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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뿌리, 한국광복군
조승옥 지음 / 세종마루 / 2025년 11월
평점 :

조승욱의 『국군의 뿌리,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의 기원을 미군정 경비대가 아니라 의병·독립군·한국광복군으로 이어지는 무장 독립투쟁의 계보에서 재정립하려는 책이다. 우리가 흔히 “국군은 미군정 시기 조선경비대에서 시작됐다”고 배워온 통념에 대해, 저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국군의 뿌리를 1907년 대한제국 군대해산 이후 이어진 의병, 그 의병이 만주와 연해주에서 성장한 독립군, 그리고 1940년 충칭에서 임시정부가 창설한 한국광복군으로 이어지는 항일 무장투쟁의 계보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계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 전투 경험과 지휘 방식, 작전 계획, 사람들의 연결, 그리고 군의 정신이 오늘날 국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이 책에서 특히 중요한 문제의식은 이렇다.
국군은 스스로를 누구의 후예라고 말할 것인가?
독립운동이 세운 나라의 군대인가, 아니면 미군정이 만든 치안조직의 연속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상징 싸움이 아니다. 장병의 자부심과 직결된 문제다. 만약 국군의 기원을 조선경비대에만 둔다면, 국군은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 인사들을 바탕으로 미군정이 만든 조직의 후예가 된다. 반대로 국군의 뿌리를 의병‧독립군‧광복군으로 선언한다면, 국군은 일제에 무력으로 저항하고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무장 독립군의 후예가 된다. 저자는 이 차이가 현재 국군의 정통성과 사명감을 결정한다고 본다. 이 주장은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과도 직결된다. 홍범도를 기릴 것인가, 아니면 흉상을 옮길 것인가의 문제는 곧 ‘우리 군이 어떤 전통을 이어받겠다고 공식적으로 말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저자는 먼저 1907년 대한제국 군대해산을 짚는다. 일제는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고 무력으로 진압했지만, 장병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의병으로 전환되었다. 이 의병은 농민들의 즉흥적 봉기 같은 이미지와 달랐다. 이미 훈련받은 해산 군인들이 합류하면서 의병 부대는 조직력과 전투력을 갖춘 실질적인 무장세력으로 발전했다. 이후 많은 인물들이 만주로 넘어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체계적으로 독립군 간부를 길러냈다. 신흥무관학교는 망명지에 세운 사실상의 사관학교였고, 수천 명의 무장 독립 인재를 배출했다. 그 전통은 만주 독립군, 대한민국임시정부, 그리고 광복군으로 이어진다. 즉 국군의 원류는 이미 이때부터 “조직된 무력”의 형태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계보의 분기점이 바로 한국광복군이다. 1940년 충칭에서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했다. 광복군은 상징용 깃발이 아니라 실제 전투부대였다. 총사령 지청천은 만주에서 독립전쟁을 지휘한 실전 지휘관이었고, 광복군은 선전‧심리전‧정보전은 물론,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협력해 일본군 점령지(조선 본토)에 잠입해 정보 수집과 게릴라전을 수행하는 ‘독수리 작전’까지 준비했다. 이 계획은 해방 직전까지 실제로 진행되었다. 즉 광복군은 해방 후 입국하는 난민 집단이 아니라, 해방 이전에 이미 국내에 투입될 준비가 된 국군의 전신이었다. 김구는 이 점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광복군을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군대’로 인정받게 하려고 움직였고, 이를 통해 해방 후 군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다. 이 책은 김구를 단순한 독립운동 상징이 아니라 국군의 정통성을 설계한 인물로 다룬다.
해방 이후의 전개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남한을 통치하던 미군정은 조선경비대와 군사영어학교를 세워 치안과 경계를 맡길 조직을 만들었고, 여기에 일본군·만주군 출신 인사들이 대거 들어갔다. 그래서 “경비대가 국군의 모체”라는 말이 지금까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조승욱은 “그건 절반만 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사 기록을 근거로, 미군정도 광복군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고 보여준다. 미군정은 군 통제부서의 수장 격인 통위부장에 임시정부 참모총장 출신 유동열을 임명했고, 경비대 총사령 자리에는 광복군 출신 송호성을 앉혔다. 즉 미군정조차 광복군 라인을 ‘정당한 주체’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흐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더 명확해진다. 초대 국방부 장관 이범석, 차관 최용덕은 모두 광복군 출신이었다. 초기 사단장들 중 상당수, 육군사관학교 교장들 역시 광복군 출신이 맡았다. 단순히 이름만 들어간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국가 무력기관의 지휘권을 잡은 것이다. 이범석은 특히 중요하게 그려진다. 그는 광복군 지휘 경험을 바탕으로 “국군은 특정 정파의 사병이 아니라, 독립운동이 만든 국가의 군대여야 한다”라고 밀어붙이며 군의 정신적 토대를 설계하려 했던 인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광복군은 상징이 아니라 국군의 실질적 골격에 참여했다는 게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인물의 서사다. 지청천(광복군 총사령), 홍범도(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상징), 이동녕(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켜낸 버팀목), 유동열(임시정부 군 책임자에서 미군정·통위부장으로 이어지는 가교), 이범석(국방부 초대 수장), 최용덕(초기 공군 전력의 씨앗), 그리고 여성 광복군들까지. 특히 여성 광복군 대원들은 모병, 선전, 첩보, 심리전 방송 등 현대전의 핵심 기능을 맡은 주체로 다뤄진다. 저자는 “국군의 뿌리가 광복군이다”라는 말이 남성 영웅 몇 명의 이야기로만 소비되는 것을 거부한다.
국군의 정통성은 더 넓은 기반 위에 세워졌다는 걸 보여준다.
이 책은 마지막으로 묻는다.
국군은 스스로 어디에 닻을 내릴 것인가?
경비대의 후예라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광복군의 후예라고 말할 것인가?
이 질문은 역사 해석 싸움이 아니라 지금과 미래의 문제다.
국군이 “우리는 광복군의 법통을 잇는다”고 선언하는 순간, 군은 단순한 행정조직이 아니라 독립전쟁의 완성선상에 선 민족의 군대가 된다. 그 자의식은 장병의 사기, 국민의 신뢰, 그리고 군이 민주공화국의 통제 아래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기준까지 바꾼다.
『국군의 뿌리,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의 시작점은 미군정의 경비대가 아니라 의병·독립군·광복군이다”라는 사실을 다시 세우며, 국군이 스스로를 그런 역사 위에 소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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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마루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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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인스타 @hagonolza
또 하나의 역사관은,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믿음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후 우리 민족은 쉬지 않고 독립을 위한 투쟁을 이어갔고, 그 끈질긴 노력은 결국 광복으로 이어졌다.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 국군 역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분명한 뿌리가 있으며, 역사적 계승의 흐름이 있기에 그 뿌리를 밝히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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