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독한 별처럼
이케자와 하루나 지음, 서하나 옮김 / 퍼블리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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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자와 하루나의 『나는 고독한 별처럼』은 겉으로 보면 먼 미래와 낯선 생명체를 배경으로 한 SF 단편집이지만, 실제로는 “나는 이 세계에서 어떻게 타자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일곱 번 다른 방식으로 변주해 보여주는 책처럼 느껴진다. 버섯과 공생하는 인간, 성별이 불분명한 존재와의 동거, 다이어트 강박이 우주 규모 사건으로 번지는 세계, 비 한 번 제대로 오지 않는 땅에서 살아가는 생명들, AI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멸망이 예정된 콜로니의 마지막 주민들까지. 배경은 계속 바뀌지만, 각각의 이야기 안에는 “외톨이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그래도 누군가와 연결되려 애쓰는 모습”이 공통된 정서로 흐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건 첫 번째 단편인 「실은 붉다, 실은 하얗다」다. 이 이야기는 이 책 전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드러내 주는 작품이라,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들이 전부 여기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뇌에 ‘뇌큰균’이 감염되면서 서로의 감정과 상태를 깊이 공감하는 능력을 얻는다. 이 공생 능력은 마이코파시라는 이름을 얻고, 그 덕분에 사회는 이전보다 훨씬 ‘평온한’ 곳이 된다. 사소한 엇갈림으로 벌어지는 싸움이나 이혼, 폭력 사건이 줄어들고, 차별적인 말과 행동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사람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느끼기 때문에 함부로 비난하거나 공격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더 나은 세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이 변화의 과정을 결코 미화하지 않는다. 뇌큰균과의 공생을 “오염”이라 부르며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 감염된 아이의 미래에 절망해 아이의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 한 가족, 감염자를 노린 폭탄 테러, 균을 신격화하며 감염자의 피를 뒤집어쓰는 광적인 종교 집단, 갑작스레 퍼졌다가 사라지는 음모론들…. 새로운 사회로 넘어가는 길은 공포와 혼란,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오는 다큐멘터리 속 내레이터의 한 문장을 기억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 길은 일방통행이었다.” 마음에 들든, 무섭든, 반대하든, 인류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는 선언이다. 이 장면은 현실에서 성소수자, 새로운 가족 형태, 새로운 기술과 가치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격렬한 찬반과, 결국 ‘이제는 이게 일상이야’라고 말하게 되는 흐름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회에서 공감은 겉으로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인물들의 구체적인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단순히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네오가 친구 곳코와 손을 잡고 느끼는 감각은 그 대표적인 순간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는 다정한 말이 오가는 가운데, 네오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전신으로 겪는다. 간질간질하고, 상쾌하고, 따뜻하고, 황홀해서 그냥 이대로 평생 있고 싶다고 느낀다. 이건 더 이상 단순한 우정이라기보다는, 동성인 곳코에게 느끼는 사랑과 욕망, 그리고 그 감정이 육체와 마음 깊숙이까지 스며드는 순간에 가깝다. 그런데 동시에, 이 감정이 어디까지가 ‘나의 진짜 마음’이고 어디부터가 균과의 공생으로 인해 증폭된 감각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다. 사랑과 공감이 내 안에서 우러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세계 전체가 그렇게 느끼도록 설계되어 버린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이 모호함과 두려움, 동시에 달콤한 쾌감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하얀 실”의 이미지다. 하얀 실이 길게 늘어져 다가와 몸 안으로 스며들려 하고, 화자는 “넣고 싶다”와 “넣고 싶지 않다”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러지 마, 하지 마, 열지 마, 내 안으로 들어오지 마”라고 속으로 외치면서도, 그 실이 자신을 가득 채워 새롭게 만들 때 엄청난 만족감과 충만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 장면은 분명 성적인 뉘앙스를 가지면서도, 누군가와 하나가 되는 일,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 얼마나 달콤하면서도 무서울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등장하는 하얀 실은, 땅속에서 퍼져 나가며 서로를 이어 주는 버섯의 하얀 균사를 떠올리게 한다. 균사는 하나의 몸이라기보다, 여러 점을 연결하면서 넓게 퍼지고 스며드는 존재다. 그래서 이 하얀 실은 몸과 몸,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는 연결의 상징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어 나라는 감각을 점점 흐리게 만들 수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단편에서 붉은색과 하얀색은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붉다”는 말은 피, 심장, 상처, 격렬한 욕망과 사랑, 폭력을 떠올리게 한다. 네오와 곳코 사이의 황홀함, 질투, 초조함, “너를 나 혼자 독차지하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들이 모두 붉은 기운을 띤다. 또한 공생 사회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폭력과 피의 역사도 붉은색이 상징하는 영역이다. 반대로 “하얗다”는 말은 균사, 실, 공생, 평온, 깨끗해 보이는 세계의 표면을 떠올리게 한다. 공감 능력이 확장되어 갈등과 차별이 줄고, 모두가 평온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은 전형적인 하얀 유토피아의 이미지다.

제목이 “실은 붉다, 실은 하얗다”인 것은 이 세계와 관계들이 어느 한쪽 색으로만 설명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겉으로 보기엔 하얗게 평화롭지만, 그 바닥에는 늘 붉은 욕망과 상처, 폭력이 잠겨 있고, 또 붉은 혼란 속에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하얀 위로가 자라난다. 결국 이 이야기 속 사랑과 공감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침투이고, 구원인 동시에 나라는 존재의 경계를 조금씩 포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첫 번째 단편을 가장 흥미롭게 읽은 이유는,

이 책 전체가 붙들고 있는 질문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감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단편을 통해 “서로를 잘 이해하는 사회가 정말로 온전히 좋은 것일까?”,

“공감이 지나치게 커지면 오히려 ‘서로 다름을 견디는 힘’은 약해지는 건 아닐까?”,

“누군가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마음 안에는 나를 지우고 싶어 하는 욕망도 함께 섞여 있는 건 아닐까?”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모양을 달리하며 뒤이어 등장하는 다른 여섯 편 속에서도 반복된다.

나머지 이야기들 역시 모두 고독한 별처럼 떨어져 있는 존재들이 어떻게든 서로와 연결되려 애쓰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성별조차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에서는, 젠더와 돌봄, 탄생과 죽음의 경계가 다시 질문되고, 다이어트 강박이 우주적 소동으로 번지는 이야기는 ‘몸’이라는 껍데기를 둘러싼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잔인한지를 드러낸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는 작은 동물과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뀌지 않는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를 지키며 기다리는 마음,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음이 무엇인지 조용히 묻는다. AI가 인간 대신 판단하고 돌보는 세계를 그린 이야기는, 편리함의 이면에서 책임과 선택권을 누구에게 넘기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게 하고, 마지막에 실린 표제작 「나는 고독한 별처럼」에서는 멸망이 예정된 콜로니에서, 그래도 서로에게 마지막까지 건네줄 수 있는 위로가 무엇인지, 고독과 죽음을 앞에 두고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부를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일곱 편의 이야기는 모두 배경도 다르고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지만, 책을 읽고 나면 하나의 문장으로 엮이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모두 고독한 별처럼 각자 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멈출 수 없는 존재다. 버섯과 공생하는 사춘기 소녀들, 성별과 형태가 애매한 존재들, 건조한 사막의 생명들, 몸과 목소리, AI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멸망해 가는 공간의 마지막 주민들까지, 이 책 속 존재들은 모두 어딘가 이상한 조건을 가진 채로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씩 손을 뻗어 다른 존재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나는 고독한 별처럼』은 SF 설정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풍부한 상상력과 세계관이 즐거운 책이다. 관계와 정체성, 외로움에 대해 오래 생각해 사람들에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배제해 왔던 존재들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기도 했다.


'퍼블리온 서포터즈 2기' 활동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후훗, 이거 그거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
"맞아. 아플 때도 건강할 때도."
무언가가 톡톡 터지듯이 간질간질하면서 상쾌하고 따뜻한 기분이 샘솟았다. 이런 느낌 뭐지…, 이게 뭐지?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 얼굴도 들지 못한 채 머리를 쓰다듬는 곳코의 손을 꽉 잡았다. 곳코의 손이 내 손가락과 뒤엉켰다. 이상하게 너무 황홀하고 기분이 좋아 그냥 이대로 평생 있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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