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으면 인생이 쉬워진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사는 400년 지혜
김형철.김범준 지음 / 테라코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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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기대보다 준비에 더 많은 힘을 쓰기로 했다.”

“많이 보이기보다 오래 보이게 하라.”

세상에 서운해지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을 만큼 마음이 시들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책은 이렇게 묻는다.

“혹시 너무 많이 기대하고 살지는 않았나요?”

우리는 흔히 “이만큼 했으니 인정받겠지, 곧 보상이 돌아오겠지”라며 마음을 달랜다.

하지만 돌아오는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았다. 선의가 오해로 돌아오고, 밤새 만든 결과가 공허하게 사라지며, 작은 오해 하나에 관계가 무너진다. 저자는 바로 여기서 고개를 돌리게 한다. 막연한 희망과 실제 준비는 전혀 다른 일이라고. 기대는 남이 알아주길 바라며 맡겨두는 마음이고, 준비는 내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준비는 내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이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기대를 낮춘다고 해서 손을 놓으라는 뜻이 아니다. 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문 앞에서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문을 열고 한 걸음 나아가라는 의미다.

관계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모든 걸 한 번에 보여 주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보여 주어 관심과 존중을 오래 유지하는 편이 낫다. 오늘 다 보여 주면 내일 보여 줄 게 없다. 실력은 한 번에 터뜨리는 불꽃놀이가 아니라, 간격을 두고 켜지는 등불에 가깝다. 그래서 ‘고마운 사람’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조언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매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갖춘 사람으로 서라는 뜻이다. 평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나’다. 순간의 주목보다 기본기와 실력을 차곡차곡 쌓는 쪽이 결국 이긴다. 능력을 전부 털어놓기보다 ‘다음’을 기대하게 남겨두는 연출도 지혜다. 다만 침묵은 기술이지 변명은 아니다. 불필요한 말은 줄이되, 해야 할 말은 정확한 때와 방식으로 건네야 한다.

결점 대하기도 중요하다. 감추려 애쓸수록 그게 오히려 진짜 약점이 된다. 가능한 건 고치고, 고치기 어려우면 드러낼 타이밍과 방식을 골라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먼저 밝히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핵심은 자기 서사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것이다. 보여주기는 절제가 힘이고, 감추기는 도망이 아니라 전략일 수 있다. 중요한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희韜光養晦’의 태도가 도움이 된다. 다만 영영 꺼내지 않으면 무기가 아니라 소품이 된다. 생각은 깊게, 행동은 한 템포 빠르게. 내일의 완벽보다 오늘의 실행이 성과를 만든다. 지나친 신중함이 행동을 굳게 만들고, 과한 서두름이 실수를 부른다.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결국 준비된 민첩함을 뜻한다.

상하관계를 다루는 방식도 현실적이다. 윗사람과 경쟁하듯 하기보다, 빛의 각도를 조절해 함께 빛나는 편이 현명하다. 별은 스스로 빛나지만 태양과 굳이 경쟁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기비하가 아니라 빛의 수사학에 가깝다. 팀과 리더가 잘 보이게 만드는 기술은 장기적으로 내 평판을 키운다. 반대로, 상대의 체면을 무너뜨리며 나를 세우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을 고르는 문제에서는 간단하다. ‘일인지혜’보다 ‘만인지혜’에 관심을 두라고 이야기한다. 곁에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을 두면, 나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끌려간다. 네트워크의 질이 사고의 폭과 깊이를 정한다. 다만 남의 지혜만 빌리는 것이 아니라 내 기본기도 갖춰야 한다. 기본이 없으면 남이 만든 것만 소비하게 된다.

또한, 평판은 유리그릇과도 같다. 이십년을 쌓아온 것도 오 분이면 깨질 수 있다. 잠깐 주목받는 것과 오래 존중받는 걸 헷갈리지 말자. 진정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전략만으로도 곤란하다. 둘 사이의 균형을 배우는 게 평판 관리의 핵심이다.

타인을 쉽게 재단하는 습관도 점검해야 한다. 남을 평가하는 순간, 나에 대한 평가도 함께 시작된다. 반감과 질투가 올라올 때 그 감정은 내 불안과 열등감의 그림자일 수 있다. “왜 저 사람이 싫을까?”를 거울 삼아 되묻는 습관은 성장하게 한다. 타인의 결점을 들춰 위안을 얻는 건 쉽지만, 결국 내 품격을 갉아먹는다. 사실을 보더라도 서둘러 판단하지 않는 것이 나를 지켜준다.

기대의 무게를 덜고 유연함으로 채우는 일상은 타이밍을 다루는 법에서 시작된다. 운이 좋을 땐 과감하게, 나쁠 땐 손실이 커지지 않도록 물러난다. 타이밍은 하늘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내가 알아차리고 붙잡는 능력이다. 오래 망설여 기회를 놓치기보다, 준비된 상태에서 빠르게 잡는 능력이 중요하다. 선택 역시 마찬가지다. 인생은 선택의 총합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남의 평가, 과거 등)에서 손을 떼고, 통제 가능한 것(생각, 감정, 말, 행동)에 에너지를 모을 때 비로소 선택의 질이 달라진다. 완벽을 기다리며 미루기보다, ‘이 정도면 좋다’는 기준으로 결정하고 시행착오로 고치는 쪽이 더 빨리 성장한다.

삶의 역설도 인정하게 된다. 행복과 불행은 한 지붕 아래 산다. 남의 불행에서도 배울 점은 있다. 하지만 같이 무너질 필요는 없다. 연민과 나를 지키는 마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성숙이다.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안도감을 깊게 만든다는 해석을 붙이면, 괴로움은 자양분으로 바뀐다. 안전만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삶은 편안할지 몰라도 공허해지기 쉽다. 오래 남는 건 쓸모 없이 안전한 나날이 아니라, 의미를 따라 흔들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간 흔적이다.

관계에서도 균형이 중요하다.

호의는 작게, 자주 주는 게 좋다.

너무 큰 친절은 오히려 부담이 되고 빚처럼 느껴지기 쉽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크기와 타이밍을 생각해서 건네야 오래 간다. 칭찬은 여러 번 나눠서, 단호함은 꼭 필요할 때 한 번에 말하는 것이 좋다.

또한 친절을 거래처럼 계산하면 금방 티가 난다.

결국 사람 사이를 오래 지켜주는 건, 부담 없는 작은 친절이다.

갈등은 끝장을 보는 것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느슨해지는 게 낫다.

친구를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정말 관계가 끝나야 한다면 싸우기보다는 조용히 멀어지는 편이 더 현명하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굳이 싸움의 자리 자체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진짜 친구는 다퉈도 친구이고, 헤어진 뒤에도 원수로 변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마지막까지 지켜지는 관계의 품위다.

도전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나폴레옹이 “불가능이란 해보기 전까지 불가능일 뿐이다”라고 말했듯, 어려운 과제가 사람을 깨우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리더는 도전할 만한 난이도를 제시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환경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도전을 지나치게 멋있게만 볼 필요는 없다. 도전은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험이기도 하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위험을 인정하고, 작은 실험 → 배우기 → 다시 고치기의 사이클로 가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오늘 가능한 가장 작은 시도를 지금 바로 시작하는 용기다. 그게 길을 만든다.

이 책이 말하는 건 체념이 아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되, 품위를 지키면서 내 삶의 태도를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저절로 가벼워지지 않는다. 기대를 조절하고, 태도를 다듬고, 나를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벼워진다. 이 책은 ‘삶의 무게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자기 다스림’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알려준다.


'테라코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말 그대로 노출의 시대입니다. SNS에 밥 먹는 거, 술 마시는 거, 하다못해 당구 치는 것도 올립니다. 남이 나를 바라볼 때까지 말입니다. 노자는 이런 모습을 보고 충고합니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행동과 결정에 신비로움을 더하면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과 존경심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쉽지 않습니다. 모든 걸 즉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고자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말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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