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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라고 했지만 왜라고 했다 - 논술과 토론에 강해지는 바칼로레아 철학 토론서
배진시 지음 / 탐구당 / 2026년 1월
평점 :

『외우라고 했지만 왜라고 했다』는 제목 그대로, 오랫동안 우리 교육에 익숙했던 “외워서 맞히는 공부”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은 철학 개념을 많이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데 초점을 둔다. 그래서 이 책이 논술과 토론에 강해지는 바칼로레아 철학 토론서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는 프랑스의 국가 졸업·대학입학 시험으로, 특히 철학 논술 시험이 유명하다. 프랑스 학생들은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철학을 필수로 배우고, 시험에서는 정답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진리는 최종적인가?”, “이성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가?” 같은 질문을 놓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맞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이해하고, 근거를 제시하고, 반론을 검토하며, 스스로의 결론에 이르는 사고의 과정이다. 『외우라고 했지만 왜라고 했다』는 바로 이 바칼로레아식 철학 사고 훈련을 한국 독자에게 가장 친절한 언어로 옮겨온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배진시는 프랑스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인문학자이자 작가다.
현재 몽테뉴인문학연구소 소장이며, 몽테뉴해외인문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 도서관, 학교 등 다양한 기관에서 철학과 토론, 인문 교육을 주제로 강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과 시민이 함께 사유하고 토론하는 인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생각하는 힘과 질문하는 용기’를 키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이력만 보아도 이 책이 단순한 철학 입문서가 아니라 실제 교육 현장에서 오랜 시간 다듬어진 결과물이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 책에는 그녀가 오랫동안 몸으로 익힌 프랑스식 철학 교육의 핵심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이 책의 첫 장은 ‘진리와 인식’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토머스 쿤은 과학적 진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가 공유하는 인식의 틀, 즉 패러다임 속에서 성립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진리는 쌓이는 것이 아니라 전환된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정답’에 균열을 낸다.
이어 블레즈 파스칼은 이성이 강력한 도구임을 인정하면서도, 이성만으로는 감정과 신앙, 인간의 내면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음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그의 말은, 논리 중심 사고에 익숙한 독자에게 중요한 균형을 제시한다.
르네 데카르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확신보다 의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것을 의심해 본 끝에 도달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스스로 사고하는 주체로 서는 철학의 출발점이 된다.
존 로크는 인간의 인식이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보며, 감각과 경험이 앎의 출발점임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경험 역시 오류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을 함께 짚으며, 경험과 이성이 함께 작동해야 함을 강조한다.
‘자유’에 대한 장으로 넘어오면 질문은 훨씬 현실적인 무게를 갖는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책임을 진다고 말한다.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조건이며, 선택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미셸 푸코는 기술과 제도가 자유를 확장하는 동시에 감시와 통제를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과연 얼마나 자율적인지 묻는다.
장 자크 루소는 자유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법을 따르는 상태로 정의한다.
임마누엘 칸트는 자유를 더욱 엄격하게 사유하며, 진정한 자유란 욕망이 아니라 이성이 세운 도덕 법칙에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장에서 자유는 더 이상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선택과 규범, 책임이 얽힌 복합적인 문제로 드러난다.
‘노동과 기술’ 파트에서는 현대 사회의 불안을 정면으로 다룬다.
카를 마르크스는 노동이 본래 인간의 자아를 실현하는 활동이었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는 구조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자크 엘륄은 기술이 인간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낙관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술 자체가 하나의 체계로서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권터 안더스는 기술 발전 속도를 인간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인간이 스스로 만든 기술 앞에서 도덕적 판단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세 철학자의 논의는 기술이 편리함을 넘어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 자체를 어떻게 바꾸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예술’에 관한 장에서는 사고의 결이 또 한 번 달라진다. 넬슨 굿맨은 예술 작품의 의미가 작품 그 자체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체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본다. 플라톤은 예술을 모방으로 보며, 진리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경계의 시선을 던진다.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을 말하며, 작품의 의미가 창작자의 의도를 떠나 독자의 해석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예술은 이 장에서 규칙과 의미, 통제와 해석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사유된다.
‘도덕과 사회’에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가 중심에 놓인다.
존 스튜어트 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기준을 통해 도덕을 사유하며,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이익 사이의 균형을 고민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규정하며, 공동체 안에서 덕을 실천할 때 비로소 인간은 더 나은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몽테스키외는 법이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분산함으로써 자유를 보장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정치’의 장에서는 국가와 시민의 관계가 질문의 중심에 선다.
토머스 홉스는 자연 상태의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강력한 국가 권력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존 롤스는 공정성의 원리를 통해 민주주의가 정의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법이 정의롭지 않을 때 시민의 불복종이 도덕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며, 개인의 양심을 정치의 한가운데로 끌어온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자아’에서는 질문이 다시 개인에게 돌아온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물음을 통해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개념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완전히 인식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데이비드 흄은 기억이 자아를 구성한다고 보며, 우리가 하나의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경험과 기억의 연속 속에서 형성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외우라고 했지만 왜라고 했다』에서 철학자들은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어 온 생각을 흔들고, 질문을 한 단계 더 깊게 만들어 주는 사유의 도구로 등장한다. 저자 배진시는 청소년과 시민이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는 현장에서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철학을 시험을 위한 과목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언어로 다시 살아나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철학자 이름을 많이 외우게 되기보다, 내 생각을 말과 글로 정리하고, 근거를 세우고, 다른 관점도 함께 살피며 토론하는 힘이 자란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공부는 암기가 아니라, 끝까지 “왜?”라고 묻는 태도다. 그 태도가 쌓일수록 논술과 토론은 물론, 내 삶의 선택까지도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이 책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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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탐구당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결정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고 후회하는 게 더 무섭지 않을까?"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결정이란 자유 속에서 불안을 감수하는 용기"라고 했다. 나도 아직 어리지만, 그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뭔가를 결정하는 건, 나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서도 나 자신을 믿어보는 일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중요한 건, 큰 결심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는 습관, 오늘은 휴대폰을 조금 덜 보겠다는 다짐, 친구에게 먼저 인사하기,부모님께 고맙다고 말하기 ㅡ 이런 일상의 작은 결심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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