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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뇌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단 하나, 상상에 관한 안내서
애덤 지먼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10월
평점 :

아담 지먼의 『상상하는 뇌』는 상상을 “마음의 눈”이라고 부른다. 상상은 과거를 떠올리고 미래를 미리 그려 보게 하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낮에는 계획을 세우게 하고, 밤에는 꿈으로 모습을 바꿔 찾아온다고 말한다. 상상은 즐거움과 창조를 가져오지만, 때로는 몽상과 환각처럼 어두운 모습도 만든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빛과 그림자를 함께 알아야 우리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책은 먼저 상상이 왜 중요한지부터 보여 준다. 우리는 매일 머릿속에서 장면을 만든다. 시험을 앞두고 발표 장면을 떠올리고, 친구 표정을 기억해 보며 그 마음을 짐작한다. 소설을 읽을 때는 글 속 단서로 인물의 목소리와 장소를 그린다. 이 과정에서 뇌는 들어온 감각을 그대로 받기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 빈칸을 채우며 “그럴듯한 화면”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현실도 완전히 날것의 사실이 아니라, 뇌가 추측과 보정을 거쳐 만들어 낸 결과에 가깝다고 알려 준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경험을 “제어된 환각”에 비유한다. 엉뚱한 환각이 아니라, 질서 있게 조율된 해석이라는 뜻이다.
상상의 뿌리를 언어에서도 찾는다. ‘이미지’와 ‘상상’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마음속 그림과 바깥세계의 초상·조각 같은 표상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소개한다. 그래서 상상은 원래 내면과 외면을 이어 주는 다리 같은 개념이었다고 풀이한다. “나는 상상한다”가 동사형인 것도 이유가 있다. 상상은 가만히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기억 조각과 지금의 상황을 직접 모아 조립하는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문학의 비유, 과학의 가설, 예술의 실험이 모두 이 조립 위에서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상상을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조립 기술’로 이해하면, 누구나 연습으로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사람마다 상상 방식이 다른 점도 중요한 내용이다. 어떤 사람은 눈앞에 그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어떤 사람은 말과 논리로 장면을 세운다. 또 어떤 사람은 소리·냄새·촉감 같은 감각이 먼저 온다. 저자는 이 차이를 능력의 높고 낮음으로 보지 않는다. 선호하는 입력 통로가 다를 뿐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통로를 알면 공부와 글쓰기, 발표 준비를 더 잘 설계할 수 있다. 그림형이면 도식과 스케치를 먼저 쓰고, 말·논리형이면 핵심 문장을 먼저 세우고, 감각형이면 소리나 리듬·몸의 느낌을 먼저 불러오면 도움이 된다고 제안한다.
상상은 발달과 진화의 역사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아이는 역할놀이로 규칙을 배우고, 없는 물건을 있는 것처럼 쓰며 문제를 푼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운동선수가 실제로 뛰지 않아도 동작을 머릿속으로 반복해 기록을 올리듯이, 우리는 발표·면접·협상 전에 머릿속에서 예행연습을 한다. 언어와 상징은 마음속 이야기를 서로 나누게 만들었고, 그 공유가 제도와 기술, 예술의 바탕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상상은 소수 예술가의 특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 기술이라는 관점이 설득력을 가진다.
책의 후반부는 상상의 어두운 면을 구체적 사례로 보여 준다. 외부 자극을 크게 줄이면, 오히려 뇌의 내부 활동이 두드러진다. 감각 차단 탱크 같은 곳에 있으면 몇 시간이나 며칠 안에 많은 사람에게 환각이 생긴다는 연구가 소개된다. 빛이 거의 없는 공간에 오래 있는 수감자가 점과 무늬, 잔상을 보기도 하는데, 이를 “죄수의 영화관”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극지 탐험에서 보고되는 기묘한 “누군가의 존재감”, 종교적 금욕 중의 환시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익숙한 입력이 끊어지면 뇌가 빈칸을 못 견디고 스스로 화면을 채우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시력을 잃은 노년층에서 나타나는 환각도 자세히 다룬다. 단순한 섬광과 줄무늬부터 그물·격자 같은 기하 무늬, 더 복잡한 장면까지 다양하게 보인다고 정리한다. 대개 위협적이지 않고 주변 상황과 크게 어긋나지 않으며, 바깥에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의학에서는 이를 샤를 보네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외부 입력이 줄어 내부의 예측과 기억이 전면으로 올라온 결과로 설명한다. 배우자를 잃은 뒤 목소리나 손길을 느끼는 경험도 비슷하다. 오랜 애착이 뇌에 깊이 새겨져 있어 결핍이 커지면 뇌가 스스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고 설명한다. 이때 떠오른 심상이 현실과 겹쳐 아주 생생한 만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인다. 애도기의 환각을 무조건 ‘이상’으로만 보지 않고, 애착 회로의 보정 작용으로 이해하면 불필요한 낙인을 줄일 수 있다는 시선이 도움이 된다.
병적인 경우도 소개된다. 어떤 환자는 발작이 오기 직전에 형언할 수 없이 지독한 냄새를 맡았다. 이는 측두엽에서 비정상적인 발화가 퍼지기 직전 뇌가 “경보”를 올리는 신호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문장을 남긴다. 경험은 본래 “제어된 환각”이어서, 상황에 따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쉽게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리를 알면 두려움이 줄어든다고 강조한다. 진단이 사람을 낙인찍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이해를 돕는 도구일 때 치료에 힘이 된다.
잠과 상상의 관계도 실생활에 바로 쓸 수 있게 풀어 준다. 막 잠에 들 무렵에는 의식을 단단히 붙잡던 통제가 느슨해진다. 그 틈에서 안쪽 생각의 흐름이 힘을 얻어 엉뚱하지만 유용한 연결이 튀어나온다. 심한 피로나 특수한 조건에서는 깨어 있음에서 바로 꿈 단계로 미끄러지는 일도 생긴다고 설명한다. 수면 마비는 꿈의 장면과 강한 감정이 깨어 있는 의식 위로 겹쳐 올라오는데, 몸은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한다. 매우 무섭지만, 잠의 단계와 깨어남이 비정상적으로 겹친 결과이니 곧 지나간다고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고 안내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상상은 꾸밈이 아니라, 뇌가 현실을 운영하는 기본 방식이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통로와 조립 습관이 다르다. 그 차이는 잘하고 못함의 문제가 아니라 개성이라고 말한다. 상상은 예술, 과학, 학습, 치료, 애도, 의사결정까지 넓게 연결되는 공통 언어라고 정리한다. 현실을 다르게 살고 싶다면, 먼저 상상을 쓰는 습관을 바꾸면 된다. 그림으로 떠올리던 사람은 말로, 말로 정리하던 사람은 냄새·소리·촉감 같은 감각으로도 떠올려 본다. 멍하니 산책하거나 잠깐 쉬는 시간처럼 느슨한 틈을 일부러 만든다. 예상이 빗나가면 뇌가 빈칸을 채워 넣으려 한다는 점을 기억하고, 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급히 믿지 말고 한 번 더 확인하면 된다.
이 책은 상상을 밝음과 어둠으로 나눠 단순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같은 작동 방식이지만, 상황이나 정도에 따라 모습이 다르게 나타날 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상상은 모두의 일상 기술이라고 말한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차분한 설명과 풍부한 사례가 이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상상이 삶을 움직이는 엔진이라면, 우리는 그 엔진의 구조를 이해하고 손질하는 법을 배우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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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 상상imagination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힘이다. 이 힘은 우리를 ‘지금 이곳‘에서 벗어나게 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내다본다. 소설가와 영화 제작자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를 탐험하고 창조의 첫 순간에서 우주의 가장자리, 심지어 원자의 심연까지도 여행할 수 있다. 상상은 깨어 있는 낮뿐 아니라 꿈꾸는 밤에도 우리를 찾아온다. 때로는 창의력과 영감으로, 때로는 몽상과 환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만큼 상상은 삶의 기쁨과 성취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고통과 어둠도 불러온다. 하지만 그 어둠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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