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 하나, 내 멋대로 산다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서교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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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와 자존감으로 늙어간다는 것’

우치다테 마키코의 소설 『오시 하나, 내 멋대로 산다』는 78세 주인공 오시 하나의 시선을 따라가며,

노년의 삶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제목처럼 “내 멋대로” 살아간다는 선언은, 타인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품위 있게 나이 들어간다는 의미다.

이야기는 하나가 길을 걷다 잡지사 〈월간 코스모스〉의 길거리 스냅 촬영 제안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소 자신이 구독하던 시니어 잡지의 팀장이 그녀의 스타일에 반해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하자, 속으로는 감격했지만 겉으로는 담담히 응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실제보다 열 살은 젊게 보았다. 이 작은 사건은 하나가 살아온 방식을 잘 보여준다. 젊음은 다시 오지 않지만, 나를 가꾸는 태도는 나이와 상관없이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스스로 말한다. 사람은 퇴화할수록 외모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고, 운동과 식사, 외모 가꾸기가 늙음을 늦추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또 “저는 나이를 잊고 살아요”라는 말을 가장 허망한 말로 여긴다. 나이는 스스로 잊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잊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멋을 부리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방임을 경계하는 태도다. 그래서 “나이 들었으니까 신경을 써야지. 그저 편하려고 하는 게 가장 게으른 것이다”라는 말은 이 작품 전체의 핵심을 집약한다.

하지만 평온하던 일상은 남편 이와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너진다. 반려자의 부재 자체만으로도 큰 상실이지만, 더 큰 충격은 그가 남몰래 감춰온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찾아온다. 살아생전에는 언제나 믿음직하고 다정했던 남편이 사실은 다른 여자와도 인연을 맺었음을 알게 되고, 그녀는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인다. 그뿐 아니라 남편이 끝까지 붙잡았던 삶의 의미가 오직 “종이접기와 일”이었다는 사실은, 아내로서 그와 함께 걸어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는 늘 하나를 “자랑거리”라 부르며 결혼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 했지만, 죽음 이후 드러난 그림자는 결혼이라는 관계의 복잡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는 무너져 내리기보다 다시 다짐한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도 “내 멋대로,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다. 그녀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은 “의연하게 산다”였다. 시인 마사오카 시키가 병상에서 남긴 문장을 양식 삼아, 궁지에 몰렸을 때조차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배우며 남편과 함께했던 다짐을 혼자서 이어간다.

소설 속 하나의 말들은 노년의 자기 관리와 품위 있는 태도의 본질을 드러낸다.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누구나 벌레가 되는 건 아니다. 자신을 가꾸지 않는 게으름뱅이만 벌레가 된다”라는 문장은 늙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자기 방임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또 “노인이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자연스러움이다”라는 대사는, 흔히 미덕처럼 여겨지는 ‘내추럴’이 오히려 추레한 노인을 만들 수 있음을 지적한다. 하나에게 품위란 나이에 맞게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지켜내는 적극적 태도다.

그녀는 여전히 일하고 싶어 한다. “평생 일할 수 있는 행복은 어마어마한 것이다”라는 말은 일과 자립이 곧 인간의 존엄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가족과의 대화에서도 갈등은 생긴다. 자녀는 엄마가 지나치게 젊음을 좇아 애처롭게 보일까 걱정하지만, 하나는 끝내 “추레하게 나이 먹지 않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라고 말한다. 이는 겉멋을 위한 치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남편의 죽음을 지나며 그녀는 죽음과 삶의 무게를 더 깊이 실감한다. “부부는 보통 인연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은, 부모나 자식보다 더 오래 곁에 있는 존재로서 배우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동시에 하나는 고독을 정직하게 마주한다. 남편이 떠난 빈집에서 벌레조차 반가워하게 되는 순간, 삶의 덧없음을 절감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내 멋대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오시 하나, 내 멋대로 산다』는 노년의 삶을 꾸며내지 않는다. 상실과 배신, 고독과 분노가 가감 없이 드러나지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끝내 자신답게 살아가려는 태도가 노년의 품위를 완성한다. 이 작품은 청년에게는 언젠가 맞이할 노년에 대한 준비를 묻고, 중년에게는 지금부터라도 자기답게 살 용기가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그리고 자녀 세대에게는 부모를 단순히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존엄한 개인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일깨운다. 결국 이 책은 누구나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을 더 주체적으로, 나답게, 그리고 품위와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서교책방'에서 보내주신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딱히 ‘평범‘에 맞출 필요 없잖아. 우린 어차피 죽을 거니까 내가 입고 싶은 걸 입으면 그만이야."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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