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
김이경 지음 / 샘터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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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경의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는 갑작스러운 상실 앞에서 쓰기 시작한 기록이다. 저자는 평범한 주말 오후, 남동생의 전화를 통해 어머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고, 남편과도 금슬이 좋았으며, 자녀들도 제 삶을 잘 살아가고 있었던 어머니였기에 그 선택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몇 달 전 사우나 낙상 이후 급속히 무너져 내려 불안과 무기력에 시달리던 모습이 떠올랐지만, 여전히 가족에게는 믿기 어려운 죽음이었다.

책은 한 통의 전화로 시작한다. 남동생이 전화를 걸어와 “엄마가 돌아갓겼어. 엄마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어…” 엄마는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고, 남편과 금슬이 좋았으며, 자녀들도 저마다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선택은 가족에게 더 큰 충격이었다. 몇 달 전 사우나에서의 낙상 이후 어머니는 불안과 무기력에 빠져 점차 달라져 갔다. 몸이 썩는 것 같다, 벌레가 기어다닌다는 호소는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였다. 활기차고 부지런했던 일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남겨진 이들은 그저 허둥지둥할 뿐이었다.

그 상실의 절벽 앞에서 저자를 붙들어 준 것은 친정집 책장에서 무심히 펼친 책 속 문장이었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중에서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떠나기 전 딸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우연을 가정하여 이 말을 전달했다고 느꼈다. 이 문장으로 그동안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돌덩이가 치워지는 느낌이었다.저자는 “엄마를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잘 치르는 장례가 아니라 제대로 애도하는 시간”이라고 말하며 글을 쓰면서 흩어진 마음을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크게 애도하다, 추억하다, 살아가다라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첫 부분에서는 엄마의 옷장, 결혼 사진과 영정 사진, 평범한 안부 인사 같은 사소한 장면들이 하나하나 소환된다. “별일 없제?”라는 말이 사실은 일상을 지탱하던 커다란 기둥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후회가 담담히 고백된다. 언제나 자신 편일 거라 믿었던 엄마를, 정작 자신은 이해하려 하지 않았음을 뒤늦게 인정한다. 그것은 애도의 과정에서 사랑의 빚과 후회의 무게를 함께 감당해야 함을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남은 삶을 마주하는 시간이 펼쳐진다. 홀로 남은 아버지 곁에서 일상을 돌보며 그는 언젠가 자신도 그 자리에 서게 될 수밖에 없음을 자각한다.

저자는 애도는 눈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낼 준비라는 메시지가 조용히 전해진다. 저자는 결국 삶의 본질이 사랑임을 확인한다.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고, 그 기억은 앞으로의 삶을 지탱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 이른다. 그렇기에 그는 독자에게도 권한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여전히 힘들다면 그 마음을 혼자 두지 말라고.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을 붙잡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으라고.

저자의 글은 절제되어 있지만 밀도 있게 다가온다. 엄마의 옷장, 경양식집의 함박스테이크, 노쇠한 등, 사소한 사투리 한마디 같은 장면들이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부엌과 골목, 버스 정류장의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상실의 무게를 함께 체험하고, 애도가 곧 다시 삶을 준비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곁을 지켜주는 행위라는 사실, 그리고 그 행위를 반복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남은 삶을 이어갈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 책은 차분하게 전한다.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는 한 개인의 사적인 슬픔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은 누구에게나 닥칠 이별의 시간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알려주는 책이다. 부모를 이미 떠나보낸 이들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아직 곁에 있는 이들에게는 지금의 시간을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드는 거울이 된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힘을 지닌 이 책은, “사방이 온통 그리운 엄마”라는 문장을 가슴에 담고 하루를 살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곁에 있어 줄 것이다.


'샘터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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