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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씹어먹는 기술 - 공부보다 재밌는 독서법, 여기 다 있음
김수영 지음 / 포춘쿠키출판국 / 2025년 9월
평점 :

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살고 있다. 짧은 영상, 빠르게 소비되는 요약, 타인의 생각을 짧게 편집한 클립들. 그래서일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면 굳이 책까지 읽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김수영 책임 프로듀서의 『책을 씹어먹는 기술』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자”가 아니라 “왜 지금도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읽었다면 어떻게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다. 저자는 독서를 ‘행위’로 끝내지 않고 ‘기술’로 끌어올린다. 읽기 전 준비, 읽는 중의 집중과 사유, 읽은 후의 확장까지 전 과정을 설계 가능한 루틴으로 보여주면서 독서를 삶의 인프라로 만드는 방법을 안내한다.
책은 먼저 독서의 가치를 아주 기본에서부터 다시 짚는다. 저자는 말한다. 인터넷 검색이나 짧은 영상이 ‘점’이라면, 책은 ‘선’이자 ‘면’이라고. 어떤 주제든 한 문장짜리 사실 조각만 모으면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체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한 권의 책은 저자가 오랜 시간 생각하고 다듬은 논리, 맥락, 역사, 배경, 반론까지 품고 있어서 지식의 뼈대와 살을 한꺼번에 제공한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에 관해 검색하면 “지구가 뜨거워진다”라는 단편 정보는 금방 얻을 수 있지만, 그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어떤 사회적・경제적 영향을 낳는지, 앞으로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는 전문가가 구성한 책을 통해서만 ‘연결된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독서는 이처럼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춰 주는 과정이다. 한 챕터, 한 문단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아하’ 하고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그냥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바로 그 순간들 덕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해력 또한 한 겹이 아니다. 표면에 적힌 내용만 받아들이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말하지 않은 함의를 읽어내고, 타당성을 점검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생각을 만들게 된다. 저자는 이를 표면적 이해, 함축적 이해, 비판적 이해, 창조적 이해의 네 층으로 설명한다. 이 네 층이 단지 시험 성적이나 지식 자랑에만 쓰이는 건 아니다. 실제로 복잡한 상황에서 감정과 사실을 구분하거나, 상대의 의도를 읽고, 판단해야 하는 순간마다 우리가 꺼내 쓰는 건 이 여러 층의 이해력이다. 즉 독서는 단순히 “아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할 줄 아는 사람”으로 우리를 설계해 준다.
이 지점에서 책은 사고력과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강조한다. 책 읽기는 눈으로 따라가는 수동적 활동이 아니라 저자와의 일대일 토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말은 사실일까?”, “왜 이런 결론으로 갔지?”, “나는 동의하지 않는데?” 같은 내적 질문을 던지며 읽는 순간, 우리는 이미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이 뇌 과학적으로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전전두엽을 비롯해 논리적・종합적 사고를 담당하는 여러 영역이 책을 읽을 때 동시에 활성화되며 뇌의 연결망이 강화된다는 설명은, 독서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지능의 기초 체력 훈련’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텍스트를 읽으며 구조를 분석하고(분석적 사고), 정보들을 엮어 전체 맥락을 잡고(종합적 사고), 그 주장에 설득력이 있는지 따져보는 과정(평가적 사고)은 결국 비판적 사고의 근육을 만드는 루틴이다. 이 능력은 지금처럼 가짜 뉴스와 과장된 주장, 자기 확신만 큰 목소리가 넘쳐나는 시대에야말로 필수적인 생존 장비다. 무엇을 믿을지 고르는 힘, 무엇을 거를지 알아보는 힘, 무엇이 나에게 유리하게 왜곡된 정보인지 냄새 맡는 힘. 저자는 이 힘이 독서로 길러진다고 말한다.
독서는 사고만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넓히는 일이라는 점도 강조된다. 특히 소설이나 전기, 서사 중심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한 사람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누군가의 상처, 선택, 망설임, 죄책감, 기쁨을 따라가다 보면 ‘저 사람 입장에서 세상을 보면 저건 이해가 되네’라는 감각이 생긴다. 심리학 연구에서는 이런 몰입 독서를 통해 뇌의 거울 뉴런이 활성화되고, 실제로 타인의 감정을 더 잘 읽고 공감하는 능력이 높아진다고 본다. 공감은 단순히 “너 힘들겠다” 하고 말하는 감정적 동조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그런 상황이 생겼는지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 그 감정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정서적 공감, 그리고 실제로 돕는 행동적 공감으로까지 이어진다. 난민의 기록을 읽고 나면 ‘안타깝다’에서 멈추지 않고 그 사람이 떠밀린 조건 자체를 생각하게 되고, 어떤 시대의 정치적 탄압을 다룬 전기를 읽고 나면 그 선택이 ‘나 같으면 왜 못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이렇게 공감 능력은 타인에 대한 관용, 다양성에 대한 존중, 쉽게 단정하지 않는 태도로 확장된다. 즉 독서는 나라는 좁은 세계를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던 태도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언어 능력과 표현력 역시 독서의 큰 축으로 다룬다. 저자는 어휘력은 단순히 말을 많이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을 정확하게 붙잡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기쁘다 한 단어로 끝나는 날과, 들뜬 마음인지 뿌듯함인지 안도인지 설렘인지까지 구분해서 말할 수 있는 날은 다르다. 단어의 수는 곧 사고의 해상도다. 다양한 표현을 알고 쓸 수 있을수록, 나 자신을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고 타인과도 더 정확하게 소통할 수 있다. 독서는 먼저 듣고 이해하는 ‘수용 어휘’를 폭발적으로 늘려주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내가 실제로 구사하는 ‘표현 어휘’로 옮겨 붙는다. 단어만이 아니다. 문장 구성, 수사법, 문체도 달라진다. 긴 호흡으로 논리를 쌓는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은 자기 생각을 전달할 때에도 기승전결이 생기고, 설득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기며,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표현의 온도 조절이 가능해진다. 이건 발표 자리에서든, 친구와의 갈등 조율에서든, SNS 캡션 한 줄을 쓸 때든 전부 영향을 준다. 결국 말과 글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읽은 만큼 정교해진다는 점을 이 책은 아주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간접 경험과 상상력에 대한 부분은 이 책이 특히 쉽게 설득하는 대목이다. 책은 안전한 ‘시뮬레이션 공간’이다. 우리는 책 속에서 우주비행사가 되었다가, 전쟁터의 간호병이 되었다가, 어느 절벽 끝에서 인생을 걸어야 하는 누군가의 순간을 통과한다. 실제로 가지 못할 장소, 실제로 겪기 두려운 장면, 실제로는 너무 위험한 선택을 정신적으로는 체험해본다. 뇌는 상상된 경험과 실제 경험을 완전히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이런 간접 경험은 단순한 상상놀이를 넘어서 실제 대응력, 문제해결력, 선택지의 폭까지 키워준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른 결말은 가능했을까?” 같은 가정 질문을 던지는 버릇은 결국 창의력의 근육이 된다. 저자는 상상력은 예술가에게만 필요한 재능이 아니라, 문제를 새 방향으로 풀고자 할 때 누구에게나 필요한 기본 역량이라고 설명한다. 독서는 이 상상력 발전소를 꾸준히 돌리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비용 없는 방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독서가 주는 즐거움 그 자체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독서를 때때로 너무 ‘유익’의 언어로만 이야기한다. 공부에 좋다, 사고력에 좋다, 진로에 좋다. 하지만 이 책은 독서가 주는 순수한 쾌감 자체를 한 축으로 세운다. 서사에 빨려 들어가며 시간 개념이 사라지는 몰입감, 궁금했던 질문이 풀릴 때 오는 “아하!”의 짜릿함, 누군가의 문장을 만났을 때 마음이 툭 치이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이 천천히 나를 안정시키며 하루의 긴장을 풀어주는 경험들. 이건 빠르고 강한 자극을 주는 디지털 콘텐츠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충만함이다. 저자는 이를 “느린 즐거움”이라 부른다. 이 느린 즐거움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정신의 회복이라고까지 설명된다. 실제로 독서는 스트레스를 유의미하게 낮추고, 수면의 질을 돕고, 감정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반복적으로 소개된다. 즉 독서는 ‘멍 때리기’가 아니라, 뇌는 움직이지만 마음은 쉬는 적극적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독서를 그 자체로 끝내지 않고, 독서를 내 삶에 편입시키는 방법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는 점이다. 그냥 “읽어라”가 아니라 “읽을 책을 어떻게 고를 것인가”, “언제 읽을 것인가”, “어디에서 읽을 것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하나하나 짚는다. 먼저 책 선택에 관해서 저자는 호기심을 출발점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요즘 내가 계속 생각하게 되는 주제가 뭐지?’, ‘요즘 왜 이 감정이 자꾸 반복되지?’ 같은 질문이 결국 독서의 방향을 잡아준다. 흥미롭게도 이는 단순 취향 문제가 아니라, 나의 현재 상태를 점검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 지식이 필요해서 읽는 책, 위로가 필요해서 읽는 책, 다른 시각을 만나고 싶어서 읽는 책 등 독서의 목적을 명확히 하면, 수많은 제목들 앞에서 길을 잃지 않게 된다. 이건 결국 ‘나한테 맞는 책’을 고르는 감각을 키우는 훈련이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저자는 독서 편식을 경계한다. 우리가 익숙한 장르만 계속 읽다 보면 생각은 편안해지지만, 시야는 좁아진다. 비슷한 주장만 반복해서 만나는 동안 우리는 점점 확신만 커지고 균형감각은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책은 새로운 분야로의 가벼운 확장을 꾸준히 권한다. 예를 들면 소설을 좋아한다면 과학자의 에세이로 건너가 보고, 인문학을 읽는 사람이라면 사회과학의 입문서를 더해보고, 논픽션을 주로 읽는 사람이라면 실화 기반 소설로 감정을 흔들어보라는 식이다. 이런 횡단 독서는 내가 모르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하게 해주고, 다른 분야의 언어로 내 분야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며, 결과적으로는 창의적 사고의 원천이 된다.
실제로 책을 고를 때 도움이 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다룬다. 서평을 읽을 때는 “재밌어요” 같은 감상보다, 왜 좋았는지/어디서 막혔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서평을 참고하라고 제안한다.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쓴 솔직한 서평은 의외로 큰 힌트가 된다. 추천 알고리즘, 지인의 추천, 서점이나 도서관이 선정한 ‘이 달의 책’ 같은 큐레이션도 잘만 쓰면 고르는 시간을 줄여준다. 또 한 가지 실용적인 팁은 목차 분석이다. 목차를 한 번 훑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흐름으로 전개되는지, 주장과 사례의 비중이 어떤지, 내가 지금 원하는 정보가 실제로 들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목차는 말 그대로 책의 지도다. 지도를 보고 길을 떠나는 것과, 감으로 떠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책은 “나에게 맞는 난이도”를 고르는 문제도 중요하게 다룬다. 독서에는 ‘근접 발달 영역’이 있다고 설명한다. 너무 쉬우면 지루해서 금방 흥미를 잃고, 너무 어려우면 좌절해서 금방 포기한다. 가장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건 “약간 어렵다”라고 느껴지는 책이다. 한 페이지를 읽었을 때 모르는 단어가 서너 개 정도 나오지만 맥락은 따라갈 수 있고, 80~90%는 이해되지만 나머지 10~20%는 생각을 요구하는 정도. 이것이 뇌를 자극하면서도 꺾지 않는 난이도다. 이 감각을 익히면 독서는 더 이상 의지력 싸움이 아니라 재미있는 훈련이 된다. 초급 단계에서는 가독성이 좋은 입문서를 통해 완독 경험을 쌓고, 중급에서는 다양한 장르와 비판적 읽기를 연습하며, 고급으로 갈수록 전문서나 고전을 통해 한 주제를 깊이 판다. 즉, 독서는 ‘읽었다/안 읽었다’가 아니라 ‘어디까지 올라갔나’를 보는 계단식 성장 과정이다.
책은 읽기 전 준비, 읽는 환경까지도 깊게 파고든다. 머리말(프롤로그)과 맺음말(에필로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라는 조언이 특히 흥미롭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 머리말에서 저자가 던지는 문제의식과 질문을 먼저 잡아두면, 읽는 동안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이건가?”라는 식으로 독서의 초점이 생긴다. 다 읽은 뒤엔 맺음말로 돌아가 결론과 메시지를 다시 수집하면서 전체 구조를 재정리할 수 있다. 심지어 다시 읽을 땐 맺음말부터 먼저 보고 시작해도 새로운 각도로 책이 열린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팁 같지만, 사실은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잊어버리는 독서’와 ‘내 사고 체계 속으로 설치되는 독서’를 가르는 차이이기도 하다.
독서 공간에 대한 부분도 현실적이다. 독서 공간은 그냥 의자와 책상이 아니라, “여기 앉으면 읽는 모드로 전환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반복적으로 같은 자리에서 읽으면 그 장소 자체가 “이제 집중할 시간”이라는 신호가 된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맥락 의존 학습이라고 불리는 부분인데, 결국 장소와 행동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집중 에너지를 아끼는 전략이다. 완벽한 고요만이 답도 아니다. 일정한 배경 소음(자연음처럼 안정적인 40~50dB 정도)은 오히려 집중을 돕고, 갑작스러운 말소리나 알림처럼 주의를 끊어먹는 요소만 제거해 주면 된다. 빛 역시 중요하다. 너무 어둡지도, 너무 눈부시지도 않은 중간 밝기에서 책 전체가 고르게 보이도록 조명 환경을 만드는 게 눈의 피로를 줄이고 오래 버티게 해준다. 특히 한 번 집중이 깨지면 다시 몰입 상태로 돌아오는 데 평균 20분 이상 걸린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방해 요소(소음, 화면 알림, 마음속 걱정)를 줄이는 건 사소한 게 아니라 독서 효율성 그 자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는 읽기 전 짧은 호흡이나 메모를 통해 머릿속 잡념을 덜어내라고 조언한다. “읽어야 하는데…”라는 죄책감 상태로 억지 독서하지 말고, 읽을 수 있는 마음 상태로 스위치를 옮겨놓으라는 것이다.
시간 관리에 대한 조언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사람은 “언젠가 한가해지면 책 좀 읽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한가한 때’는 오지 않는다. 저자는 이것을 인간이 미래의 여유를 과대평가하고 당장의 급한 일에 끌리는 심리적 편향(계획 착오, 즉시만족 편향)이라고 설명한다.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거창하게 주말 3시간을 비워놓는 게 아니라, 아침 15분, 점심시간 10분, 자기 전 20분 같은 작고 반복 가능한 시간을 먼저 확보하라는 것이다. 이 작은 시간을 하루의 블록으로 미리 예약해두면, 독서는 ‘남는 시간에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생활 리듬’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리듬이 결국 습관이 된다. 연구에서 평균 66일 정도면 새로운 습관이 몸에 붙는다고 알려져 있듯, 독서는 의지로 벼락치기하는 활동이 아니라 일과에 포함시켜 길게 가는 활동이라는 관점이 중요하다. 자신이 아침형인지 밤형인지(크로노타입)를 고려해 가장 머리가 맑거나 가장 방해가 적은 시간을 고르는 것도 전략이다. 출퇴근 지하철, 점심 후 10분, 잠들기 직전처럼 이미 존재하는 ‘틈’을 독서 시간으로 지정하는 것만으로도 꾸준함은 확률이 확 올라간다.
이런 준비와 읽기 과정을 바탕으로, 책은 독서 이후의 단계까지 확장한다. 즉, 읽고 덮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반드시 ‘내 언어로 남겨라’고 강조한다. 독서 노트를 쓰는 방법, 기억에 남은 문장을 옮겨 적고 왜 좋았는지 적어두는 방법, 내 삶과 연결되는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방법 등이 소개된다. 이 과정은 내가 읽은 책을 한 번 더 내 안에서 씹는 과정이며,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씹어먹는”이 다시 의미를 얻는다. 단순히 필사나 요약을 넘어서, “이 문장이 나한테 왜 중요하지?”, “이 상황을 내 일에 적용하면 뭐가 달라지지?” 같은 질문을 붙이면, 그 책은 더 이상 남의 책이 아니라 내 책이 된다. 더 나아가 책은 독서 내용을 말로 꺼내 보는 것을 권한다. 주변 사람과 토론하거나, 짧은 서평을 쓰거나, SNS에 핵심 인사이트를 정리해 올리는 것 또한 사고를 외부로 내보내면서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질문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사각지대를 드러내주고, 그 순간 생각은 한 번 더 확장된다.
한편 책은 독서가 항상 순조롭지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 누구에게나 독서 슬럼프는 온다. 바쁘고, 지치고, 한 권을 붙들 힘이 없을 때가 있다. 저자는 이런 순간을 실패로 규정하지 말고 시스템으로 돌보라고 제안한다. 난이도를 잠깐 낮추거나(편안하게 읽히는 책으로 전환), 전자책으로 가볍게 훑어보거나, 아예 기존에 읽던 책의 맺음말만 다시 보는 식으로 독서의 끈만 유지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서를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는 감각, 즉 ‘나는 읽는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독서는 열심히 할 때만 하는 기획 프로젝트가 아니라, 컨디션에 맞게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이라는 메시지다.
결국 『책을 씹어먹는 기술』은 책 읽는 법을 가르치는 책을 넘어서, “독서를 통해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묻는 책이다. 지식을 구조화해 이해하는 힘, 비판적으로 골라내는 힘, 타인을 깊이 감각하는 힘, 정교하게 말할 수 있는 힘, 상상력으로 미래를 시험해보는 힘,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나를 회복시키는 힘까지. 저자는 이 힘들을 어느 날 갑자기 얻는 게 아니라, 하루 단위의 읽기, 나에게 맞는 책 고르기, 공간과 시간 설계, 기록과 나눔 같은 반복 가능한 기술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이 제안하는 독서는 어느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다. ‘지금의 나’에서 출발해 ‘조금 더 생각하는 나’로 가기 위한,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행동 설계다. “언젠가 책을 제대로 읽어봐야지” 하고 미뤄두던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 막연한 다짐을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한 번의 읽기’로 바꿔 준다. 그리고 그 작은 한 번의 읽기가 계속 이어지면, 결국 당신의 하루와 생각, 그리고 삶 전체를 바꾸는 힘이 된다고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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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쿠키출판국'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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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통한 지식 습득은 단순한 정보 수집과 다릅니다. 인터넷 검색이나 짧은 영상이 ‘점‘ 형태의 정보를 제공한다면, 독서는 ‘선’이나 ‘면’ 형태의 체계적 지식 구조를 제공합니다. 책은 저자가 오랜 연구와 사색으로 구축한 완성된 지식 체계를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인터넷 기사들보다 전문가의 책을 통해 역사적 배경, 과학적 원리, 사회적 영향, 미래 전망까지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체계적 지식은 우리 사고를 더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듭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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