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못한다는 착각 - 우리 스스로 수학 지능을 구축하는 놀라운 생각의 기술
다비드 베시 지음, 고유경 옮김 / 두시의나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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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한 번 막히기 시작하면, 그 뒤로 오래 힘들어진다.

수학 시간, 칠판에 적힌 문제를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던 날이 있고, 시간 안에 못 풀어 연필만 만지작거리던 날도 있다. 시험 성적을 확인하고 한숨이 쌓이다 보면 결국 마음속에는 한 문장이 남는다.

“난 원래 수학이랑 안 맞아.”

다비드 베시의 『수학을 못한다는 착각』은 바로 그 문장부터 다시 묻는 책이다.

프랑스에서 순수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와 교육을 해온 저자는,

우리를 수학에서 멀어지게 만든 가장 큰 이유가 공식이나 계산 자체가 아니라 수학을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아인슈타인과 데카르트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수학에 대해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믿어버린 세 가지를 내려놓자고 권한다.

수학은 논리로 푸는 것이라는 생각, 어떤 사람은 숫자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도형에 강하지만, 대부분은 애초에 수학이 어렵다는 생각, 위대한 수학자들은 애초에 우리와 다른 뇌를 타고났다는 생각이다.

이런 믿음들이 쌓이면 우리는 수학을 ‘배워야 하는 과목’이 아니라,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가르는 기준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수학은 어느 순간부터 괜히 손대기 무서운 과목이 되버린다.

다비드 베시의 『수학을 못한다는 착각』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놓쳐왔던 사실을 다시 꺼내 보여준다. 수학의 중심은 논리보다 직관에 가깝고,

그 직관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연습으로 조금씩 키울 수 있는 감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이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마음부터 닫아버린다.

“나는 안 되는 쪽이구나.” 저자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질문을 한 번 더 던진다. 우리가 수학 잘하는 사람이라고 떠올리는 이미지 자체가 애초에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논리로 완벽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직관을 붙잡고 그것을 조금씩 키워가는 사람에 가깝다.

실제 수학자들은 처음부터 깔끔하게 논리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보고, 이리저리 굴려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상상하며 “이쪽이 맞는 것 같은데?”라는 느낌을 먼저 붙잡는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논리를 꺼내어 그 감각을 단단히 묶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게 정리한다.

즉, 논리는 출발점이 아니라 마지막에 붙는 설명의 언어에 가깝다. 이런 흐름을 알게 되는 순간, 수학은 더 이상 ‘나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 누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훈련의 영역으로 돌아온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수학을 두 갈래로 나눈다. 교과서에 적힌 기호와 증명으로 이루어진 공식 수학, 그리고 수학자들의 머릿속에서 먼저 움직이는 비공식 수학, 즉 직관의 수학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둘의 순서를 거꾸로 배워왔다는 데 있다.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채 악보 해독부터 배운 셈이다.

그러니 수학이 재미있을 리 없고, 살아 움직일 리도 없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직관이 중요하다”는 말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직관이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자라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학자들의 비밀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수학은 머리만 쓰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동작을 반복하는 신체 활동에 가깝고,

수학을 잘하는 데는 학교에서 거의 가르치지 않는 방법이 있으며,

위대한 수학자들의 뇌 역시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정신적 습관과 태도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장 피에르 세르(Jean-Pierre Serre)다.

이 책에서 세르는 ‘보는 법을 가르쳐준 수학자’로 소개된다.

세르는 추상적인 수학 개념을 다룰 때도 언제나 공간적 이미지와 감각적 직관을 놓치지 말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어떤 복잡한 수학적 대상을 상상할 때, 그것을 손바닥 위의 작은 물건처럼 떠올릴지, 사람 크기의 구조물처럼 볼지, 혹은 그 안을 직접 걸어 다니는 공간처럼 볼지에 따라 사고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동일한 대상이라도, 크게 상상할수록 뇌는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해 사고한다는 것이 세르의 통찰이다.

베시는 이 점을 빌려 말한다.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대상이 너무 작게, 너무 납작하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숫자와 기호를 언어처럼만 대하면, 실제 대상과의 연결이 끊어진다.

그래서 그는 숫자 3을 볼 때도 ‘기호 3’이 아니라 오렌지 세 개를 떠올리라고 권한다.

아이처럼 추상적인 대상과 물리적으로 관계 맺는 태도, 이것이 바로 올바른 수학적 사고의 출발점이다. 세르의 기법은 결국 수학을 다시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다.

책 중반에 등장하는 다차원 이야기나 정이십면체의 투영 사례도 같은 맥락에 있다.

우리는 2차원 사진을 보면서도 자연스럽게 3차원 공간을 재구성한다.

심지어 머릿속으로 입체를 돌려볼 수도 있다.

이 능력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상상력이다.

수학은 이 능력을 억누르는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깊이 사용하는 학문이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수학의 또 다른 얼굴도 조심스럽게 꺼낸다. 수학은 어딘가 ‘좀 다른 사람’에게도 성취의 길이 열려 있는 드문 분야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사고를 한쪽으로만 밀어붙여 취약한 균형을 더 흔들어놓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 예로 책에서 언급되는 인물이 테드 카친스키, 이른바 ‘유나바머’다.

그는 IQ가 높아 어린 나이에 학년을 건너뛰고 하버드에 들어갔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UC 버클리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학계를 떠나 몬태나의 외딴 오두막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고, 1978년부터 1995년까지 ‘기술 문명’에 대한 증오를 앞세워 우편 폭탄을 보내는 테러를 이어갔다. 그 폭탄은 여러 사람을 다치게 했고, 일부는 목숨까지 잃었다. 1995년에는 자신의 선언문(일명 ‘유나바머 선언’)을 신문에 실어 달라고 요구하며 폭력을 멈추겠다고 협박했고, 결국 1996년 체포된다.

저자가 이 이야기를 넣는 의도는 수학이 위험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수학이 가진 강력한 몰입과 사고의 힘이, 현실과 관계, 감정 같은 안전장치와 분리될 때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이 대목은 수학을 두려워하라는 경고가 아니라, 깊이 몰입하는 힘에는 균형도 함께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수학을 못한다는 착각』이 끝까지 전하려는 말은 분명하다. 수학은 재능을 가르는 시험이 아니라, 직관을 키우는 연습이다. 변화는 느리고 처음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치 운전이 갑자기 손에 익듯이, 사고의 방식이 달라진다. 중요한 건 빨리 가는 게 아니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수학이 당신을 밀어낸 적은 없다. 다만 우리는 수학을 너무 빨리 정답부터 보게 배웠고, 너무 일찍 스스로에게 한계를 붙였다. 이 책은 그 한계를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기호를 읽기 전에 상상하고, 틀리면서 감을 만들고, 조금씩 직관을 키우는 것!

그렇게 수학은 다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세계가 된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두시의나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정신적 가소성의 법칙을 무시하면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과소평가하게 된다.
정신적 가소성의 핵심은 뻔뻔함을 자신감으로 바꾸는 것이다.
과정은 느리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처음에는 성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게 바로 우리의 학습 메커니즘이 가진 생물학적 현실이다.
안타까운 우연의 일치지만, 이는 좌절을 부르는 완벽한 공식이기도 하다.
혼란스럽고 느리고 불확실한 과정을 끝까지 해내려면 상당한 자기 통제력과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공식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입문 강좌나 직업 훈련 과정), 타인을 모방해 배울 수 있는 것, 혹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것만 배우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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