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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5년 7월
평점 :

예전에 읽었던 장영희 작가의 『삶의 작은 것들로』가 참 예쁘다고 느껴졌는데,
이번에 만난 양장본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장영희의 글은 단 한 문장만 읽어도 마음속에서 생각이 자라난다.
그 문장들이 꾸며낸 듯 화려하기보다는, 읽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며 다시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시간이 지나 불현듯 마음을 멈추게 하고, 그 순간에 다시 펼쳐보고 싶은 문장들이 이 책 속에 많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글에서 묻어 나오는 따뜻함이 장영희 문체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 역시 글을 쓰면 차갑거나 딱딱해지는 문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데, 그녀의 문장에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온기가 있다. 그래서 더 닮고 싶은 문체이고,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책의 첫 번째 파트인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에서는 일상 속에서 발견한 ‘천사’ 이야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앤 타일러의 소설에 관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의 천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작가는 그 의미를 우리 주변에서 찾았다. 수해 현장에서 국수를 만들어 나른 중국집 부부, 연고 없는 노인의 집을 고쳐준 젊은 아버지와 아이, 버스 정류장에서 시각장애인을 안내한 아가씨까지, 그녀의 눈에는 모두가 ‘숨은 천사’였다. 이런 시선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 잘 보여준다.
또한 사랑을 ‘이성의 계산이 닿지 않는,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일’이라고 정의하는 대목에서는 사랑을 머리로 재단하지 않고 온전히 마음으로 느끼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진다. 일본에서 고독한 식사가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연구를 소개하며 ‘친구’(companion)의 어원이 ‘함께(com) 빵(pan)을 먹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려주는 부분은, 음식을 나눈다는 것이 단순한 식사를 넘어 관계의 본질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두 번째 파트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서는 그녀가 사랑한 영미문학 작품들이 펼쳐진다. “나를 살게 하는 근본적 힘은 문학”이라고 말하는 장영희는, 문학이 자신에게 삶의 용기와 사랑, 그리고 인간다운 태도를 가르쳐줬다고 고백한다. 신체의 기동력이 부족해진 이후에도 문학이 그녀의 삶을 채웠고, 이제는 자신이 문학의 일부가 된 듯하다고 느낀다.
윌리엄 케네디의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에서는, 방랑과 실패로 점철된 주인공 프랜시스가 과거의 기억이 담긴 트렁크를 열어보는 장면을 통해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처럼 꿈을 잃고 살아가는 부랑자들의 삶을 그린다. 작가는 “그들의 꿈을 죽인 사람은 어쩌면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이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과 연민을 일깨운다.
앨프리드 테니슨의 애가 『사우보』에서는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는 것보다, 사랑해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구절을 전한다. 사랑의 상실이 주는 아픔을 인정하면서도, 그 경험이 삶을 깊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꿈과 사랑을 잃은 세계의 허무를 이야기하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비상한 재능’이야말로 개츠비를 위대하게 만든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 속 문장은 읽는 순간뿐 아니라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이 전에 읽었던 『삶의 작은 것들로』에서 기억에 남았던 문장이 있는데 해당 문장도 공유해본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이 문장은 장영희의 다른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공통의 온기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는 단숨에 읽어버리는 책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 읽게 되면 그때그때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책이다.
그 밖에도 이 산문집에는 장영희 작가가 사랑한 수많은 문학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해석이 담겨 있다.
1부에서는 클레어 하너의 시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부터 앤 타일러의 『종이시계』와 『바너비 스토리』,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윌라 캐더의 『나의 안토니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 연설, 프랜시스 톰프슨의 『하늘의 사냥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밝은 곳』,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등 문학과 에세이, 동화, 연설문을 넘나드는 폭넓은 작품 세계가 담겨있다.
2부에서는 윌리엄 케네디의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 〈사우보〉와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에밀리 디킨슨의 시 〈만약 내가 If I can-〉,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가루〉, 랭스턴 휴스의 〈꿈><자서전><경구〉,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엄마와 하느님〉, 피천득의 『오월』, 퍼시 셸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 등 다양한 시대와 장르의 작품을 다룬다.
소개 된 작품 중 『어린 왕자』에서는 순수한 마음과 사랑의 책임을 잊은 어른들의 모습을 비추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삶 속에 되새기게 한다. 『폭풍의 언덕』에서는 격정적인 사랑과 집착이 어떻게 서로를 파괴하는지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숨은 인간 본성의 솔직함을 읽어낸다. 『서풍에 부치는 노래』를 다룰 때는 셸리의 격정적인 언어를 통해, 변화와 재생을 갈망하는 시인의 심정을 ‘삶의 계절이 바뀌는 순간’에 비유한다.
이렇듯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는 단순한 산문집을 넘어, 한 문학인의 서재를 함께 거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장영희의 시선으로 바라본 문학 작품들은 새롭게 빛나며, 그 빛을 따라가며 삶과 사랑, 희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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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사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일본에서는 고독한 식사를 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사실이 발견됐고, 그 병을 ‘고식병’이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사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친교의 기본 조건이다. ‘친구’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companion’에서 ‘com’을 ‘함께‘, ‘pan’은 빵을 의미한다. 그래서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이 바로 ’친구’였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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