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사랑 구조법 - 자꾸 꼬이는 연애를 위한 본격 생존 매뉴얼
앨릭스 노리스 지음, 최지원 옮김 / 밝은미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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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isner Awards(COMICS계의 오스카상) Nomineee

해외 누적 조회수 1,200만의 웹툰

“어떻게 사랑하라가 아닌, ’당신답게 사랑하라’고 말하는 책”

앨릭스 노리스의 『망한 사랑 구조법』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느낀 건, 이 책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애 조언집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다. 2024년 아이스너상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해외 웹툰으로 누적 조회수가 1200만을 넘었다는 사실 때문에 관심이 갔지만, 막상 읽다 보니 단순한 연애 만화나 가벼운 조언서로만 볼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한다”는 답을 던지지 않고, “당신답게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내세운다는 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책은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읽을수록 묘하게 무게감이 있다. 우리가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받아온 연애의 법칙들을 하나하나 비틀며 보여주기 때문이다. 보통은 누군가의 강연이나 자기계발서에서 정답처럼 제시되는 연애의 규칙을 외우고 따르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런 관행 자체가 얼마나 기묘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정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다운 사랑’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혼자일 때, 함께일 때,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각 부분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담겨 있다. “사랑은 꼭 필요한가?”, “왜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서 더 어색해질까?”, “고백했다 차이면 어쩌지?”, “이상적인 연인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같은 물음들은, 읽는 내내 나 자신의 경험과 겹쳐지며 곱씹게 만든다.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사랑은 꼭 필요한가?”였다. 저자는 사랑이 인간을 온전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타인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장 가까운 사랑의 대상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점.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것, 그것이 곧 타인의 사랑을 받아들일 힘이 된다는 말이 낯설지만 묘하게 위로가 됐다. 사랑의 시작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질문, “혼자가 더 좋다면?”도 기억에 남았다. 홀로 만족스럽게 살아도 세상은 늘 연애하지 않는 사람을 불행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시선을 견뎌내며 자기만의 삶을 지켜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읽으면서 ‘사람마다 삶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렇게 크게 다가온 적이 있었나 싶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강하게 사회적 규범 속에서 길러져 왔는지 깨닫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특정한 젠더 역할을 연기하길 요구받고, 반드시 이성과 짝을 이뤄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 틀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저자는 사랑이 반드시 젠더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누군가에게 끌리는 이유는 다양하고,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큰 울림을 남겼다.

그리고 “이건 사랑인가 욕망인가?”라는 질문은 특히 솔직했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없으니 결국 대화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말, 각자가 무엇에 매료되는지 서로 이야기하며 두 사람의 감정이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조언이 인상 깊었다. 사랑을 눈치로만 알아차리길 바라는 내 습관을 돌아보게 만들고, 결국은 솔직한 대화가 관계를 지탱하는 핵심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과거 경험이 떠올랐다. 늘 같은 패턴으로 연애가 힘들었던 이유, 새로운 관계 앞에서 어색함과 불안이 따라붙었던 이유, 또 이별 후에도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순간들을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됐다. 정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는 힘이 분명히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책은 하트를 사랑의 여러 측면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그려낸다. 사랑은 부드럽고 아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날카롭고 아프기만 하다. 그 안에 갇히면 옴짝달싹 못 하게 되기도 한다. 책은 사랑을 추상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지만, 결국 현실을 마주하면 사랑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깨닫게 된다. 직접 부딪치며 실수를 통해서만 비로소 자신만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책을 읽고 나니, 부디 자기만의 사랑 방식을 찾으라는 저자의 당부가 마음속에 남았다. 그래야만 어려움에 대비하고 위험을 피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 책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 건 독자가 그 안의 이야기를 자기 삶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라는 말이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책 말미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노리스는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히며, 이 책에 그런 시각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솔직히 말한다. 원래는 풍자적인 웹툰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독자들이 바란 건 가볍고 웃긴 농담이 아니라 공감에서 비롯된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고 고백한다. “제 인생이 완벽해서 조언을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남다르고 괴상한 책을 써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게 저라는 사람이니까요.”라는 말은, 이 책 전체의 톤을 가장 잘 보여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이상하고 괴상해도 그게 곧 나라는 사실.

결국 『망한 사랑 구조법』은 망한 사랑에 매달리지 않고 나답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게 해준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갇히지 않도록 이끌고, 수많은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워진다. 사랑은 늘 어렵고 때로는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나다운 방식을 찾아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배워야 할 사랑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묻고 또 묻는 든든한 동반자였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밝은미래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특정한 젠더를 연기하도록 강요받아요.
다른 젠더처럼 꾸미거나 대담한 시도를 해 보는 건 허락되지 않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반드시 "이성"과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배워요.
조금이라도 그 길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으로 취급받으며, 손가락질 당하기도 해요.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젠더에만 집착하지만, 누군가에게 끌리는 이유에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고 있어요. 연인의 어떤 면을 중요하게 보는지는 사람마다 달라요.
젠더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여태껏 굳어진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내가 정녕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것도요.
외부의 시선과 죄책감을 이겨 내야 하니까요.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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