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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의 광기 -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7월
평점 :

조르조 아감벤의 『횔덜린의 광기』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책이다. 횔덜린은 젊은 시절에는 활발히 활동했지만, 1802년쯤부터 불안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1806년에 본격적으로 ‘광기’로 불리던 상태가 드러나면서 강제 수용까지 이어지는 등 정신적인 어려움이 찾아와 세상과 단절된다. 이후 그는 36년 동안 튀빙겐의 한 탑에서 은둔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를 오래도록 ‘광기의 시기’라고 불러왔지만, 저자는 이 시간을 단순한 병의 결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횔덜린은 종종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면 체념처럼 들리지만, 저자는 그 말 속에서 다른 의미를 본다.
삶은 특별한 사건들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전체의 모습 속에서 드러난다는 뜻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우리의 일상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반복되는 하루 자체가 삶의 진짜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횔덜린이 미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광기는 어느 순간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왔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병든 인물이 아니라, “인간은 이 땅에서 시적으로 산다”는 말을 삶으로 보여준 시인으로 남는다.
“시적으로 산다”는 표현은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뜻은 단순하다.
사람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만 몸부림치거나, 반대로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말과 침묵, 습관과 반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이 부분에서 나는 카프카의 소설 『성』을 떠올렸다.
주인공 K는 성에 들어가려 하지만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너지는 것도,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성과 마을 사이 어딘가에서 계속 머물며 살아간다. 횔덜린이 탑에서 보낸 삶도 그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그저 버티고 살아가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실패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그는 인간이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오히려 삶을 더 깊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뮈엘 베케트’의 말이 떠올랐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횔덜린의 광기와 침묵은 바로 그런 실패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횔덜린의 일상적인 모습도 전해준다.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속의 격식 있는 말투, 실러의 이름이 나오자 눈빛이 밝아졌다는 증언, 괴테의 이름에는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는 일화 등이 그렇다. 이런 모습들은 그가 단순히 ‘미친 시인’으로만 남아 있던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그는 정신착란 증세가 심해지고 주변과의 소통이 끊기고, 일상 대화도 단편적이고 이상한 말투로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시를 쓰려 했고, 그 글들 속에서 언어가 무너진 상황에서 오히려 다른 방식의 말하기, 새로운 시적 표현이 가능해졌다. 이 장면에서 언어가 무너져도 끝까지 말하려는 시인의 모습에서,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해석과도 비교한다.
하이데거는 횔덜린의 시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찾았지만,
결국 신적인 구원을 기다리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저자는 횔덜린이 신의 부재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며 그것을 삶의 조건으로 삼았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릴케가 떠올랐다. ‘두이노의 비가’를 쓴 릴케는 신의 부재와 불안정한 인간 존재를 직면하고, 신 대신 예술, 시, 사랑, 인간의 내적 경험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신이 사라진 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시인이었다.
두 시인은 서로 다른 시대 사람이지만, 신 없는 세계를 시로 견뎌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횔덜린의 삶이 성공도 실패도 아닌,
단지 “버티는 형상”으로 남았다는 점이다.
그는 사회에서 잊힌 인물이었지만, 그 실패 속에서 오히려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시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횔덜린의 광기가 사실은 우리 사회 전체가 가진 더 큰 광기를 보여주려던 것은 아닐까?
『횔덜린의 광기』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렵다고 느꼈다.
그러나 책이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견뎌냈는가”라는 것이다.
횔덜린은 시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시적으로 거주하는 삶”을 살아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삶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세상에서 조금 더 시처럼,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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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권하고 그들이 그 길로 나아가도록 격려하는 사람은 아마 자신도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자신의 모범이 선한 영향을 끼치고, 그 선함이 타인에 미치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그 자체로 기쁜 것이지만, 존중받을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선으로 지지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인해 더욱 행복합니다. - 당신의 가장 헌신적인 아들 횔덜린 올림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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