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심미안 수업 - 어떻게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가
윤광준 지음 / 지와인 / 2025년 7월
평점 :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건, 이 책이 말하는 ‘심미안’이 단순히 미술관에서 명화를 감상할 때 필요한 능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작품을 마주했을 때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묻고, 그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심미안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유명하다고 해서 무조건 감탄할 필요도, 평론가의 해석에 휩쓸릴 필요도 없다. 심미안은 결국 내 안에서 길러지고 완성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책은 저자가 ‘망막박리’ 진단을 받으며 시작된다. 낯선 도시에서 운전하던 중 시야의 3분의 2가 가려졌고, 급히 귀국해 수술을 받았다. 시야는 불편해졌지만, 대신 소리·냄새·맛·촉감이 전보다 세밀하게 다가왔다. 음악 속 숨소리, 음식의 질감, 공기 중의 결까지—그는 미적 감각이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자신을 ‘딜레탕트(dilettante)’라 부른다. 이는 예술을 깊이 연구하지는 않지만 폭넓게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사진·음악·미술·글쓰기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사물에 남다른 시선을 두는 즐거움을 알게 됐고, 그 경험은 다른 어떤 일로도 대체할 수 없었다. 그는 한 분야를 깊이 파는 연구가도 필요하지만, 자신처럼 폭넓게 경험하는 사람 또한 필요하다고 말한다. 감상자라면 더 많이 아는 것으로 경쟁할 필요는 없고, 열린 마음으로 예술을 만나면 된다는 것이다.
미술 파트는 특히 흥미롭다. 일본 아다치 미술관, 파리 오르세 미술관, 간송·리움 미술관 등 국내외 공간을 소개하고, 마크 로스코, 고야, 쿠르베, 폴록, 리히터 등 서양 화가와 동양화를 함께 다룬다. 그는 추상화를 보며 “나도 그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는 작품의 진면목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온라인 이미지로는 전달되지 않는 색과 질감, 크기, 공기까지 현장에서 느끼라고 권하며, 작품을 무심히 넘기지 말고 오래 바라보며 질문과 호기심을 가져보라고 조언한다.
건축 파트에서는 기능뿐 아니라, 채광·바람·재료의 질감이 주는 온도까지 포함해 공간이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고이게 하는지 이야기한다. 사진 파트에서는 장비보다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와 빛을 기다릴 인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순간 포착은 우연이 아니라 준비와 관찰의 결과이며, ‘발견의 미’가 사진의 본질이라 말한다. 음악 파트에서는 음악이 ‘사라지는 예술’이라는 점을 짚으며, 현장에서 느끼는 강렬함을 강조한다. 그는 국악을 현장에서 경험하며 편견이 깨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산조음악 같은 독주곡을 추천한다. 디자인 파트에서는 유기그릇 ‘놋이(NOSHI)’와 백열전구만 만들어온 ‘일광전구’를 사례로, 좋은 디자인은 오래된 본질을 오늘에 살아 있게 하며, 질감·정교함·조화에서 안정감을 구현한다고 말한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작은 욕망을 잘 수용하면 그것이 불필요하게 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적절히 욕망을 해소해야 진짜 필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고, 그 과정이 좋은 취향과 삶을 만든다. 사물의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며 미술을 보는 눈, 음악을 듣는 귀가 더 자유로워졌고, 불필요한 열등감도 사라졌다. 좋아하는 것은 외부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어야 의미가 있다. 매일 쓰는 그릇을 더 아름다운 것으로, 듣는 음악을 나의 취향으로 채우는 것—이 사소한 선택들이 심미안을 만든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순간 인식과 판단은 확장되고, 무용해 보이던 것이 유용한 가치로 바뀌며 행복의 선순환이 시작된다.
『심미안 수업』은 결국 심미안이란, 일상의 결을 더 고운 방향으로 다듬어 가는 꾸준한 선택의 힘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힘을 기르는 방법을 끝까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ㅡ
'우주서평단 @woojoos_story 모집
'지완지 출판사 @jiwain_'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중국 회화에서 예술의 최고 목표를 ‘기운생동’으로 삼았다. 자연물이 인간이 만든 작품이 살아 있는 듯한 에너지를 뽐어내는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손끝에서 나온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살피는 능력 또한 인간만의 것이다. - P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