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센스 - 소진된 일상에서 행복을 되찾는 마음 회복법
그레첸 루빈 지음, 김잔디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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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첸 루빈의 『Life in Five Senses』는 “행복은 지금-여기에서 시작된다”는 단순하지만 오래된 명제를, 우리가 태어나 가장 먼저 체험하는 오감이라는 도구로 다시 확인해가는 책이다.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어느 날 흰자위가 충혈되고 속눈썹이 붙어 불편함을 느껴, 미루던 안과를 찾는다. 별것 아닌 검사였지만 의사는 “망막이 박리될 위험이 있으니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라”는 진단을 남겼다. 최근 친구가 망막 박리로 시력을 잃은 일이 겹쳐지면서, 병원 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때 처음으로 시력이 얼마나 당연하게 여겨져 왔는지 자각했다.

뉴욕 거리를 걸으며 ‘이 풍경이 흐려지고, 사라진다면?’이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불안이 오히려 감각을 깨웠다. 색과 소리, 냄새와 바람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지금 이 몸과 감각이 영원하지 않다는 진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행복을 추상적 감정이 아닌 오감의 경험으로 풀어내기 시작한다.

저자는 오랫동안 행복 연구자로서 ‘자기 이해’를 탐구해왔다.

“나는 누구에게 부러움을 느끼는가?”, “열 살 때 무엇을 좋아했는가?”, “지금 내 가치관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1분 규칙’이나 ‘소소한 기념일 챙기기’ 같은 작은 실천을 꾸준히 실험했다. 그러나 안과 사건 이후 그는 깨닫는다. 몸과 오감을 통하지 않는 행복은 공허하고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이라는 전통적 다섯 감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기본 감각에만 머물지 않는다. 몸의 위치를 아는 고유수용성 감각, 균형을 유지하는 평형 감각, 배고픔과 심장 박동을 알아차리는 내부수용 감각까지 확장해 다룬다.

뇌가 전체 에너지의 약 20%를 소모한다는 사실, 감각 정보를 통합해 인지를 형성하는 원리, 시각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추론, 한 감각이 줄어들면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는 보상 작용 같은 기본 지식도 일상 속 사례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예컨대,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간판을 읽고 간식을 먹으며 대화까지 나누는 순간은 뇌의 정교한 협응을 보여주고, 라즈베리 한 알을 맛보는 경험은 미각·후각·촉각이 동시에 작동해 하나의 온전한 경험으로 융합되는 감각 통합을 증명한다.

책은 감각의 개인차를 정중히 다룬다.

어떤 사람은 향에 민감하고, 누군가는 소음에 쉽게 압도되며, 다른 이는 촉감 자극으로 안정을 얻는다. 적녹 색약이나 후각 둔감, 글자에서 색을 보거나 음악에서 움직임을 느끼는 공감각까지—감각은 사람마다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 이 차이를 인정하면 가정과 직장에서 서로의 민감도를 더 잘 존중할 수 있다. “내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상대에게는 크게 들릴 수 있다”는 단순한 인식만으로도 많은 갈등이 누그러진다.

본문 중 특히 시각 장은 밀도가 높다.

저자는 지하철에서 역 안내판은 보지만 사람들의 얼굴이나 패션은 무심히 지나쳤다는 고백과 함께 앤디 워홀의 말을 인용한다. “아무도 정말로 무언가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뇌는 모든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충돌할 경우 주로 시각이 우세하다. ‘맥거크 효과’처럼 듣는 말보다 보이는 입 모양에 따라 인식이 바뀌는 현상이 그 증거다. 동시에 시각은 취약하다. 눈앞의 고릴라조차 보지 못하는 ‘무주의 맹시’, 필요할 때만 특정 정보를 드러내는 뇌의 편집 기능 등이 그렇다. 특히 인류가 얼굴을 인식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설명은 인상적이다. 우리는 수천 명의 얼굴을 구별하고, 감정을 해석하며,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얼굴까지 본다. 달 표면이나 구운 샌드위치에서 얼굴을 보는 ‘파레이돌리아’가 그 예다. 얼굴은 인식과 의미 부여의 출발점이자 생명의 상징이 된다.

청각은 주의를 묶어두는 강력한 감각이다. 루빈은 자신만의 ‘오디오 약상자’를 만들어 피곤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을 때 회복을 돕는 음악을 준비한다. 이는 추상적 명상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몸과 감정을 조율하는 실질적 방법이다.

후각은 기억과 감정의 문을 여는 열쇠다. 그는 ‘향기 노트’를 만들어 특정 냄새를 기록하고 과거의 순간과 연결한다. 향기는 변연계를 직접 자극해 오래된 기억까지 불러올 수 있다.

촉각은 안정과 친밀감을 주는 감각이다. 가족과 포옹하거나 반려견을 쓰다듬는 순간, 혹은 엘리베이터 버튼의 차가운 금속성에서조차 작은 감각의 힘을 발견한다.

미각은 가장 직접적이고 복합적인 감각이다. 라즈베리 한 알을 통해 미각·후각·촉각이 동시에 작동하는 통합 경험을 강조한다.

책의 또 다른 즐거움은 미술관 장면이다.

루빈은 큐레이터 세라와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거닐며 ‘제대로 본다’는 경험을 배운다. 오라치오 보르지아니의 자화상 앞에서, 화가는 거울 속 자신을 그리고 관객은 그의 뒷모습과 미완의 캔버스를 본다. 이는 보는 행위와 창작 행위 자체를 성찰하게 만든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에서는 촛불이 목덜미에 비친 순간을 통해 세속과 단절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넥타네보 2세를 보호하는 호루스 조각상은 신과 인간의 규모 차이를 통해 신성함과 보호의 감각을 전달한다. 이런 감상은 감각을 새롭게 훈련하는 일이 곧 세상을 새롭게 보는 훈련임을 증명한다.

이 책의 매력은 읽고 나면 당장 해볼 것들이 많다는 데 있다.

루빈은 거대한 프로젝트 대신 작고 구체적인 실험을 권한다. 한 번의 산책을 ‘색깔’만 보며 걷고, 하루를 ‘소리’만으로 기록하며, 나만의 ‘향기 노트’를 만들어 기억과 감정을 연결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오감 초상화’로 묘사하는 놀이도 소개한다. 이런 장치들은 마음챙김을 추상적 수련이 아니라 생활 기술로 바꿔준다.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내 일상의 ‘전경 감각’과 ‘배경 감각’을 나눠 보게 되었다. 주로 시각과 후각에 치중하고, 청각과 촉각은 배경으로 밀려 있지 않았나 돌아본다. 몰입을 방해하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운전할 때 라디오를 끄는 습관처럼, 감각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작은 행위가 집중의 질을 바꾸기도 한다.

각 장마다 실린 그림과 조각 작품도 인상적이다. 본문 글을 접하기 전에 저자의 취향이 묻어나는 큐레이션은 감각을 미리 깨워 주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작품을 보면 시각이 먼저 열리고, 제목을 읽으며 작품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된다. 작품의 시대와 재료를 떠올리며 후각·촉각·미각까지 기억 속에서 자연스레 깨어난다.

물론 이 책은 최신 신경과학의 깊이를 파고드는 ‘이론서’가 아니다. 에세이와 생활 실험의 경계에 있다. 그래서 기대치를 바로 세우면 더 잘 읽힌다. 엄밀한 데이터보다는 ‘생활을 바꾸는 구체적 행동’에, 대단한 각성보다는 ‘매일의 선명도’를 한 칸 올리는 데 집중한다. 아침에 문을 열며 들어오는 공기의 온도, 엘리베이터 버튼의 금속성, 퇴근길 도로에 깔리는 햇빛의 색온도를 의식하는 것—그 정도만으로도 하루의 밀도는 달라진다.

저자처럼 ‘망막 박리’라는 단어 하나에 온몸이 얼어붙었던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언젠가 후회할 몸의 감각을 미루지 않고 지금 돌보는 일이야말로 행복의 가장 빠른 길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책을 읽고 나니 이제는 해야 할 일(To do)만이 아니라 ‘느낄 일(To feel)’도 함께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본 붉은색 하나, 맡은 냄새 하나, 들은 소리 하나, 느낀 온기 하나, 맛본 음식 하나 등.

작은 기록이지만 하루가 더 넉넉하고 풍요롭게 느껴진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간다.

『Life in Five Senses』는 결국 우리 몸의 감각을 통해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법을 알려 주며,

평범한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바꾸어 주는 친절한 사용 설명서다.

'북플레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굴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패턴은 얼굴 인식을 전문으로 하는 시각 체계에 해당하는 뇌의 방추상 얼굴 영역(fusiform face area)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뇌는 얼굴을 열심히 찾아다니기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얼굴을 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하며, 달 표면에서 사람 얼굴을 보거나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에서 성모 마리아의 얼굴을 본다는 식이다(이 샌드위치는 2만 8천 달러에 팔렸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나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한쌍의 얼굴이 불안한 표정으로 "세상에, 어떡해!"라고 물하는 듯하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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