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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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단순히 괴테 명언 모음집이 아니라,

말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일본 최고의 괴테 연구자로 불리는 히로바 도이치.

평생 괴테의 작품을 읽고 가르치며 살아온 사람이다.

어느 날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와 딸과 함께 간 레스토랑에서 딸이 가져온 홍차 티백 꼬리표에서 이상한 문장을 발견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뒤에는 괴테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런데 평생 괴테만 들여다본 그조차 기억에 없는 문장이다.

이 한 줄이 도이치의 삶을 뒤흔든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도이치는 원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말을 일종의 농담이자 주문처럼 여겨 왔다.

독일에서는 아무 말이나 한 뒤 “괴테가 말하길―”을 붙이면 왠지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농담이 있다는데, 젊은 시절의 도이치에게 이 말은 괴테 연구자로 살아가는 자신을 지탱해 준 마법 같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이 말을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쓰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누가 괴테의 명언을 인용해도 ‘어디에 있었더라, 아마 어딘가에서 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자신도 근거가 불확실한 말을 괴테의 권위 뒤에 숨겨 밀어붙일 때가 있었던 것이다.

한때는 힘이 되던 문장이, 이제는 자신을 좀먹는 저주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티백 문장의 출처를 찾아 나선 도이치는 오랫동안 함께 공부해 온 동료 시카리, 제자들, 옛 스승 마나부,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연구자들과 차례로 대화를 나눈다. 시카리는 명언에도 종류가 있다며 세 가지를 들려준다. 너무 길어서 기억하기 쉽게 줄이는 ‘요약형 명언’, 여러 사람을 거쳐 전해지며 누구 것이었는지 흐려지는 ‘전승형 명언’, 그리고 사실은 그 사람이 한 말이 아닌데 붙여 버린 ‘위작형 명언’.

테르툴리아누스, 나폴레옹, 루터, 마더 테레사까지 우리가 교과서와 SNS에서 익숙하게 보아 온 문장들이 하나씩 예로 등장하는데, 읽다 보면 내가 믿어 온 말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 과정에서 시카리라는 인물이 특히 인상적이다.

도이치의 스승 마나부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 그는, 로젠츠바이크 같은 어려운 사상가 이야기가 통하는 드문 친구이자 동료다. 서로 편하게 말을 놓고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상대의 전문성과 생각을 깊이 존중하는 관계로 그려진다. 시카리는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또렷하게 말하지만,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론이 허술하다고 느껴지면 기꺼이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물러선다.

이런 태도가 학문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미덕으로 묘사되는데, 이런 면을 보면서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한 명쯤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리고 ‘나는 주변사람에게 이런 존재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도이치의 태도 역시 배울 점이 많았다. 시카리가 긴 시간 동안 거의 혼자 떠들다시피 할 때에도, 도이치는 짜증을 내거나 대화를 끊지 않는다. 끝까지 듣고, 질문하고,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먼저 상대의 논리를 이해하려 한다. 작중 후반부에 등장하는, 젊은 연구자 쓰즈키와의 술집 장면에서도 도이치의 태도는 일관됐다. 다소 버릇없게 느껴질 수 있는 날 선 질문들이 이어지지만, 그는 거만한 표정을 짓거나 내가 선생인데 하는 식으로 눌러버리지 않는다. 대신 차분하게 묻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타인과의 관계를 호의적으로 유지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해 보면, 결국 이런 ‘경청의 태도’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술집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쓰즈키는 이렇게 말한다.

“전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괴테는 정말로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구나, 그런 생각은 듭니다. 그게 저에게 힘이 되었어요.”

이 말 뒤에 도이치는 “사르트르 같군. 완전성과 불가능성.”이라고 중얼거린다.

쓰즈키는 거기에 “그래서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하고 나서 세상을 떠난 게 대단하게 느껴져요.”라고 덧붙인다.ㅡ 괴테는 『파우스트』를 20대에 쓰기 시작해 80대가 되어서야 겨우 완성했다.

인간의 욕망과 지식, 악마와의 계약, 구원, 세계의 본질까지, 자신이 평생 붙들고 씨름해 온 모든 질문을 한 작품 안에 쏟아부은 셈이다. 괴테는 세상의 진리를 완전히 말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미 누군가가 다 말했으니 이제 그만해도 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진리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 보기 위해 평생을 걸고 생각하고 쓰고 고쳐 나갔다. 쓰즈키가 느낀 ‘대단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진리를 완전히 붙잡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끝내 다 말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 방향으로 계속 걸어간 사람이라는 점에서, 괴테는 그에게 용기를 주는 존재가 된다.

작품 속에서 도이치는 자신이 오랫동안 고민해 온 ‘잼적 세계’와 ‘샐러드적 세계’라는 개념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 흘러내리는 잼 같은 세계와, 각자의 형태를 유지한 채 한 그릇 안에서 어우러지는 샐러드 같은 세계.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라는 티백의 문장은,

마치 이 두 세계를 한 번에 설명해 주는 문장처럼 보인다.

사랑은 모든 것을 마구 섞어 엉망으로 만드는 힘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의 모양을 유지한 채 하나의 전체를 이루게 하는 힘이라는 뜻이다. 도이치는 이 문장이 정말 괴테의 말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 붙인 위작형 명언인지 찾아 나가면서, 동시에 자신이 평생 붙잡고 온 세계의 이해 방식과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이 더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 자신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는 점이다. 2001년생인 수즈키 유이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초등학생이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어른들의 입에서 서로 다른 말이 쏟아지는 경험 속에서, 그는 “도대체 어떤 말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말이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속이고 상처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경험한 셈이다. 그때의 의문이 시간이 흘러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농담 같은 문장과 만나 이 소설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출판사 설명을 읽고 나니, 작품 전체에 흐르는 묵직한 불신과 동시에 언어에 대한 애정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면서도, 말투와 분위기는 의외로 잔잔하고 유머가 있다. 학자들끼리 명언의 출처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를 “생각하는 갈빗대”로 잘못 아는 학생 이야기가 나올 때는 피식 웃게 되고, 가족과 제자들이 서로의 손등에 문장을 적어 가며 기억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 가족의 일상, 학자의 고민, 친구의 표절 사건, 젊은 세대 연구자의 고민이 층층이 쌓이면서도, 마지막에는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는 문장에 자연스럽게 닿는다.

이 책이 끝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세상에는 이미 수많은 명언과 고전, 경전이 쌓여 있고, 우리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그 흔적 위를 다시 걷는 일에 가깝다. 그러나 그 문장을 그대로 외우는 것만으로는 절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괴테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애초에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알면서도, 자기 언어로 다시 말해 보려는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전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괴테는 정말로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구나, 그런 생각은 듭니다”라는 쓰즈키의 고백은 결국 우리에게도 향한다. 완전한 말, 완벽한 문장은 불가능할지라도, 끝까지 말해 보려고 애쓰는 그 방향성 자체가 한 사람의 인생을 버티게 해 주는 힘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빌려 쓰는 대신 내 언어로 다시 말해 보려는 노력을 조금은 더 해 보고 싶어졌다. 동시에, 다 말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그럼에도 계속 말해 보자는 조용한 격려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기보다는,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이 불안하고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래가는 위로로 남는다.

'포레스트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전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괴테는 정말로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구나, 그런 생각은 듭니다. 그게 저에게 힘이 되었어요."
(중략)
"사르트르 같군. 완정성과 불가능성." 한동안 침묵한 뒤 도이치는 겨우 입을 열었다.
"네, 그래서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하고 나서 세상을 떠난 게 대단하게 느껴져요."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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