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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말 - 삶을 뒤흔든 열두 번의 만남
김민희 지음 / 미류책방 / 2025년 8월
평점 :

김민희의 『어른의 말』은 20년 넘게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700여 명의 사람을 만난 저자가, 그중에서도 자신의 삶을 깊이 흔들고 성장시킨 12명의 이야기를 고른 인터뷰집이다. 표지는 단순히 ‘어른의 말’이지만, 그 속뜻은 ‘닮고 싶은 어른의 말’이다. 나이가 어른을 만들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저자는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눈이 많은 사람, 공적 쓰임을 아는 사람, 선택과 실수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다.
저자는 청소년 시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붙잡고 있다가, 물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떤 그릇에 담겨도 형태를 바꾸되 본질을 잃지 않는 유연함, 그러나 생명을 지탱하는 강인함.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경쟁과 비교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자신을 잃고, 타인의 기준에 휩쓸려 공허해진다. 저자를 구해낸 건 ‘인터뷰’였다. 타인을 별처럼 관찰하고 탐험하는 과정에서 그는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12명의 인터뷰이는 ‘나다움, 일, 자아, 공부, 사랑, 선의, 걷기, 자유, 시간, 무해함, 괴짜력,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엮였다.
이 중 책 초반에 실린 이어령 편은 단연 가장 뜨겁고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는 그를 운명을 다하기 며칠 전, 병상에서 만났다. 여전히 맑고 단호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하루를 살아도 자기 머리로 살아야 하네.” 그는 나다움에 대해 “이미 결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되고 싶은 나를 향해 끝없이 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나답다는 건 명사형의 ‘있다’가 아니라 동사형의 ‘되다’에 가깝다. 완벽한 나에 도달하는 순간은 결코 오지 않으며, 평생 조금씩 나에게 가까워지는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곧 인간의 길이라는 말이었다.
또한, 이어령은 시선의 높이를 이야기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나이, 지위, 외형의 차이가 사라진다고 했다. 관점을 바꾸면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며, “No where”와 “Now here”의 한 끗 차이를 예로 들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볼 줄 아는 시선, 그것이 삶의 넓이와 깊이를 결정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 대화를 읽으며 저자뿐 아니라 독자도 품위 있는 어른이 남긴 마지막 지혜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책 속의 다른 목소리들도 각기 강렬하다.
김창완은 진정한 어른은 ‘채움’보다 ‘비움’에 가깝다고 말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는 여백, 나이 들수록 고집과 아집 대신 틈을 남기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는 “새들은 주머니가 없다”는 비유로, 자유롭기 위해선 마음속에 담아 두는 것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타일러 라쉬는 “한국인은 개인을 모르는 개인주의자”라는 도발적인 분석을 내놓는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알지 못한 채 정해진 성공의 궤도를 따라가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고 한다. 그는 나다움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삶의 핵심이며, 타인의 기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문화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밖에도 김민섭은 ‘선의의 연대’의 힘을, 윤홍균은 ‘잘 사랑하는 법’을, 박연준은 혼자 걷기에서 발견하는 내면의 움직임을 이야기한다. 12명의 대화는 각각 다른 색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공통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는 의지와 깊이를 담고 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저자가 과거의 미숙한 질문까지 숨기지 않고 그대로 담았다는 점이다.
“지금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 속에서도, 그는 그 시절의 자신을 분칠하지 않고 온전히 인정한다. 이는 ‘완벽보다 완전’을 추구하는 태도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어른의 말』은 정보성 인터뷰집이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 무언가에 부딪혀 멈칫했을 때, 페이지를 펼치면 작은 등대처럼 방향을 비춰 줄 수 있는 책이다.
각자의 나다움을 지키며 살아가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자기 삶의 축을 다시 세우게 만든다.
책장을 덮고 나면, ‘나다움’이라는 단어가 이전보다 훨씬 무겁고 귀하게 다가온다.
이어령이 말한 대로, 나답게 산다는 건 완벽하게 도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평생 도전하며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어른의 말』은 그 여정을 앞서 걸어간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가게 하면서,
독자 스스로도 자기만의 세계를 지어 나가게 만든다.
물처럼 유연하면서도 강인하게, 그리고 품위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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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류책방’으로 부터 『어른의 말』 퀴즈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 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나답게 산다는 건 내가 늘 얘기하는 ‘온리 원Only One’,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말고 산다는 거예요. 남과 구별됨으로써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어요."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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