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고민, 이런 책 - 인생의 고비마다 펼쳐 볼 서른일곱 권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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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의 『이런 고민, 이런 책』은 저자가 서재에서 오랫동안 간직해 온 책들 가운데, “내일 지구가 망해도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할 만큼 소중한 37권을 골라 소개하는 책이다. 하지만 단순히 좋은 책 목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각 권은 특정한 상황에서, 고민이나 감정의 무게를 덜어주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책들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단순하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인생의 어느 순간에든 한 줄의 문장이라도 마음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책일 것. 각 장 끝에 덧붙여진 ‘소소한 한마디’는 저자가 그 책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을 압축해, 읽는 이의 마음속에 오래 남게 한다.

타인에게 부탁하는 일이 어려울 때 저자는 신영복의 『청구회 추억』을 권한다. 신영복 선생이 20대 시절 동네 아이들과 ‘청구회’를 결성하며 나눈 우정을 그린 수필 속에는, ‘아이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이 담겨 있다. 첫마디는 반드시 대답이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그 질문이 아이에게 ‘도움을 줄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쪽으로 가면 서오릉으로 갈 수 있지?”라는 질문이 바로 그런 예다. 부담 없이 대답할 수 있으면서도, 대답한 아이가 누군가를 도왔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이를 “부탁도 하기에 따라선 호감을 줄 수 있다”는 배움으로 간직했다.

소신을 세우고 싶을 때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권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가부장제 속에서 제인은 순종형도, 타락한 여성상도 아닌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다. 특히 권위와 체벌 대신 칭찬과 설득으로 학생을 이끈 템플 선생의 모습은 “진정한 권위는 소통과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제인이 훗날 가정교사가 되어 아델을 가르칠 때, 학습자의 특성을 존중하고 자유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교육한 것도 이러한 경험 덕분이었다.

불행의 감정이 몰려올 때는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을 펼친다. 탄광 노동자의 비참한 삶과 자본가의 착취를 그린 이 작품은, 극도의 가난도 지나친 풍요도 모두 행복을 해친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노동자와 부르주아 모두 각자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저자는 “완전한 행복은 없다는 깨달음이 오히려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통찰을 얻는다.

기록 습관을 들이고 싶을 때는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권한다. 유년기와 청춘기를 회고한 이 작품 속에서 저자는 “책 읽기의 재미는 책 속에만 있지 않다”는 말을 발견한다. 책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고, 평범한 풍경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소한 메모라도 꾸준히 남기는 습관이 글쓰기뿐 아니라 삶 전체를 단단하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특히 인상 깊게 다룬 책 중 하나는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다. 많은 사람들이 마키아벨리를 『군주론』으로만 기억하고,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이를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한 사례를 떠올린다. 그러나 『로마사 논고』에서 드러나는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고대 로마 공화정의 정치 구조와 시민의 역할을 분석하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국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설파한다. 고향 피렌체가 전쟁과 혼란 속에 있던 시절, 마키아벨리는 로마 공화정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시대를 막론하고 같으니, 과거의 역사를 배우면 현재의 문제를 풀고 미래의 문제를 예측할 수 있다. 『군주론』의 주인공이 권력자 한 명이라면, 『로마사 논고』의 주인공은 시민 전체다. 이 책 속 마키아벨리는 냉혹한 모사꾼이 아니라 권력 집중을 경계하고 시민의 참여를 옹호하는 공화주의자다. 저자는 이 두 책을 비교하면서, 한 사람의 사상이 얼마나 다면적인지를 깨닫고,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함을 강조한다.

판단을 내리기 전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 도움이 된다. 성격이 급하고 첫인상으로 사람을 단정 짓는 주인공 봇짱은, 한쪽 이야기만 듣고 행동하다 종종 낭패를 본다. 그러나 부당함에 맞서고 약자를 돕는 의리를 지키는 모습도 있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무슨 일이든 양쪽 말을 다 들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전한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전시륜의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어느 바보의 일생』, 기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강창래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유안진 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 민병산의 『철학의 즐거움』,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스티븐 크라센의 『읽기 혁명』,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안우광의 『꼴 보기 싫은 상사와 그럭저럭 잘 지내는 법』 등 다양한 작품이 상황별로 소개된다. 각 책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런 고민, 이런 책』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책 읽기는 그 자체로 즐겁지만, 진짜 가치는 책 속의 문장을 삶 속에서 녹여내는 데 있다. 저자는 각 상황에 맞는 책을 통해 부탁을 건네는 방법, 소신을 지키는 태도, 불행을 다루는 마음, 기록의 힘, 신중한 판단력,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를 전한다.

그리고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며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는 힘이야말로 독서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임을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은, 책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인생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한 사람의 깊이 있는 독서기록이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북바이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소소한 한마디]
"무슨 일이든 간에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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