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엄마 - 번아웃된 엄마들에게
셰릴 치글러 지음, 문가람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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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릴 치글러의 『위험한 엄마』는 오늘날 엄마들이 겪는 심리적 소진, 즉 ‘엄마 번아웃(Mommy Burnout)’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임상심리학자이자 상담가로 오랫동안 청소년과 부모들을 만나왔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문제에만 집중했지만, 상담이 깊어질수록 아이를 둘러싼 부모의 상태가 아이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깨닫게 된다. 결국 그녀의 시선은 아이를 넘어 엄마라는 세계로 확장되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뉴욕시 북부에서 만난 청소년들을 떠올린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혼란스럽고 가난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아이만 돕는 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 경험은 부모, 특히 엄마의 심리적 안정을 돕지 않고서는 아이의 변화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저자의 삶 역시 이 책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불임 치료와 입양, 출산 등 개인적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상담가가 아닌 한 명의 엄마로서 불안과 외로움, 죄책감을 깊이 이해하게 만들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의 치료, 입양을 통한 새로운 가족의 탄생, 그리고 세 아이를 키우며 겪은 기쁨과 부담은 ‘엄마’라는 이름이 지닌 복잡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치글러는 스트레스가 몸과 마음에 남기는 깊은 흔적을 체험했고, 결국 엄마의 심리 상태가 아이의 성장과 가족의 건강에 직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치글러는 수많은 상담과 연구 끝에 엄마들이 겪는 공통된 문제를 ‘엄마 번아웃’이라 명명한다. 번아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과 끝없는 책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태다. 그 원인으로는 ‘좋은 엄마’라는 기준을 지키려는 완벽주의 압박, 다른 엄마와 아이와의 끊임없는 비교, 가사와 육아의 불균형,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포기하는 현실을 꼽는다. 이런 원인들은 만성 피로, 무기력, 집중력 저하, 아이에게 자꾸 화를 내는 습관, “나는 부족한 엄마야”라는 자기비난, 두통이나 위장장애 같은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진다.

책에는 구체적이고 때로는 충격적인 사례들이 등장한다. 어떤 엄마는 말대꾸하는 아이의 입에 비누를 넣었다고 고백했고, 또 다른 엄마는 타임아웃을 지키지 않는다며 아이를 차고에 가두었다. 심지어 편식하는 아이의 입에 억지로 음식을 밀어넣거나, 경찰을 불러 잡아가겠다고 협박한 일화도 있다. 저자는 이런 고백들을 전문가로서 경청했지만, 실제로 자신이 엄마가 되어 양육의 어려움을 직접 겪으면서야 평범한 엄마들이 극한 상황에 몰릴 수 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도 숨기지 않는다. 얼음을 씹는 강박에 사로잡혔던 시절, 주변 사람들은 온갖 조언과 진단을 내렸지만 정작 그녀의 고통과 갈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또 다른 상담 사례에서는, 아픈 막내의 돌봄에 전념하느라 큰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엄마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아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해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엄마의 고백, 대학 입시 과정에서 선택의 과부하로 모든 것을 내려놓아버린 엄마의 눈물, 출산 후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며 정체성을 잃었다고 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이어진다. 이 모든 경험은 ‘엄마 번아웃’이 단순히 힘든 하루가 아니라, 삶 전체를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임을 보여준다.

책은 또한 엄마에게 죄책감을 더 크게 부여하는 사회적 현실을 지적한다. 아이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면 스스로 죄책감에 빠지는 엄마와, 단호히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며 흔들리지 않는 아빠의 대조적인 모습은 성별에 따라 다른 부담이 부과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저자는 슈퍼맘이 되려는 강박이 결국 아이들로 하여금 ‘슈퍼키즈’가 되도록 압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그 스트레스는 결국 대물림되어 가족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은 문제만 지적하지 않는다. 치글러는 번아웃을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자기 돌봄을 필수로 여기고, 운동과 수면, 취미, 친구 관계를 통해 회복해야 한다. 혼자 감당하지 않고 주변과 연결되어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완벽한 엄마’가 아닌 ‘충분히 괜찮은 엄마’로 만족하는 태도를 가질 것, 그리고 엄마이기 전에 ‘나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이 네 가지가 번아웃을 극복하는 핵심 전략이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슬픔이나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끝없이 이어지고 삶 전체를 무너뜨릴 때가 문제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그리고 엄마 번아웃은 단순한 기분의 기복이 아니라 일상을 뿌리째 흔드는 심각한 상태다.

셰릴 치글러는 이 책에서 위기에 처한 엄마들의 목소리를 통해 공통의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위험한 엄마』는 단순한 위로의 책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고, 엄마들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먼저 돌보는 것이야말로 아이와 가족, 그리고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은, 아이를 지키고 싶다면 먼저 엄마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글항아리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편 미셸의 일상은 점점 더 깊은 디지털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금방 끝낼게‘라는 말은 이제 그녀의 입에 붙어사는 주문이 되었고, 아들을 향해야 할 시선은 늘 문자 메시지 속에 갇혀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와도 그녀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으로 그 소리를 완벽히 차단한 채 페이스북이라는 가상세계에 자신을 가두었다. 아들이 TV 속 ‘슈퍼 와이!‘에 홀린 듯 빠져 있는 동안, 그녀 역시 ‘길모어 걸스‘라는 달콤한 도피처에서 현실을 외면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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