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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의 작사법
백건필 지음 / 부크크(bookk) / 2025년 7월
평점 :

최근에 AI로 노래 만드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된 개념이 바로 ‘송폼’이었다. 곡이 막연하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벌스(Verse) → 프리코러스 → 코러스라는 구조 속에서 감정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나니, 음악이 그냥 감으로 만들어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의 순서와 규칙을 따라 조립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카피라이터의 작사법』을 읽게 되었는데, 책의 첫 부분부터 반가운 말이 나와 있었다.
그동안 송폼을 그냥 감으로만 느끼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을 딱 정리된 말로 설명해 줘서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이 책은 ‘가사는 감성만으로 쓰는 글이야’ 혹은 ‘감성만으로는 안 된다’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감성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감성만으로는 전달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래 가사는 누군가가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하고, 짧은 문장 안에서 상황, 감정, 메시지가 한눈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가사를 설계하는 글 혹은 조립하는 글로 설명한다. 가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감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없어서인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반응 구조’다. 가사는 진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문장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먼저 있고, 그 사건에 대한 반응이 상황과 감정, 그리고 메시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헤어졌다면, 벌스에서는 그 이별 뒤의 장면을 보여 주고, 프리코러스에서는 마음이 어떻게 흔들렸는지 드러내고, 코러스에서는 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을 가장 강하게 남긴다. 이 구조를 알고 나면 가사를 해석하기 훨씬 쉬워진다.
벌스를 어떻게 써야 할지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말, 행동, 현상, 오감이라는 네 가지 패턴을 이용해 장면을 만드는 방식이다. 상대에게 말을 거는 문장,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행동, 칫솔이나 머리카락 같은 물리적 흔적, 세상이 더 밝거나 더 어둡게 느껴지는 오감의 변화. 같은 이별이라도 이 네 가지 길로 장면을 모아보면 벌스 한 편이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그리고 이 장면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설계도가 바로 “프리셋”이다. 제목, 주제, 화자와 청자, 핵심 메시지, 선행 사건을 미리 정리해두는 작은 기획서 같은 것이다. 노래는 3분짜리 영화라는 말처럼, 촬영 전에 콘티를 짜놓으면 장면이 훨씬 깔끔하게 이어진다. 특히 화자와 청자의 거리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말투 하나만 바뀌어도 가사의 공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보고 싶다”와 “집사야, 오늘도 기다렸어”의 차이처럼 말이다.
표현 방법들도 소개한다. 감정을 설명하지 말고, 현상으로 보여주라는 조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슬프다”라고 말하는 대신 “식탁 위 머그컵만 뜨겁다”라고 하는 문장이 훨씬 오래 남는다. 듣는 사람이 바로 장면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흩어 놓고 잔향을 섞듯이 감정을 커지게 만드는 방법, 통념을 뒤집어서 반전처럼 들리게 하는 방법 같은 것도 예시로 설명돼 있어 어렵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반가웠던 부분은, 노래 가사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않고, 벌스ㆍ프리코러스ㆍ코러스라는 세 개의 짧은 노래를 조립하듯 쓴다는 관점이었다. AI로 생성 음악을 만들 때도 결국 가사를 이 구조에 맞게 넣어야 곡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Suno 같은 프로그램에 직접 내가 쓴 가사를 넣어서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그냥 감상자로만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음악을 경험하게 되는 거니까.
또 재미있던 건 2절과 디브릿지(브릿지 파트)에 대한 설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절만 쓰다 막히는데, 저자는 2절부터가 진짜 실력이라고 말한다. 1절에서 보여준 장면을 그대로 반복하는 대신, 시점이나 공간을 살짝 바꾸거나, 감각을 새롭게 열어서 이야기를 확장하면 된다. 디브릿지는 반복으로 흐트러진 집중을 다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보통 짧게 등장하지만, 분위기를 완전히 전환시키거나 감춰 둔 마음을 드러내는 자리다. 발라드에서 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파트다.
마지막 3절은 결론이자 메시지의 재작성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문장이나 단어를 변형해 더 강하게 남기는 방식이다. 필요하면 키를 올려 감정을 정점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다. 그래서 3절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 노래의 마지막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책의 좋은 점은 “감성적인 조언”이 아니라 “방법과 순서”를 준다는 것이다. 프리셋 → 벌스 → 프리코러스 → 코러스를 조립하고, 2절과 디브릿지, 3절까지 확장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초보자도 충분히 한 곡을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어떻게 남의 마음에 닿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해서, 글쓰기 전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은 노래 가사를 처음 써보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학생들이나 글쓰기 초보자도 이해하기 쉬운 흐름으로 설명되어 있어 부담이 없다. 인스타그램 캡션이나 짧은 카피처럼 짧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음악 제작 프로그램이나 AI로 나만의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최고의 가이드가 될 것 같다. 가사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만 쓰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알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으로 가사의 기본기를 익힌 뒤, 언젠가 정말 나만의 가사를 Suno AI에 넣어 노래 한 곡을 완성해 보고 싶다는 기대감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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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크크bookk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특집 : 2절 쓰는 법 2절은 1절의 구조를 복제 및 변형해서 반복한다. 보통 벌스부터 시작하지만 때로는 벌스를 생략하고 프리코러스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1절을 쓰면 2절은 70% 이상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음의 7가지 구조는 내가 가사를 쓰면서 직접 정리한 것들이다. 1절을 2절로 확장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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