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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로 가는 길
L. 프랭크 바움 지음, 존 R. 닐 그림, 강석주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5년 8월
평점 :

도로시는 집 근처에서 털이 복슬복슬한 아저씨를 만난다. 길을 묻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은 자연스레 옆길로 접어든다. 갈림길이 주르륵 이어진 곳에서 도로시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말한다. “일곱은 행운의 숫자니까 일곱 번째 길로 가자.” 토토가 꼬리를 흔들고,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자석을 꺼낸다. 사랑을 끌어당기는 ‘사랑자석’이다. “이걸 지니고 있으면 사람들이 좀 더 친절해질 거야.” 그렇게 세 친구의 모험이 시작된다.
비가 그치고 공기가 맑아졌을 때, 길가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소년을 만난다. 이름은 ‘빛나는 단추’. 말수는 적지만 눈빛이 환하다. 도로시가 먼저 손을 내민다. “같이 갈래?” 곧 무지개 위에서 한 소녀가 빙글빙글 내려온다. “나는 폴리크롬, 무지개의 딸이야.” 잠시 하늘의 길을 잃었다며 함께 걷자고 한다. 이제 일행은 넷. 낯선 길도 덜 무섭다. 웃음과 발자국이 보폭을 맞춘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여우들이 사는 마을이다. 멀리서 보면 사람과 비슷하지만, 가까이 보면 귀가 뾰족하고 꼬리가 살랑인다. 규칙도 까다롭다. 잠시 머무는 사이, ‘빛나는 단추’의 머리가 여우처럼 변한다. 모두 깜짝 놀란다. 이곳에서는 마을의 규칙이 사람의 모습까지 바꿔 버린다. 서둘러 길을 재촉하니 이번엔 당나귀들이 사는 곳이다. 이번에는 털북숭이 아저씨의 머리가 당나귀로 변한다. 다행히 숲속에서 “진실의 못”을 만난다. 이 물로 씻으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거짓말은 할 수 없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차례로 손과 얼굴을 씻자 여우 귀와 당나귀 귀가 사라진다. 폴리크롬이 말한다. “정직하면, 다시 자기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어.”
길은 들판과 숲을 번갈아 지난다. 어느 고개에서 그들은 머리를 떼어 던지는 무서운 스쿠들러를 만난다. “수프를 끓일 거야!” 스쿠들러가 위협하며 머리를 휙휙 던진다. 도로시는 짧게 외친다. “말은 적게, 몸은 낮게!” 털북숭이 아저씨가 사랑자석을 휘두르자 스쿠들러의 움직임이 잠깐 느려진다. 그 틈에 모두가 바위 틈으로 빠르게 몸을 숨기고, 다시 골짜기 너머로 달린다. 가슴이 쿵쾅대지만, 서로 손을 꼭 잡은 덕분에 무사하다.
멀리 초록 성벽이 보인다. 에메랄드시, 오즈마가 사는 곳이다. 사실 이 여정은 우연이 아니었다. 오즈마는 자신의 생일에 도로시를 초대하고 싶었고, 그래서 길이 살짝 비틀어졌던 것이다. 성문이 열리자 반가운 얼굴들이 달려 나온다. 양철 나무꾼, 허수아비, 겁쟁이 사자, 호박머리 잭까지. 모두 “왔구나!” 하고 맞아 준다. 성대한 생일 연회가 열리고 일행은 오늘의 모험을 차례로 들려준다. 여우 마을에서의 실수, 당나귀 마을에서의 웃음, 진실의 못에서의 맑은 물, 스쿠들러를 피해 달리던 순간까지. 이야기 끝마다 웃음이 번진다. 폴리크롬은 창가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얇은 구름 사이로 무지개의 길이 다시 열린다. “이젠 돌아가야 해. 하지만 오늘의 색은 오래 남을 거야.” 친구들은 손을 흔들며 작별한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큰 싸움이 없어도 괜찮다”는 걸 느꼈다.
크게 터지는 사건이 없어도, 친구들과 발맞춰 걸으며 서로 숨을 맞추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저자가 보여 주고 싶었던 건 “누가 이겼나”가 아니라 “누가 함께였나”이다.
그래서 마지막 축제는 끝이 아니라, 우리가 왜 같이 걸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털북숭이 아저씨의 사랑자석은 마법 같지만, 사실 친절한 태도와 비슷하다.
먼저 웃고 먼저 인사하면, 굳게 닫힌 문도 조금씩 열린다.
진실의 못은 솔직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을 가진다.
거짓말을 멈추고 사실을 말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다시 보인다.
용기는 거창한 게 아니다. 무서울 때 친구 손을 더 꽉 잡는 것, 그게 바로 용기다.
일곱 번째 길은,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고르는 일과 닮았다.
우연처럼 보인 초대에도 도로시는 “그래, 가 볼게” 하고 답한다.
그 한마디가 곧 도로시의 리더십이다. 두려워도 한 걸음 내딛고, 친구들과 끝까지 함께 걷는 마음이다.
이 책의 형식도 재미 있다.
이 판본은 장면마다 종이 색이 바뀌어 마치 다른 조명을 켠 듯 분위기가 달라진다.
버터필드로 가는 길 노랑, 짐승들의 도시 파랑, 진실연못의 주황, 에메랄드시의 초록
색의 변화로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하게 하고, 과장되지 않은 환상은 오히려 더 깊이 스며든다.
분량도 잠들기 전에 한 꼭지씩 읽기 좋아, 부담 없이 천천히 즐길 수 있다.
책을 덮고 나면 두 가지가 또렷하게 남는다.
하나는 오래된 친구들을 다시 만난 듯한 따뜻한 반가움,
다른 하나는 친절과 정직, 그리고 작은 용기가 있으면 내일의 길도 두렵지 않다는 확신이다.
길에서 잠시 나를 잃을 때가 와도, 진실의 물로 마음을 씻고(솔직해지고) 서로에게 미소를 건네면 우리는 다시 우리 모습으로 돌아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목적지보다 ‘같이 걷는 마음’이며,
그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마법은 친절·정직·작은 용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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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타그램_우주 @woojoos_story 모집,
지만지 출판사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