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온 - 10년 후, 꿈꾸던 내가 되었다
이은정 지음 / 에피케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은정의 『캐리 온』은 작은 시작에서 출발해, 베풀며 일하는 태도, 일의 전체를 보는 눈, 상실과 돈의 문제를 통과한 경험을 차곡차곡 적어 내려간 에세이다. 이 책은 영웅담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책임이 어떻게 브랜드와 삶의 방향(취향·나눔)으로 이어지는지 보여 준다.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현실에서 얻은 기준과 일하는 방식을 담백하게 전한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목은 엄마가 늘 건네던 한마디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베풀어라. 집에 오는 손님은 빈손으로 보내지 마라.”

저자는 이 말을 단순한 훈육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훗날 브랜드를 만들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그 문장이 오래도록 기준이 되어 자신을 붙잡아 주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자신이 일을 배운 과정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작은 회사에서 바잉·기획·영업을 동시에 맡으며 수익 구조를 직접 계산해 보고, 주어진 예산 안에서 어떤 제품을 들여와야 하고 얼마를 팔아야 이익이 남는지, 한 해의 큰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몸으로 익혔다고 말한다. 반면 대기업에 들어가서는 오히려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솔직히 밝힌다. 직함이나 조직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업의 전체 흐름을 보는 눈이었다. 이때의 전천후 경험이 훗날 자신의 브랜드를 세우는 가장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브랜드가 바로 베베드피노다. 처음 준비했던 자금은 단돈 25만 원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블로그 ‘솔맘 스토리’에서 리뷰와 추천 글을 올리던 사람이었고, 아동복을 좋아해 샘플을 주문하고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은 시도가 점점 자리 잡으며 브랜드가 생겼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으며 성장했다. 이후 주니어 라인의 ‘아이비스킷(ICEBISCUIT)’, 다양한 해외 브랜드와 국내 브랜드를 큐레이션하는 키즈 편집숍 ‘캐리마켓(Carry Market)’까지 확장된다. 현재는 연 매출 1,500억 원 규모의 패션 기업으로 성장했고, 단순히 제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키즈 패션 트렌드를 제안하는 기업’으로 발전했다. 시작이 크지 않아도 방향이 분명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성장은 눈에 띄는 순간보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훨씬 길다. 아산병원에서 엄마와 보낸 1년은 그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입원과 퇴원이 반복되고, 항암 초반의 극심한 통증과 식사조차 못 하던 날들이 솔직하게 이어진다. 그러다 컨디션이 조금만 나아지면 성북동을 걷고, 광화문과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남대문시장을 들렀다가, 엄마가 좋아하던 삼청동 식당에 들렀던 행복한 기억을 꺼내 놓기도 한다. 잠시라도 아픈 일상에서 벗어나 평범한 하루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순간들이었다. 그 과정을 지나며 저자는 엄마의 마음을 새로 이해한다. 왜 식은 밥을 싫어해 따끈한 도시락을 직접 배달해 주었는지, 왜 그토록 부지런히 살았는지. 그리고 어느 날 그 말이 깊게 와 닿는다.

“은정아, 나는 너희가 식은 밥 먹는 게 싫어서 따끈따끈한 도시락 만들어서 배달해 주면서 너희를 위해 열심히 살았어. 너희가 나의 우주였고 나의 전부였어. 너희들이 정말 잘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 시간의 이면에는 냉정한 돈의 현실이 있었다. 당시 임시 실험용 신약은 한 알에 10만 원이 넘었고, 하루에 두세 알을 먹어야 했다. 게다가 1인실 입원비만 하루 40~50만 원, 약값까지 더하면 하루 70만 원이 훌쩍 들었다. 그런 날들이 한두 달 이어지면 1억 원이 족히 넘는 비용이 됐다. 카드를 돌려 막고,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며, 원망과 미안함이 뒤섞이던 시절을 그는 숨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누군가를 돕는 일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는 다짐이 남았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된다면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다.”

그 다짐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베베드피노를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을 지탱하고 기억을 남기는 브랜드로 세우겠다고 마음먹는다. 어느 날, 입원 중인 아이의 보호자로부터 “외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에 꼭 베베드피노를 입는다”는 메시지를 받았고, 급히 기부를 준비하던 중 재고가 부족하고 시간이 촉박해 부득이하게 B품을 보낸 일이 있었다. 내내 마음에 걸리던 그때, 아이에게서 편지가 도착한다.

“제가 태어나서 입어본 옷 중에 가장 밝고 예쁜 옷이었어요.”

그 한 문장을 읽는 순간 그는 소리 내어 울었다. 중요한 것은 새 상품이냐 B품이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심이라는 사실을 더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신상품이 나오자 가장 먼저 그 아이에게 정성껏 포장해 보내며 마음을 전했고, 이후에도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을 위한 지속적인 기부와 지원을 이어 갔다. 그 흐름은 결국 강남세브란스 희귀 난치병(미토콘드리아 질환) 연구기금 후원으로까지 확장된다. 옷을 만드는 일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의 시간도 솔직하게 기록돼 있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쓰러져 링거를 맞았다. 남편이 몰래 이력서를 넣어 다시 일을 시작하게 만든 것도, “내버려 두기에는 더 무너질 것 같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슬픔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리듬 속에서 조금씩 옅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다. 저자는 엄마라는 울타리가 사라지자, 그녀가 지켜준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간은 책임, 법적 절차, 채무 문제를 처음으로 직접 배우는 계기가 되었고, 과하게 순진한 태도를 벗고 현실을 버틸 힘을 만든 시기이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삶의 기준이 생겼다”는 문장이 담담하게 남겨져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취향’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취향은 취향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지를 증명하는 언어라고 말한다. 유행처럼 번쩍이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것, 오래 곁에 둘 수 있는 것, 마음에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 결국 삶의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이 생각은 브랜드 운영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사람을 많이 아는 것보다 진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한두 명만 있어도 충분하고, 브랜드 역시 넓게 퍼지는 이미지보다 오래 남는 신뢰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캐리 온』은 성공을 자랑하는 책이 아니라, 삶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는지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25만 원으로 시작해 연 매출 1,500억 원 회사로 성장한 과정은 단번에 만들어진 업적이 아니라, 작은 선택들이 오랜 시간 쌓여 만든 결과라는 것을 강조한다. “버티며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의 마음이 책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흐른다.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나는 어떤 기준으로 일하고 있는가?

어떤 걸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캐리 온』 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

예비 창업자·1인 브랜드 운영자

브랜딩·마케팅 실무자

커리어 초년생·이직러

키즈 패션/리테일 종사자

사회공헌·기부 관심자

돌봄·상실을 겪는 독자


'북피티 @book_withppt'님을 통해

'에피케 출판사'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시간이 흐르며 하나씩 위시리스트를 채워 가는 과정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 작은 소망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내가 만든 브랜드와 회사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 것>이다. 유행보다 오래 남는 잔잔한 힘, 첫눈에 화려하게 다가오진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것. - P2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