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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덤핑 - 생각 정리의 기술
닉 트렌턴 지음, 김보미 옮김 / 넥서스BIZ / 2025년 9월
평점 :

요즘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워서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 있곤 했다.
닉 트렌턴의 브레인 덤핑』을 집어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에게 쏟아내는 부정적인 말들이었다. “또 못 했네, 왜 이럴까, 내일도 바쁘겠지…” 같은 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결국 내 집중력을 잠식해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저자는 이런 상태를 정신적 잡동사니라 불렀다.
부정적인 자기 대화와 걱정, 두려움이 겹겹이 쌓여 진짜 중요한 것들이 흐려지는 상태.
내 머릿속 풍경이 책상 위 뒤엉킨 노트와 쌓여 있는 책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책은 그 해결책으로 ‘브레인 덤핑’을 제안한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모든 생각을 종이에 꺼내 적고, 눈으로 보며 정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흘러나왔다.
미뤄둔 일, 해야 할 연락, 설명하기 힘든 불안, 막연한 걱정까지.
종이에 적히는 순간 그것들은 안개처럼 모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목록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단계는 분류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중으로 미뤄도 되는 건 무엇인지 선을 그었다.
책 속 질문들을 따라가면서—“지금 내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지금 가장 집중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일의 이점은 무엇인가?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가?”—머릿속의 소음이 차분히 정리되는 걸 느꼈다.
이 단순한 과정 뒤에는 세 가지 태도가 숨어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과 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감각
판단을 미루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태도
감정에 휘둘릴수록 자신을 한 발 옆으로 물려 객관의 자리를 찾는 연습.
세 가지 모두 평범한 듯하지만 실제로 불안을 다루는 순간에는 큰 힘이 된다.
나 역시 “나는 불안한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낙인찍곤 했는데,
이 책은 그 문장을 “불안이 찾아왔다”로 바꾸라고 권한다.
작은 전환이지만, 불안을 정체성에서 분리해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그 손님에게 ‘덜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덜덜이에게 이름을 붙이니, 언제 나타나고 어떻게 나를 흔드는지 관찰할 수 있었고, 미리 대비할 수도 있었다. 덜덜이가 찾아오면 나는 심호흡을 길게 하고, 결과가 아닌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걱정한다고 결과가 바뀌는 건 아니야”라는 문장을 속으로 반복하면서.
그렇게 하니 불안의 그림자가 조금은 옅어지는 느낌이다.
책은 미디어 소비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질 수 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부정적인 계정을 끊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팔로우하며, 하루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훈련을 권한다. 실제로 피드의 분위기를 조금만 바꿔도 하루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경험담은 크게 공감됐다. 결국 우리가 보는 화면은 우리의 마음을 반영하고 또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오래 머물게 했다.
누구에게나 해로운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늘 노골적으로 해롭지 않고, 종종 친절과 사과의 가면을 쓰고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예전에는 이런 관계 속에서 늘 내 탓을 먼저 찾았다. 내가 예민한 걸까, 내가 오해한 건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해로운 사람의 행동에 분명한 경계를 세우라고 말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내 선택을 존중해 줬으면 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지켜지지 않으면 시간을 줄이거나 대화의 주제를 제한하고, 때로는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고 했다.
중요한 건, 해로운 행동이 나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래 미뤄둔 대화들이 떠올랐고, 내 마음속에 선명한 선이 그어졌다.
책은 용서에 대해서도 깊은 사색을 던진다.
용서는 상처를 준 사람과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났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말한다. 미련 속에서 시간을 고여 썩히기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나를 향한 용서 역시 마찬가지다. 실수를 부정하지 않고 책임을 지되, 끝없이 나를 벌주지 않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품는 것. 그것이 자기 연민이자 성장의 첫걸음이다.
책은 또 조망수용, 즉 타인의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연습을 권한다.
드라마 속 인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거나, 갈등 상황을 글로 적어본 뒤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보는 것. 이렇게 하다 보면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회색 지대를 발견하게 되고, 그 작은 여유가 결국 내 마음의 평온으로 돌아온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 안에 남은 문장은 하나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릿속 잡동사니를 기록으로 비워내야 비로소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최근 ‘브레인 덤핑’ 챌린지를 통해 노트를 손에 가까이 두고 하루의 시작과 끝에 덤핑을 하고 있다. 잡동사니를 비워내면 자리가 생긴다. 그 자리에 오늘 꼭 해야 할 일, 내일의 작은 약속, 나를 북돋아줄 한 문장을 들여놓는다. ’덜덜이’가 다시 찾아올 때면 나는 이제 조금은 준비가 된 것 같다.
불필요한 관계와 감정의 무게도, 경계와 용서를 통해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평온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펜 한 자루와 종이 한 장,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에게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그것이 전부지만, 사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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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BIZ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우리 삶에 어떤 사람이 해로운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낸 뒤, 몸이나 마음이 지치고 허탈한가? 그 사람을 만날 생각만 해도 불편하거나 꺼려지는가? 함께한 이후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이나 자신감이 줄어들었는가? 그 사람 때문에 내 신념이나 경계를 의심하게 되는가? 나의 욕구나 생각, 감정이 그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가? 해로운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계속 이어가는 것은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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