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를 위한 창업선생 이병철 정주영
박상하 지음 / 북오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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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삼성과 현대라는 거대한 제국을 일군 두 사람인, 이병철과 정주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이미 여러 석학들이 남긴 『삼성과 소니』, 『SAMSUNG WAY』, 『호암의 경영철학』 같은 연구서들이 시스템과 전략을 정교하게 분석해 왔음에도, 정작 왜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졌는지, 어떤 내적 동력에서 그런 선택이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답해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이 택한 길은 조금 다르다. 위에서 시스템을 내려다보는 분석이 아니라,

두 사람의 삶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창업가 이병철’과 ‘창업가 정주영’이라는 실존의 껍질을 벗겨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MZ세대가 실제로 사업을 시작할 때, 혹은 기업의 최전선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경영 창작의 살아 있는 텍스트로 두 사람을 다루려는 시도다.

저자는 이병철과 정주영의 성공을 단순한 ‘기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척박한 황무지에서 오늘의 삼성과 현대를 일구기까지의 여정 뒤에는, 말로 다 풀어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고 본다. 저자는 이 힘을 두 사람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꾸준히 작동해 온 ‘숨은 근육’, 다시 말해 에토스(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 몸에 밴 생각의 방향)로 이해한다. 이 책의 ‘2인 비교 스토리’는 바로 그 숨은 근육이 무엇이었는지를, 두 사람의 삶과 선택을 따라가며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밝혀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 퍼즐을 맞추기 위해 저자는 먼저 리더십의 두 유형을 꺼내온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말한 ‘숲속의 여우’와 ‘숲속의 고슴도치’다.

여우는 여러 길을 알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바꾸는 존재다. 냄새와 흔적을 읽고, 발자국을 지우고, 여러 수법으로 사냥감을 몰고, 때로는 죽은 척하며 숲의 환경 전체를 활용한다.

반대로 고슴도치는 한 방향으로만 돌진하는 동물이다. 시야도 좁고, 자주 부딪치고, 성질도 급하지만, 한 번 사냥감에 꽂히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콜린스에 따르면 세상의 리더는 결국 이 두 축 어디쯤에 놓인다.

직선과 곡선, 저돌성과 신중함, 행동 우선과 사고 우선,

디오니소스적 인간형(감정적이고 본능적이며, 열정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중시하는 인간 유형)과

아폴론적 인간형(이성적이고 질서와 균형을 중시하며, 차분하게 계산하고 계획하는 인간 유형)…

이 대비를 통해 저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말한 ‘평가형’ 이병철과 ‘리더형’ 정주영을 더 입체적으로 읽어내려 한다.

이병철의 초상은 ‘숲속의 여우형 리더’라는 키워드로 정리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정미소, 상회, 양조장을 거쳐 제일제당·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사업 확장 과정에서, 한 번 정상에 오른 뒤 거의 반세기 동안 정점에서 밀려난 적이 거의 없었다.

어떤 스승이나 멘토의 그늘을 언급하기보다, 자신의 운명과 감각을 더 믿었던 인물이다.

그의 운명론은 흥미롭다. 재물과 지위는 마음대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도리와 우주의 섭리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면서도, 그 ‘운’을 기다리는 태도는 수동적이지 않다.

운이 올 때까지 둔하게 버티는 인내와,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물고 늘어지는 용기, 이 두 가지가 그의 운명론을 이룬다. 운을 기다린다는 말이 얼핏 체념처럼 들리지만, 이병철에게 그것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평소에 자신을 갈고 닦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의 성장 배경 역시 중요한 단서로 등장한다. 가난에서 시작한 많은 1세대 창업가들과 달리, 이병철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여유 있는 집안에서 출발했다. 첫 창업 자본도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여유가 그를 ‘안전한 선택’에 머무르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부터 큰 판을 상상하고 그 판을 현실로 끌어오는 통 큰 기질로 이어진 점이 흥미롭다. 한국비료처럼, 당시 한국 경제 규모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프로젝트에 세계 최대 수준으로 뛰어든 것도 그런 기질의 연장선이다. 그는 단지 큰 것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면 1등, 아니면 안 한다”에 가까운 제일주의를 사업의 문법으로 삼았다.

성격 역시 이 문법과 맞닿아 있다. 차갑고, 냉정하고, 까다롭고, 예리한 사람. 완벽을 추구하며 식사에 나오는 빵조차 최고만을 고집한 사람.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일상에서 ‘최고의 것’을 직접 경험하고 비교해 봄으로써, 자기가 만들 제품의 기준을 몸으로 익히려는 태도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의 완벽주의는 결국 삼성의 사업성 검토 지침 같은 시스템으로 구체화된다.

사업의 목적, 환경, 추진 방법, 조직, 성과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검토하는 매뉴얼은,

여우처럼 이리저리 꾀를 쓰되, 동시에 치밀함을 끝까지 놓지 않는 리더의 그림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병철의 내면을 지배한 건 ‘견고한 고독’이다. 그는 누구와도 쉽게 섞이지 않았고, 자신의 성을 스스로 쌓아 올린 뒤 철저히 성문을 닫아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이 고독이 그를 난해하고 신비로운 인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냉철한 이성, 인간에 대한 통찰, 미래를 꿰뚫어 보는 시야를 가능하게 한 기반이기도 했다.

정치권력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여우답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한 번의 쓰라린 경험 끝에 기업가는 정치와 직접 엮여선 안 된다는 강한 금기를 세운다. 그때부터 삼성은 권력 대신 기술과 경쟁력이라는 마이 시크릿에 사활을 걸게 되고, 남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첨단 영역, 작고 가볍지만 압도적으로 효율적인 경소단박형 제품들로 승부를 보려 한다.

반면 정주영은 전형적인 ‘숲속의 고슴도치형 리더’로 등장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현대왕국을 일으킨 그의 인생은,

“한 방향으로 돌진하는 야행성 동물”이라는 고슴도치의 이미지와 잘 겹친다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에 먼저 몸을 던지고, 수없이 부딪히고 넘어지면서도, 끝내 뚫고 나가는 사람. 조선업 진출, 현대자동차의 포니 개발, 중동 건설시장 정복, 서산 간척 사업 같은 사례들은 그의 도전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조선소 설립 에피소드는 그 성격을 압축해 보여준다.

정몽구가 승용차 생산에 성공한 뒤, 다음 목표로 대규모 조선소를 점 찍는다.

그때 한국엔 조선 기술도, 경험도, 필요한 자본도, 안정적인 수주 시장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의 안 되는 이유 리스트만 가득한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현실을 근거로 시도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거나,

조건이 이렇게 안 맞는데 어떻게 배를 만드느냐는 회의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정주영은 조건을 보고 물러서는 대신, 조건을 만들어 가는 쪽을 선택한다.

프랑스와 스위스 은행에 이어 영국 은행의 문을 두드리며 대출을 요청하고,

“수주 계약서부터 가져오라”는 답을 듣자 바로 그리스로 날아가 세계적인 선박왕 리바노스를 찾아간다.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고, “우리는 16세기에도 철갑선을 만들던 나라다. 엔진과 철판으로 만드는 배라면 반드시 잘 만들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배짱인 설득을 이어간다.

그리고 결국 초대형 유조선 2척의 수주 계약서를 받아낸다.

그 계약서를 들고 다시 은행으로 돌아가 자금을 마련하고, 그 자금으로 조선소를 짓고, 다시 그 조선소로 수주를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건이 안 돼서 못 한다는 말이 얼마나 허약한 변명인지 깨닫게 한다.

나는 이 대목이 특히 인상 깊었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 할 때, 갖춰지지 않은 조건을 따져 보며 시작도 하기 전에 스스로 발을 빼는 경우가 많다. 자본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고, 시장도 불확실하니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리기 쉽다. 그런데 정주영의 방식은 정반대였다.

먼저 몸을 던져 실행의 무대 위에 올라가고, 그 과정에서 자본과 기술, 신뢰라는 조건을 차례로 만들어 간다. 이것이 무모한 만용과 다른 점은, 그 실행이 철저히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감각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 자동차, 조선, 간척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일선 현장을 발로 밟으며 ‘어디에 황금이 되는 산업이 있는지, 그 산업을 자기 기업에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라는 CEO의 본질적인 역할에 집중했다.

중후반부의 ‘재와 평의 사이’라는 논의는 이런 두 사람의 차원을 정리해주는 개념적 틀이 된다.

저자는 사람의 역량을 일곱 단계로 나누면서,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지점은 평(平)–지(智)–재(才)의 구간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까지는 노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평’의 세계가 있고,

배움과 깨달음, 자기 단련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의 세계가 있으며,

그 위에 설명하기 어려운 입체의 차원인 ‘재’의 세계가 있다.

이병철과 정주영은 명백히 이 ‘재’의 차원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출발선에서 그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기업과 기업가는 지금 대부분 사라졌지만,

삼성과 현대만은 여전히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차이를 만든 힘이 바로, 설명하기 쉬운 평면적 역량을 넘어서는,

비상한 재주와 이를 토대 삼은 선택과 실행의 누적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저자가 ‘재’를 타고난 운명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깨달음과 학습, 자기 단련을 통해 지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고,

거기에 보통의 몇 배에 달하는 노력과 태도가 더해진다면 재의 세계를 향해 문을 두드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병철의 일등정신과 정주영의 도전정신은 바로 그 ‘몇 배의 노력’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결국 이 책이 MZ세대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좋은 시스템과 탁월한 전략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태도, 반복되는 선택, 실패 앞에서 멈추지 않는 실행에서 서서히 만들어진다.

이병철처럼 냉정하게 현실을 읽고, 일등을 목표로 판을 설계하며 기술과 기준을 끝없이 끌어올리는 길도 있고, 정주영처럼 조건이 없어도 먼저 몸을 던져 새로운 산업의 길을 뚫어가는 길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조건이 되면 언젠가 해보겠다는 말이 사실상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창업을 꿈꾸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보다 주도적으로 이끌고 싶든, 결국 평범한 일상의 자리에서 재의 세계를 향해 조금 더 깊이 파고들 용의가 있는가를 묻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앞으로의 MZ세대가 만들어낼 새로운 ‘경영 창작의 스토리’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북스타그램_우주 @woojoos_story 모집,

북오션출판사의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2인 비교 스토리’는 이병철과 정주영이라는 실존하는 경영사(business history)가 지금의 삼성과 현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보는 데서 출발한다. 오늘날 삼성과 현대라는 실체를 경영의 주체인 두 사람의 남다른 기업가 활동(entrepreneurial activity)을 통해 전체적 시각으로 낱낱이 들여다볼 참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이병철의 경영 창작은 왜 강력한 개성과 냉혹한 성격을 내세웠는지,
반면에 정주영의 경영 창작은 왜 두둑한 배짱과 불같은 열정인지 들여다보려 한다.
더불어 이병철의 ‘이유는 없다, 명령은 내가 한다’는 황제 경영(push strategy) 전략과
정주영의 ‘이유는 없다, 나를 따르라’는 정벌 경영(lead strategy) 전략의 밑그림에 대해서도 면밀히 들여다볼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2인 비교 스토리’는 두 사람이 창작해낸 삼성과 현대라는, 지금의 경영 창작에서 우리에게 어떤 문법을 제시하고 있는지까지 속살을 빠짐없이 톺아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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