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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뇌과학자 - 절망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대니얼 깁스 외 지음, 정지인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8월
평점 :

알츠하이머병은 많은 이들에게 공포와 무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다.
기억을 서서히 지우며 삶의 방향을 바꿔놓는 이 질환은 환자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는 바로 그 병의 최전선에 선 사람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저자 대니얼 깁스는 평생을 신경과 의사로 살아왔지만, 은퇴 후 자신이 알츠하이머병 초기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전문가이자 환자라는 이중적 위치에서 그가 기록한 이야기는,
단순한 병의 서술을 넘어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병을 ‘천천히 잠식해가는 과정’이라 표현한다. 대부분의 환자가 중등도 이상 진행된 뒤에야 진단을 받지만, 그는 유전자 검사와 임상 시험 참여 덕분에 일찍 병을 인식했다.
불운 같지만 동시에 행운이었다. 조기 발견은 치료 기회를 열어주었고, 생활습관을 개선해 병의 속도를 늦출 시간을 벌게 했다.
무엇보다도 진단은 “죽음이 멀지 않다”는 절망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더 충만하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책은 알츠하이머병의 본질과 과학적 이해를 친절히 풀어낸다.
아밀로이드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 뭉치가 증상 발현 10~20년 전부터 형성된다는 사실, 후각 장애가 초기 징후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기억의 다양한 유형(서술 기억과 절차 기억)의 차이, 그리고 APOE-4 유전자와 발병 위험의 상관관계까지 폭넓게 다룬다. 이를 통해 저자는 알츠하이머병을 단순히 ‘치매’로 한정하지 않고, 증상이 드러나기 훨씬 전 단계부터 병리학적 변화가 진행되는 복잡한 질환으로 설명한다.
이 점에서 그는 조기 개입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저자가 직접 제시하는 알츠하이머병 다섯 가지 대항 전략은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다.
1. 유산소 운동
2. 지중해식 또는 마인드 식단
3. 정신을 자극하는 활동
4. 사회적 참여
5. 양질의 수면
여기에 당뇨나 고혈압 같은 기저 질환 관리도 추가된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조언이지만,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거나 발병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는 “나중”이란 없다. 세포 변화가 시작되는 초기 단계, 즉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이 전략들을 실천해야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저자 역시 의심이 들자마자 즉각 실행에 옮겼고, 이는 그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책은 생활습관이 유전자 발현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나쁜 식습관은 노화 관련 질환의 위험성을 높이는 유전자 발현을 촉진하지만,
꾸준히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고 운동하며 수면을 잘 관리하면 유익한 유전자 발현이 강화된다.
즉, 우리의 일상적 선택이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낮추고 뇌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사례와 경험은 이 메시지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저자가 겪은 환후각증, 기억력 저하, 언어적 어려움은 질병의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또 환자와 가족이 맞닥뜨리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환자 본인이 느끼는 독립성 상실의 공포는 알츠하이머병이 단순히 의학적 질환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존엄성의 문제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저자의 태도는 끝까지 담담하다.
그는 병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과학자의 시선을 잃지 않으며,
이를 기록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책의 말미에는 독자들에게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지침이 부록 형태로 실려 있다.
특히 마인드(Mind)식단의 기초와 임상시험 결과가 정리되어 있으며,
뇌 건강에 좋은 10가지 식품을 일주일에 몇 번 섭취하면 효과적인지에 대한 권장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이는 실제 생활 속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행동 지침서로서 이 책의 가치를 높여준다.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는 알츠하이머병을 그저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희망을 환자와 가족, 그리고 사회에 전한다.
조기 진단과 생활습관의 변화, 과학적 연구와 사회적 참여는 삶의 질을 분명히 바꿀 수 있다.
저자는 전문가이자 실제로 해당 병을 경험하고 있는 환자로써 말한다.
알츠하이머병은 삶을 지워가는 병이지만, 동시에 의미 있는 삶을 지켜내기 위해 지금 행동해야 할 이유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완벽한 치료법이 없다고 해서 무기력할 필요는 없다.
운동, 식단, 지적 활동, 사회적 연결, 수면 관리—이 단순한 선택들이야말로 우리의 뇌와 삶을 지켜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는 흔히 들어온 이야기라며 흘려버리기 쉬운 조언들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 독자로 하여금 실제 변화를 시도하게 만든다. 그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두려움과 불안, 걱정과 근심을 딛고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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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퀘스트 출판사의 오퀘스트라 2기' 활동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파킨슨병 환자 가운데 적어도 80퍼센트는 어느 정도 후각이 손상되어 있으며 냄새 맡는 능력에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는 떨림이나 걷기의 어려움 같은 다른 증상이 나타나기 10년도 더 전에 생길 수 있다. 파킨슨병 환자들은 환각과 유사한 환후각증 역시 경험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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