼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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