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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서버
로버트 란자.낸시 크레스 지음, 배효진 옮김 / 리프 / 2025년 12월
평점 :

생각보다 훨씬 쉽게, 그러나 오래 남는 이야기
이 책을 읽기 전, 사실 조금 겁이 났다.
‘양자역학을 다루는 소설’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괜히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어 포기하게 되는 책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혼자 앞서 걱정하는 타입이다.)
그러다 문득, 이왕 이렇게 고민하는 김에
‘양자역학이 대체 뭔지’ 한 번쯤은 찾아보고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찾아본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세계—원자나 전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는 현대 물리학의 기본 이론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공처럼 큰 물체는
어디에 있고 얼마나 빠른지를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아주 작은 입자들은 그렇지 않다.
양자역학은 이런 입자들이
때로는 ‘알갱이’처럼, 때로는 ‘물결’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과,
측정하려고 들여다보는 순간
오히려 어떤 정보는 더 정확히 알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설명한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본 양자역학은,
공식과 계산만 가득한 학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양자역학은 세상이 우리가 보기 전까지는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 같았다.
『옵서버』는 바로 이 생각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양자역학은
어렵고 낯선 이론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메시지에 훨씬 가깝게 다가온다.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내리는 선택 하나하나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의 세계를 고정시키는 행위라는 것.
이 소설은 그 사실을
과학이라는 언어로 설명하면서도
감정의 결로 전달한다.
소설의 주인공 캐로는 신경외과 의사다.
그는 오빠의 죽음 이후 가족과 멀어졌고,
미혼모 동생 엘렌과 조카 두 명—
케일라와 장애가 있는 안젤리카—를 책임지며 살아간다.
병원에서는 성추행 피해를 신고했지만,
그 선택은 보호가 아니라 고립으로 돌아온다.
그의 삶은 이미 충분히 벼랑 끝에 와 있다.
그래서인지, 현실을 넘어서는 실험 제안 앞에서도
캐로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가 참여하게 되는 실험은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해
의식과 관찰을 통해 다른 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다중우주, 관찰자 효과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는 결코 복잡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소설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질문을 꺼내 놓는다.
“그때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아닐까?”
“만약 그날 다른 결정을 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캐로가 겪는 혼란과
현실이 어긋나는 듯한 체험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소설의 세계관은 설명 없이도 이해된다.
『옵서버』는 지식을 가르치기보다,
세상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고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이야기로 전한다.
그리고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옵서버』는 죽음을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나는 순간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가 있다면,
의식은 그곳에서 이어질 수도 있고,
사랑했던 사람 역시
어딘가에서는 계속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이 생각은 분명 위로가 된다.
하지만 그 믿음이
지금 이 세계의 삶을 대충 살아도 된다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 소설은 조용히 말하는 것 같다.
죽음 이후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일은
우리를 견디게 해줄 수는 있지만,
그 상상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오히려 지금 살아 있는 시간과
지금의 선택을 더 소중히 바라보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소설이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중우주라는 설정은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나았을까?”라는 질문은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질문을
과학이라는 언어로 풀어냈을 뿐,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옵서버』를 읽으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가
내가 선택하고 바라봐 온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보면 좋겠다.
이 책은 다른 세계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더 또렷하게 바라보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이 세계의 내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용히 묻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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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리프/포레스트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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