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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지 않는 100일 필사
샘 혼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25년 9월
평점 :

샘 혼의 『적을 만들지 않는 100일 필사』는 그의 스테디셀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에서 선별한 구절들을 하루 한 장씩 베껴 쓰도록 재구성한 책이다. 2008년 국내 초판 이후 2023년 15주년 특별판까지 이어진 원전의 긴 생명력을 배경으로, 핵심 문장만 곁에 두고 두고 읽고 싶다는 독자의 요청이 쌓여 비로소 “읽기-생각하기-대입하기”가 일상의 리듬이 되도록 설계된 필사본이 탄생했다.
전체 100일의 구성이 14개의 주차로 나뉘어 있고, 매 7일마다 그 주에 읽은 문장들을 다시 정리해 보고, 짧은 질문에 답하는 글쓰기 시간이 이어진다. 이 책은 주 단위 흐름에 따라 분노·경청·유머·행동 같은 주제를 차례로 돌아보게 한다. 좋은 문장을 읽고 곱씹은 뒤 내 상황에 빗대어 생각해 보는 그 과정을 통해, 익숙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키워 주고, 자신을 모습도 반추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초반부의 문장들은 무엇보다 ‘해석의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각자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본다는 아나이스 닌의 말,
본래부터 좋거나 나쁜 일은 없고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라는 셰익스피어의 경구와,
괴로움의 근원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이며 그 생각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통찰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이 흐름은 갈등의 원인이 바깥에서 벌어진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일깨워 준다. 그래서 대화의 첫 단추는 상대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같은 일을 바라보는 내 해석의 틀을 고치는 데서 시작된다.
여기에 타이런 에드워드의 “의견을 절대 바꾸지 않거나 실수를 고치지 않으면 내일 더 현명해질 수 없다”,
피츠제럴드의 “서로 반대되는 두 생각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능력” 같은 문장이 이어져,
옳고 그름의 줄다리기에서 한 발 물러나는 유연성이야말로 배움과 협력의 문을 여는 조건임을 보여 준다.
중반부에서 책은 분노를 새로 이름 붙인다. 샘 혼은 화가 났다는 것은 사실 내 입장에서만 상황을 본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분노의 대부분은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울부짖음이다. 분노를 나쁘다거나 좋다고 단정하지 말고, **지금 다뤄야 할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보라는 뜻이다.
공자는 부당한 일을 계속 기억하는 습관이 우리를 소모시킨다고 경고하고,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눈눈이이' 팃포탯 전략과 같은 방식이 결국 모두를 장님으로 만든다고 일갈한다.
이 책의 주간 글쓰기 질문—“분노가 올라왔을 때 나는 어떻게 했나, 다음에는 어떻게 해 보고 싶은가”—은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연습을 돕는다.
핵심은 세 단계다: 말로 표현하고, 상황을 정리하고, 상황을 정리한 뒤 마음을 내려놓는 것.
이 단순한 회복 루틴이 바로 ‘적을 만들지 않는 태도’의 뼈대다.
경청과 인정의 언어는 여러 장에서 다른 각도로 변주된다.
스콧 펙의 “집중해 들으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은 전신(全身) 경청의 기준을 세운다.
불평을 들을 때는 사실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사실이라면 “그 말이 옳습니다”라는 한마디로 방어를 낮추라는 샘 혼의 조언은,
대화를 싸움이 아니라 협력의 설계로 돌리라는 뜻을 전한다.
조슈아 리브먼이 정의한 인내(남의 믿음과 습관을 이해하려는 긍정적이고 진실한 노력)는 동의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의 태도임을 명확히 하며, ‘맞는 말’보다 ‘잘 건네는 말’이 관계의 방향을 바꾼다는 책의 일관된 입장을 드러낸다.
언어의 절제와 편집에 관한 구절들은 짧지만 오래 남는다.
셰익스피어의 “운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말을 다듬어라”,
켈빈 쿨리지의 “내가 말하지 않은 것 때문에 상처받은 적은 없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나중에 되삼키려 애쓰지 말고 그 순간 꿀꺽 삼켜라”는 말은
한 번 더 생각하고, 한마디 덜 말하는 말의 절제가 관계의 방향을 바꾼다.
같은 이유로 샘 혼은 명령을 제안으로 바꾸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세요” 같은 지시는 반발을 부르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같은 제안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다.
말투를 “하지 마”에서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로 바꾸는 순간, 상대의 체면은 지켜지고 내 의도도 더 분명하게 전달된다.
긴장을 줄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유머다.
멜 브룩스가 말했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은 코미디가 많다.” 요기 베라의 말처럼 “웃음은 삶의 펀치를 흡수하는 완충 장치”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연민과 가벼움이 없는 대화는 금방 격해지고 망가지기 쉽다. 유머는 상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날 선 순간을 안전하게 지나가게 해 주는 완충재다.
책의 후반부는 한 가지 원칙을 거듭 강조한다. 말은 행동으로 이어질 때 신뢰가 생긴다.
헨리 포드는 사람들이 문제를 풀기보다 그 주변만 맴돈다고 지적하고, 괴테는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못 박는다. 롱펠로는 왜 틀렸는지 설명하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더 짧다고 말하고, 존 바에즈는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행동이라고 덧붙인다. 결국 ‘적을 만들지 않는 말’은 문제를 해결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말이다. 말만 늘어놓고 멈춰 있는 말이 아니다.
한국어판의 어휘 선택도 이 책의 뜻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톺아보다’처럼 ‘샅샅이 살피다’라는 뜻의 우리말을 앞세워, 관계 속 문장들을 더 꼼꼼히 보게 한다. 나도 처음엔 ‘톺아보다’가 오타인 줄 알았는데, 실제 있는 말이라 놀랐다. 이렇게 문장을 따라 쓰다 보면, 몰랐던 단어를 배우는 재미도 생긴다.
“세상이 냉정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럴지 모른다”는 문장 역시, 남 탓보다 내 말습관부터 살펴보자는 이 책의 메시지를 한 줄로 요약한다. 공자의 “더 알수록 더 용서하게 된다”, 『바가바드 기타』의 “사람은 자기 믿음대로 만들어진다”는 말도 같은 뜻을 받쳐 준다. 결국 말습관이 내 태도와 믿음을 드러내고, 다시 그 말습관이 나를 바꿔 간다는 생각이다.
정리하면, 『적을 만들지 않는 100일 필사』가 하루 5분의 리듬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 갈등은 사건 그 자체보다,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커진다.
- 유연함은 옳고 그름 싸움을 넘어 지혜의 조건이다.
- 분노는 신호다. 잘 표현하고, 정리하고, 넘어가는 기본 루틴이 필요하다.
- 경청과 인정이 모든 대화의 출발점이다.
- 말은 덜 하고, 늦게 하고, 다듬어서 하자.
- 지시는 반발을 부르고, 제안은 자발성을 부른다.
- 유머는 대화의 충격을 줄여 준다.
- 설명은 짧게, 해결은 빠르게, 절망할 틈에 작게라도 행동하자.
- 더 알수록 더 용서할 수 있다.
이 책은 100개의 짧은 문장으로, 갈등을 키우던 말습관을 신뢰를 쌓는 말습관으로 천천히 바꾸는 길을 보여 준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세상이 각박해서가 아니라, 내가 각박하게 말하고 있던 건 아닐까?”
그 질문을 거울 삼아, 고칠 건 고치고 강점은 더 다듬자. 나를 지키는 경계는 분명히 하면서도, 상대와는 더 부드럽게 연결되는 말을 배우는 것. 그것이 이 책이 건네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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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갈매나무 출판사'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003/100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면, 그건 사실 당신 입장에서만 상황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 샘 혼, 커뮤니케이션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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