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문장 수업 - 다산 평생의 내공으로 삶의 질서를 만드는 하루 한 문장 필사
정약용 지음, 한정호 엮음 / 구텐베르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문장을 만드는 법을 묻는 책은 많다. 그러나 문장 이전에 사람과 태도를 먼저 세우라고 말하는 책은 드물다. 『다산의 문장 수업』은 바로 그 희귀한 책이다. 다산 정약용은 글을 기술로만 보지 않았다. 글이란 결국 배움(學)과 익힘(習), 그리고 사유(思)의 총합이며, 그 작동이 바로설 때 비로소 기쁨(說)이 따라온다고 보았다. 이 책은 그 믿음을 촘촘한 정의와 예문, 간명한 훈계로 정리해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건넨다.

책의 첫머리에 실린 「학이(學而)」 주석에서 다산은 배움과 익힘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學, 受敎也.(학, 수교야)”

“習, 肄業也.(습, 이업야)”

“時習, 以時習之也.(시습, 이시습지야)”

“說, 心快也.(열, 심쾌야)”

다산의 정의는 간단하지만 아주 구체적이다.

배움(受敎)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익힘(肄業)은 그 배움을 업처럼 꾸준히 반복해 실력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것을 정해진 시간에 계속(時習) 해 나가면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쁨(心快)이 생긴다.

이 네 가지는 이 책 전체를 이끄는 핵심 리듬이자 다산식 문장론의 바탕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에게 억지로 글을 시키기보다 습관과 호흡을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다산은 화려한 요령 대신 매일의 반복으로 삶과 글을 함께 단련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반복만 하면 되는가?

다산은 곧바로 「위정(爲政)」 대목을 통해 사유의 규율을 더한다.

“學, 謂徵之於藏籍。(학, 위징지어재적.)”

“思, 謂研之於自心。(사, 위연지어자심.)”

“罔, 受欺也。殆, 危也。(망, 수기야. 태, 위야.)”

“不究本末而輕信古書, 則或墮於誣罔。(불구본말이경신고서, 즉혹타어무망.)”

“不稽古先而輕信自心, 則所知者危殆。(불계고선이경신자심, 즉소지자위태.)”

“二者不可偏廢也。(이자불가편폐야.)”

여기서 다산은, 배움은 문헌에서 증거를 찾는 일(徵之於藏籍)이고, 생각은 자신의 마음에서 깊이 따져 보는 일(研之於自心)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망(罔: 속음)’과 ‘태(殆: 위태로움)’에 빠진다. 근본과 말단을 따지지 않은 채 고전을 가볍게 믿으면 거짓에 속고, 옛 법을 상고하지 않은 채 제 마음만 믿으면 그 앎이 위태롭다. 결국 결론은 배움과 사유는 어느 한쪽도 폐기하거나 치우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오늘의 글쓰기에도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출처 불명 정보가 넘치는 시대, 글을 빨리 잘 쓰려는 조급함이 우리를 망(罔)과 태(殆)에 밀어 넣는다. 다산은 속도를 늦추고 증거를 세우라고 말한다.

SNS 문장도 마찬가지다. 멋있는 수사를 한 줄 얹는 대신, 무엇을 근거로 말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문장이 아닌 근거와 책임을 배우게 되고, 화려함보다 정직함의 기술을 익히게 된다.

다산이 의도한 ‘문장의 윤리’가 오늘의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다산이 “글은 곧 사람”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문장은 그 사람의 얼굴이기 때문에, 허풍이나 모방, 책임 없는 말은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다산은 멋진 말보다는 핵심(명제), 감탄이 아니라 근거, 선동보다 원칙을 선택한다.

이런 다산의 생각은 현대 문서 작성법과도 자연스럽게 통한다.

짧지만 바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조언들이다.

또 하나 큰 장점은 언어의 뉘앙스를 정확히 세운다는 것이다.

‘習, 肄業也’에서 ‘肄(익힐 이)’를 택한 까닭은 익힘이 단순 반복이 아니라, 업業처럼 꾸준히 들이는 공력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殆(위태할 태)’를 써서, 생각의 게으름이 아니라 근거 없는 지식의 위험을 경계한 것도 미묘하지만 결정적이다. 글자 하나가 사유의 방향을 바꾼다.

한마디로, 이 책은 기술서가 아니라 기준을 세워 주는 책이다.

먼저 배우고(受敎) 익히고(肄業) 정해진 시간에 반복(時習) 하면, 마음이 맑아진다(心快).

또 책에서 근거를 찾고(徵之於藏籍) 스스로 끝까지 생각한다(研之於自心).

즉, 근거 + 사유라는 두 가지 렌즈로 글을 쓰라는 뜻이다.

까다로워 보이지만, 한 번 붙잡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덮고 이렇게 스스로 묻게 된다.

“이 주장의 출처는 무엇이며, 나는 끝까지 생각해 봤는가?”

『다산의 문장 수업』은 근거 있게 배우고, 스스로 깊이 생각하게 도와주는 책이다.

그래서 말만 멋있는 글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글을 쓰게 만든다.


'구텐베르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