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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제국 쇠망사 -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헨리 지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평점 :

지구의 역사에서 수많은 종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공룡은 인류의 상상 속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로 남아 있다.
트라이아스기 말기에 등장해 약 1억 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지만, 6,600만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운석일 수도 있고, 전염병이었을 수도 있으며, 단순한 생식 실패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단 하나다.
지배자라고 해서, 오래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인류에게 너무도 정확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공룡과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있을까?”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까지 그 어떤 생명체보다 뛰어난 생존력을 보여왔다. 농업혁명으로 식량을 안정시켰고, 산업혁명으로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늘렸으며, 과학혁명과 녹색혁명을 통해 기근과 전염병까지 돌파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구 생태계 전체를 사실상 독점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정점이 바로 전환점일지도 모른다. 선진국을 시작으로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고, 유엔과 여러 연구기관은 머지않아 인류 전체가 감속 구간으로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보고서 속 문장이 아니라, 매년 갱신되는 폭염과 폭우, 예측 불가능한 날씨로 현실을 흔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전염병이 여전히 문명을 경직시킬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인류는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의해 흔들리는 존재가 되었다.
헨리 지는 이 책에서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한때 변방의 소수 종이었던 호미닌은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러 폭발적인 개체 수 증가를 통해 지구를 장악했지만, 이제는 그 증가세가 꺾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역자는 후기에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역사는 인구 곡선과 함께 읽으면 더 선명해진다고. 개체 수가 늘어날 때 종은 팽창하지만, 정점에 이른 종은 내부 요인에 의해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로마제국이 외부의 침략이 아닌 내부의 붕괴로 무너졌듯이, 인류 또한 동일한 궤도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비관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마지막에 뜻밖의 방향을 제시한다. 지구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다면, 지구 바깥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달이든, 화성이든, 소행성 내부든, 혹은 인공 거주지든 상관없다. 심지어 유전자 기술을 동원해 새로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인간 자체를 개조하는 방안까지 거론한다.
처음엔 터무니없이 들리지만, 기묘하게도 설득력은 누적된다. 과거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났던 두 차례의 대이주 역시 계획된 도약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본능적 이동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불안 역시 세 번째 이주를 향한 신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묻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멸종을 두려워하며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진화를 감수하며 이동할 것인가.
어쩌면 답은 이미 결정된 상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또 한 번 떠나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지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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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글방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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