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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를 마십니다
이유진 지음 / 스토리닷 / 2025년 9월
평점 :

매일 커피를 3–4잔은 기본으로 마신다. 푹 잤다고 생각해도 아침마다 개운하지 않고 피곤이 가시지 않는 이유를 몰랐다. 건강한 성인이 카페인을 배출하는데 평균 5시간이 걸려 뇌가 편히 잠들지 못한다는 설명을 읽는 순간, 그 답을 찾은 듯했다. 그때부터 이 책이 들려주는 “차의 세계”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을 조정하는 기술로 다가왔다. 저자는 먼저 ‘차’의 범위를 곧게 세운다. 차를 두 갈래로 보면 이해가 쉽다. 먼저 우리가 흔히 “티(tea)”라고 부르는 것은 한 가지 식물, 카멜리아 시넨시스의 잎으로 만든 음료다. 여기서 녹차·백차·황차·우롱차(청차)·홍차·흑차가 갈라지는데, 흑차처럼 미생물이 관여하는 경우를 빼면 대부분은 잎이 공기와 만나 색과 향이 진해지는 ‘산화’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반대로 생강차, 대추차, 허브차, 루이보스처럼 차나무 잎이 아닌 다른 재료를 우리거나 달여 만든 음료들도 일상에선 모두 ‘차’라고 부른다. 그래서 ‘티(tea)’는 차나무 잎으로 만든 좁은 범위를, 넓은 일상어로서의 ‘차’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 넓은 범위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면 된다.
맛의 차이는 만드는 방식에서 나온다. 한국의 덖음녹차는 뜨거운 솥에 잎을 재빨리 덖어 산화를 멈추는 방식이라 향이 고소하고 깔끔하다. 일본의 증청녹차는 뜨거운 증기로 산화를 막아 잎이 바늘처럼 곧게 말리고, 해조류를 떠올리게 하는 감칠맛이 또렷하다. 이 기본만 알면 같은 ‘녹차’인데도 향과 질감이 왜 다르게 느껴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우리기 온도나 시간, 나라별 차 문화 설명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훨씬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책 내용 중,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기’에서 저자는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티백의 오해를 짚는다.
우리는 보통 아무 생각 없이 티백을 뜯어 머그컵에 넣고 뜨뜻미지근한 정수기 물을 붓고, 무의식적으로 위아래로 흔들어 색만 보고 마신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더 진해지다 못해 ‘홍차 육수’가 되곤 한다. 하지만 티백이라고 해서 본질이 다른 건 아니다.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바스러진 같은 찻잎을 담았을 뿐이다. 사실 재료는 같다. 크기만 다를 뿐. 다른 것은 온전한 찻잎과 티백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잎차처럼 물 온도와 시간을 조금만 신경 써서 차분히 우리면, 티백 홍차도 일반 찻잎 형태의 고급 홍차 못지않은 풍미를 선사한다. 저자는 차 입문반에서 신경 써서 우린 티백 홍차를 내어 드리면 다들 눈이 동그래지며 “티백 홍차에서 이런 향기를 느낄 수 있느냐”며 깜짝 놀란다고 한다. 결국 ‘티백=평범’이라는 판단은 겉모양만 보고 내린 성급한 결론이었다. 재료는 같고 달라진 건 우리의 태도였으니, 사람이나 일, 물건도 겉만 보고 평가하면 본래의 가능성과 깊이를 놓치기 쉽다는 걸 깨닫게 한다.
‘차곡차곡’은 차와 술을 동시에 좋아하는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는데, 차와 술을 함께 즐기던 옛 풍류에서 출발했다. 예로부터 술을 ‘곡차’라 불렀듯, 차와 술을 같이 마시는 문화를 ‘차곡차곡’이라 했고, 이 조합의 핵심은 서로의 맛을 돋워준다는 데 있다고 한다. 안주가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어울림이 좋으면 미각이 폭발하고, 술이 오르면 차가 다시 깨워 정신이 또렷해진다. 빠르게 취하고 많이 마시는 방식이 아니라, 섬세한 페어링으로 균형을 찾는 자리다.
이 책은 그중 인상적인 세 가지 페어링을 예로 든다. 첫째, 술아 매화주 × 상선암 설중매: 여주 햅찹쌀로 빚은 과하주에 매화꽃 향을 입힌 술과, 지리산 상선암에서 눈 속 매화를 덖어 만든 차가 만나 은은한 매화 향을 두 겹으로 겹친다. 둘째, 횡성양조 온향 팔줄배기 × 정총철관음: 토종 옥수수 ‘팔줄배기’를 증류해 오크·옹기에서 숙성한 고도주 한 모금 뒤에 대만 우롱 ‘정총철관음’을 잇는다. 오크의 달큰함이 살아난 뒤, 우롱이 깔끔하게 마무리해 ‘후운’이 맑다. 셋째, UF Beer Don(수퍼세종) × 압끼빠산드 사프란 마살라 짜이: 보리 향과 꽃·스파이스 뉘앙스를 지닌 세종 스타일 맥주에, 우유 없이 스트레이트로 우린 사프란 마살라 짜이를 맞춘다. 섬세한 사프란과 향신료의 층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서로의 향을 밀어 올린다.
세계의 차문화를 따라가다 보면 태도가 먼저 교정된다. 차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임에도 카페와 술집에서조차 차 메뉴가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카자흐스탄의 풍경이 그 증거다. 민트와 오렌지를 기본으로 한 타슈켄트 티, 곡식 기장을 넣어 한결 부드러운 밀크티, 산자나무(씨벅톤) 열매를 활용한 상큼한 블렌딩까지—다민족이 어우러진 차문화는 “오만할수록 문은 닫히고, 겸손할수록 문은 열린다”는 깨달음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내가 아는 브랜드와 레시피가 전부가 아니며, 세상은 넓고 차는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영국이 ‘홍차의 나라’가 된 과정도 한쪽 면만 보지 않는다. 귀족의 애프터눈 티만이 아니라, 산업혁명으로 길어진 노동을 지탱하던 하이 티—머그에 진하게 우린 티백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던 방식—가 대중화를 이끌었다. 인도·스리랑카에서의 대량 재배·공급, 우유·설탕에 맞춘 CTC(자르고·비비고·말기) 공정의 보급이 기술적 기반이 되었고, 그 덕분에 홍차는 일상의 음료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중국의 전통 제다나 하동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공부차’는 장인의 실력과 경험이 더해진 예술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책은 이 둘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예술을 흉내 낸 과장 광고를 경계하면서도, 일상에서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대중의 차를 현명하게 고르라고 조언한다.
일본의 사례는 ‘차가 리추얼이기 전에 생활’임을 보여준다. 물병에는 생수 대신 보리차·루이보스·우롱이 들어 있고, 식사 뒤에는 진한 센차를 디저트와 함께 낸다. 말차를 반드시 격불로 마셔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필요와 맥락에 맞게 편하게 즐긴다. 일본 녹차의 구분—교쿠로, 가부세차, 센차, 말차, 반차, 호지차, 겐마이차, 쿠키차—과 그 특징, 카페인 편차가 실용적으로 정리되고, 가정의 농도가 매우 진하므로 권장 레시피 대비 찻잎을 1/3로 줄여 마시라는 현실적인 제안이 곁들여진다.
인도 장에서는 브랜드와 때루아가 함께 등장한다. 압끼빠산드, 힐카트테일즈 등 현지 브랜드의 스펙트럼을 소개하고, 다즐링·아쌈·닐기리의 지형·기후·계절에 따른 맛의 차이를 지도로 보여준다. 다즐링의 맑고 섬세한 향, 아쌈의 진하고 깊은 바디, 닐기리의 상쾌한 꽃향과 겨울 시즌의 품질 피크—“차의 맛은 땅과 계절의 언어”라는 문장이 입에 붙는다.
이 책의 장점은 감상과 지식이 바로 레시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브랜드 홍차도 컵을 예열하고, 끓인 물을 한 박자 식혀 붓고, 티백을 흔들지 않은 채 정해진 시간 안에 건지기만 해도 풍미가 살아난다. 저녁 루틴의 핵심은 카페인 관리다. 건강한 성인이 카페인을 배출하는 데 평균 5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 오후 다섯 이후에는 허브·루이보스·국내 대용차로 바꾸라고 권한다. 허브는 90℃ 안팎에서 5분 이상 길게 우렸을 때 향과 약성이 더 잘 살아나며, 단일보다 블렌딩을 활용해 약성은 강화하고 독성은 완화할 수 있다. (마테는 카페인이 높은 편이라 예외로 분류된다.) 한국 녹차는 온라인·오프라인 다원, 차 행사, 인스타그램 등에서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고, #하동녹차 #보성녹차 #제주녹차 같은 키워드로 접근하라는 팁이 진입 장벽을 낮춘다.
생활을 바꾸는 손의 동선으로서의 도구도 다정하게 안내된다. 표일배, 개완, 다완, 기목육용, 다하, 퇴수기, 차판(호승) 같은 기물은 한 잔이 품을 수 있는 온도와 향의 층을 달리한다. 국내에서 믿고 살 만한 상점들—오후반차, 부부웍스, 와드몰, 마이티룸—이 소개되고, 여행자를 위한 ‘티 지도’도 펼쳐진다. 도쿄의 실버팟·루피시아·티폰드, 파리의 콩세바투아 데 미스페레·마리아주 프레르·팔레 데 테·쿠스미·니나스·포숑 같은 스폿은 ‘차가 있는 길’을 걷는 즐거움을 확장한다. 더 멀리, 육우의 『다경』, 초의선사의 『동사송』, 에이사이의 『끽다양생기』 같은 고전의 계보와 조선 문인들(김시습·이황·정약용·김정희)과의 호흡까지 이어지며, 한 잔이 취향을 넘어 생활사와 사유의 역사에 닿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밀크티(짜이) 만드는 법과 전국 차문화 축제 정보까지 더해지니, 책장을 덮고도 어떤 잔과 어떤 물부터 시작할지 금세 감이 온다.
핵심은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태도—겉모습으로 단정하지 말고(티백도 정성으로) 시간과 대상을 존중할 것.
둘째, 어울림—차와 술, 음식, 풍경, 사람의 페어링은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균형이라는 것.
셋째, 겸손—세계의 차문화 앞에서 닫힌 취향을 열면 배움의 문이 열린다는 것.
넷째, 분별—공부차의 예술성을 존중하되 일상에서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선택을 할 것.
다섯째, 리듬—카페인을 관리하며 나에게 맞는 온도와 시간을 찾는 루틴을 세울 것.
“매일 아침 차를 마십니다”는 취향이 아니라 생활의 방식이다.
알맞은 지식과 바른 태도가 만나면, 그 한 잔이 곧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특히 카페인에 찌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거나, 늘 잠을 자도 피로하거나 건강한 생활을 원하는 분이라면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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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드의 서재' 서평단을 통해,
'스토리닷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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