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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 마음에게 말을 걸다
윤창화 옮김 / 민족사 / 2025년 8월
평점 :

《법구경 : 마음에게 말을 걸다》는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에 꺼내 읽을 수 있는 짧은 문장들의 모음집 같다. 저자는 원문을 지나치게 학술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핵심 구절을 살리고, 지금의 언어로 뜻을 풀어준다. 그래서 흐름을 따라가면 책이 마음을 다루는 기본 원리(알아차림, 절제, 누적, 무상, 자립0을 차근히 보여준다.
가장 먼저 다루는 건 욕망과 감각의 다루기다. 마음은 눈·귀·코·혀·몸·의식 같은 감각에 쉽게 끌리고, 욕망과 게으름이 결합하면 금세 쓸려 내려간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도덕적 꾸지람이 아니라 구조의 이해다. 욕망은 바람처럼 세차고, 사람은 그 바람에 쓰러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감각에 이끌리고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거센 바람이 나무를 쓰러뜨리듯 악마(욕망)가 쉽게 정복한다.” 이 말의 핵심은 애초에 마음을 절제하소 단단히 하라는 뜻이다.
이때 등장하는 비유가 ‘지붕’이다. 지붕이 허술하면 빗물이 스며들고, 마음을 닦지 않으면 탐욕이 그 틈으로 파고든다. 반대로 지붕이 단단하면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듯,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으면 탐욕이 들어오지 못한다. 이 비유 하나로 이 책의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조건 참아 내라는 것이 아니라, 틈을 점검하고 막는 현실적인 관리가 필요하단 얘기다. 이 책은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일상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게 말해주는 점이 좋다.
행동과 결과의 관계는 책 전반을 관통한다. 나쁜 일은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괴로움으로 돌아오고, 좋은 일은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기쁨을 낳는다. 악행은 열매가 맺히기 전까지 달콤하게 느껴지지만, 결국 대가가 따른다. 또 악행의 결과는 서서히 드러난다. 갓 짠 우유가 즉시 발효되지 않는 것처럼, 재 속에 숨은 불씨가 나중에 타오르듯, 시간이 지나 괴로움이 뒤따른다. 반대로 선행 역시 당장은 힘이 들 수 있으나, 결실이 오면 ‘따뜻한 행복’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여기서 책은 ‘작은 것의 누적’을 분명히 가르친다. “빗방울이 모여 큰 항아리를 채우듯, 작은 악도 쌓이면 큰 죄가 되고, 작은 선도 쌓이면 큰 복이 된다.” 선과 악을 거대한 사건으로만 보지 말고, 일상의 미세한 선택들이 모여 내일의 결과를 만든다는 원리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구분도 날이 서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이와 평생 함께 있어도 진리를 모를 수 있다. “숟가락이 음식의 맛을 알지 못하듯이.” 배우는 환경이나 표면적 친밀감이 진정한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지혜로운 이는 무엇을 하느냐. 물길잡이가 물을 흐르게 하고, 화살 장인이 화살을 곧게 만들며, 목수가 나무를 다듬듯,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다스린다. 기준은 더 분명해진다. 견고한 바위가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듯,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에도 비난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 책은 감정의 파도보다 태도의 중심을 강조한다.
관계의 원칙도 간단하게 말해준다. 나쁜 사람, 저속한 사람과 어울리지 말고, 언제나 좋은 사람과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하라. 주변의 질이 마음의 질에 스며든다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좋은 벗과의 거리는 수행의 조건이자 결과로 함께 간이어진다.
책은 목적지인 니르바나(열반)를 일찍 밝혀 둔다. 지혜로운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쉬지 않고 정진해 마침내 속박에서 벗어나 평온에 이른다. 열반은 욕망과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 마음이 평온한 상태로 풀이된다. 거대한 종교적 약속처럼 들리지만, 이 책은 이를 생활 언어로 풀어낸다. 결국 해야 할 일은 불꽃이 커지기 전에 알아차리고 끄는 것. 삶과 죽음의 강을 건너는 이는 드물지만,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은 악마의 강을 건너 평온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거창한 깨달음은 한순간에 오는 게 아니라 마음속 작은 불을 여러 번 끄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도달하는 지점이라는 뜻이다.
말(言)에 관한 가르침도 뼈대가 굵다. “천 마디 미사여구보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한마디가 낫다.” 화려한 문장보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말 한 줄이 더 큰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이어 “진정한 승리는 백만의 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말의 과장과 성취의 허세를 접고, 내면의 주권을 회복하는 쪽으로 기준을 돌리라는 요청이다.
몸과 생에 대한 부분은 차갑게 보이지만, 사실은 집착을 풀어 주기 위한 말이다. 이 육체는 시기·질투·욕심 같은 오물로 가득하고, 영원하지 않다. 늙고 병들어 결국 흙으로 돌아가며, 살아 있는 것은 언젠가 죽음을 맞는다. “늦가을 들녘의 표주박처럼 결국 산산이 흩어진다.” 여기서 책은 허무로 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삶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다음 문장들이 자연스럽다. 행동을 엄격히 하고, 자신을 절제하며 마음을 고요히 하고,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 진짜 수행자다. 수행의 정체성을 계급이나 호칭이 아니라 행동으로 규정한다.
자립의 원칙도 강하게 강조한다. 타인을 의지하지 말고 자신을 의지하라. 자기 단련이 최고의 의지처다. 타인을 위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경계도 곁들인다. 선한 명분을 내세운 자기회피를 경계하고, 자신의 완성을 위해 먼저 힘쓰라고 말한다. 여기에 “파계와 무절제는 결국 자멸로 이어지고, 악행은 쉽지만 선행은 어렵다. 그러나 악행의 대가는 혹독하고, 선행의 보상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 말은 눈앞의 쉬운 선택이 결국 더 비싼 값을 치르게 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 책이 제시하는 큰 흐름을 한 문단에 모으면 이렇다.
- 마음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맡고 느끼는 것들, 그리고 욕심에 쉽게 흔들린다.
- 집 지붕 틈을 막듯이, 생활 습관과 환경을 정리해 마음의 ‘빈틈’을 줄이면 욕심이 덜 들어온다.
-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 반드시 돌아온다.
- 작은 나쁜 일도, 작은 좋은 일도 쌓이면 큰 차이를 만든다.
- 현명함은 남을 바꾸기보다 나부터 다잡는 것, 칭찬이나 비난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힘이다.
- 말은 화려하게 길게 하는 것보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한마디가 더 낫다. 진짜 승리는 남을 이기는 게 아니라 내 충동과 습관을 이기는 것이다.
- 몸은 늙고 변한다. 수행(수양)의 기준은 직함이 아니라, 절제하고 해치지 않고 바르게 사는 행동이다.
- 남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서라. “남을 위해서”를 핑계로 내 할 일을 미루지 말라.
- 목표는 욕심과 번뇌가 가라앉은 평온한 마음 상태(열반) 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마음은 훈련될 수 있고, 번뇌의 불은 꺼질 수 있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감정과 충동이 올라오는 순간을 먼저 알아차리고, 그때 한 끗만 절제한다. 사소해 보여도 좋은 선택을 조금씩 더하고, 말은 화려함보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한마디를 고르며, 행동은 단정히 지킨다. 기대거나 핑계 대지 말고 스스로 의지를 세우는 것도 핵심이다. 특별한 비법을 찾기보다 이런 기본기를 꾸준히 반복하라고, 불교의 짧은 문장들이 단단하게 이른다. 이 책은 교리를 요약한 책이 아니라, 흔들릴 때 곁에 두고 펼치면 바로 쓸 수 있는 마음 사용설명서에 가까운 책이다.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읽기도 쉬운 편안하게 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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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의 서재’ 서평단을 통해
'민족사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23 지혜로운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쉬지 않고 정진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속박에서 벗어나 평온한 세계, 니르바나에 이릅니다. * 니르바나 nirvana : ‘니르’는 끄다, ‘바나’는 불을 뜻한다. 욕망의 불, 번뇌의 불이 모두 꺼진 상태. 마음이 평온한 상태. 깨달은 세계, 즉 완전한 행복을 뜻한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한자로는 열반이라고 표기한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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