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
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이원천 옮김 / 사계절 / 2025년 10월
평점 :

모리오카 마사히로의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는 제목만 보면 반출생주의를 옹호하는 책인가? 싶지만, 실제로는 “태어나고, 살아 있고, 언젠가는 죽게 되는 이 삶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를 아주 길게,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생명철학 입문서에 가깝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부터 드라마 같다. 이라크 전쟁을 앞둔 2003년, 쿠웨이트의 어느 공군기지에서 누군가 영어로 “philosophy of life(생명철학)”를 검색해 모리오카의 웹사이트에 접속한다. 내일 전투에 나갈지도 모르는 군인이었을 그 사람을 떠올리며, 저자는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책을 언젠가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 책은 그때의 다짐에서 출발한, 앞으로 이어질 ‘생명철학’ 시리즈의 첫 권이다.
모리오카가 말하는 생명철학은 단순히 삶의 의미를 묻는 철학이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일, 존재하는 것과 단순히 살아 있는 것의 차이, 몸과 생명의 관계, 다른 생명들과 기쁨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를 희생시키기도 하는 이유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둘러싼 거의 모든 질문을 다루려 한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 철학계에는 언어철학, 마음철학, 역사철학은 있어도 “생명철학”이라는 확립된 분야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유럽만이 아니라 고대 인도·중국·지중해·불교·그노시스주의까지 엮어내는 “세계 철학”의 틀 안에서 새로 짜 보려 한다.
책의 큰 흐름은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어떻게 반복 등장해 왔는지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그래도 태어났으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빼놓지 않는 구조다. 먼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시작한다. 삶의 의미를 잃은 파우스트는 “나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절규한다. 반대로 악마 메피스토는 “애초에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모리오카는 이 둘을 구분한다. 전자는 “내 인생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개인적 절망이고, 후자는 “이 우주 자체가 생겨나지 않았어야 한다”는 전면적인 존재 부정이다. 괴테는 이 극단적인 부정 속에서, 파우스트가 사랑하는 그레트헨에게 “너는 살아야 해!”라고 외치는 장면을 통해 삶의 긍정으로 방향을 틀어 버린다. 모리오카는 이 대사가 탄생 부정의 바닥에서 끌어 올린, 가장 힘 있는 삶의 긍정이라고 읽는다.
이후에는 고대 그리스와 쇼펜하우어로 넘어간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시인 테오그니스의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 그 다음 좋은 것은 빨리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구절들, 그리고 코로스의 합창에 담긴 “생을 얻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는 노래를 통해,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고대 그리스의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사상은 유대교·기독교 세계로도 흘러 들어간다. 구약의 코헬렛(전도서)에서 “나는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가 낫다고 하였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가 더 복되다고 하였다”, 심지어 “사산된 아이가 장수한 어른보다 더 복되다”는 구절까지 등장하는 것은 그런 흐름 속에 있다.
이 표현은 솔직히 지금 읽어도 숨이 막힌다. 특히 유산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잔인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모리오카도 그 충격을 숨기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이것을 “정말 태어나지 않는 게 좋다”는 차가운 선고라기보다, “사람이 이런 세상에서 이렇게까지 고통받는데, 누가 감히 이 현실을 옳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절규로 읽자고 제안하는 것 같다.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더 복되게 보일 만큼, 이 세계의 악과 부조리가 크다는 고발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코헬렛은 결국 “그 생애 동안 즐기고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하며, 헛됨 속에서도 작은 기쁨을 찾아가는 태도를 말한다. 모리오카는 코헬렛을 “탄생 부정과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 작은 기쁨을 찾으려는 마음이 함께 담긴 글로 받아들인다.
이후 책은 반출생주의의 계보를 폭넓게 펼친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삶은 결국 고통이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삶은 즐겁다가도 금방 괴로워지고, 괴로워지면 또 지루해지는, 그런 상태가 계속 오가는 진자 같은 것으로 보였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우리를 반복해서 섹스와 번식을 향해 몰아가지만, 섹스 이후에 남는 것은 기쁨보다 비애와 후회라고 묘사한다. 종(種)의 생존을 위해 개체가 한없이 소모되는 구조 속에서, 그는 “이 세계는 가능한 세계들 중 최악”이라고까지 단언한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단지 감성적인 투정이 아니라, 꽤 치밀한 세계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대에 이르면 에밀 시오랑과 데이비드 베네타가 등장한다. 시오랑은 “진짜 불행은, 태어나 버린 그 자체”라고 말하며 인생 전체를 저주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세상 모든 것이 꿈처럼 멀게 느껴지는 순간을 겪고는 결국 그냥 살아가기로 한다. 모리오카는 이 사례를 통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다”와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한탄이고, 후자는 지금 여기에서 실행 가능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둘을 그대로 이어버리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실제 삶에서도 위험한 혼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짚는다.
베네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가 주장하는 “벤타식 반출생주의(‘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해악이며, 태어나지 않는 편이 언제나 더 낫다’고 보는 입장)”는 쾌락과 고통의 비대칭성을 논리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아무리 행복한 삶이라도 조금이라도 고통이 섞여 있다면, 고통이 전혀 없었던 태어나지 않은 상태보다 나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류가 자살로 한 번에 사라지는 대신, 서서히 출산을 줄여 단계적으로 멸종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인간뿐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동물 전체가 없는 우주, 산과 나무와 바람만 있는 고요한 지구를 이상적인 미래로 그려 보기도 한다.
모리오카는 베네타의 시도 자체에 대해서는 “만용에 찬 시도이지만, 삶의 긍정과 부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인정하고 싶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럼에도 베네타의 탄생해악론은 그 깊은 곳에서 본질적으로 잘못된 논리”라고 분명히 못 박는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탄생해악론은 “사상으로서 어느 정도 성립할 수는 있지만, 베네타가 제시한 논증 자체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일관되고 매끄러워 보이지만, 인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의 복잡하고 깊은 차원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그래도 삶은 소중해요라고 훈계하며 끝나는 것도 아니다. 모리오카는 쇼펜하우어, 부처, 니체, 베네타, 시오랑, 토마스 베른하르트, 그리스 비극, 성서와 그노시스주의, 공리주의 논쟁등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불러내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는 목소리를 정면으로 듣는다. 동시에 니체의 “영원회귀”와 “운명애”처럼, 삶에 “예스”라고 말하려 했던 시도들, 다자이 오사무의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뒤에 놓인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간절함도 함께 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반출생주의냐, 출산 찬성론이냐” 같은 단순한 입장 싸움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마음에 남는 것은, 확실히 누군가에게 삶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어떤 순간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이미 태어나 버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 삶을 긍정하거나 최소한 계속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모리오카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탄생 부정”과 “탄생 긍정”을 끝까지 함께 바라보는 태도를 제안한다. 태어나는 것이 항상 옳다고도, 항상 틀렸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대신,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 철학, 불교와 성서에 이르기까지 2,500년에 걸친 생각들을 빌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이 삶을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내용은 깊고, 글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라는 문장을 쉽게 입에 올리지도, 쉽게 부정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책이다.
ㅡ
'사계절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다‘라는 탄식은 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표현입니다. 일본 문학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태어나서 죄송합니다"<20세기 기수>라는 말이 유명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에는 "아, 인간의 삶은 너무 비참해. 다들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21세기 철학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좋았다’라는 사상은 일반적으로 ’반출생주의, Anti-natalism’라고 불립니다. 반출생주의는 인간이 태어나는 것과 인간을 출산하는 것을 부정하는 사상으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인간이 태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반출생주의에는 몇 가지 변형이 있어서, 한마디로 그 사상을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데이비드 베네타의 탄생해악론도 반출생주의 중 하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