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짐 챙겨
김영희 지음 / 상상 / 2025년 7월
평점 :

이 책을 쓴 김영희 작가는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예능 PD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 『나는 가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느낌표!』, 『양심냉장고』, 『이경규가 간다』 등 손대는 프로그램마다 큰 반향을 일으키며 ‘히트 제조기’라 불렸다. 공익성과 재미를 함께 담아내는 공익 예능의 선구자로서, 오랜 시간 시청자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무대를 방송국이 아닌 세상으로 넓혔다. 전 세계를 직접 여행하며 보고, 걷고, 마주한 순간들을 기록한 책, 바로 『짐 챙겨』다. 공항의 대합실에서, 낯선 도시의 기차역에서, 사막 한가운데에서, 혹은 카페의 창가에서 그는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곱씹는다. 다양한 장소에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 그는 조용히 묻는다. ‘삶이라는 긴 여정을, 우리는 어떻게 걸어가야 할까?’
오키나와의 거리에서 만난 사자 모양의 수호신 ‘시사’는 그러한 질문을 끄집어낸 첫 장면이었다.
담장 위나 지붕 위에 나란히 놓인 암수 한 쌍의 시사는 귀엽고도 묘한 매력을 지녔다. 입을 벌리고 악을 빨아들이는 수컷과, 입을 꼭 다물고 복을 지켜내는 암컷이 함께 집을 지키는 모습은 마치 삶의 균형을 상징하는 듯하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모습이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만, 자꾸 보다 보면 정감이 간다. 어쩌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멀리서 보면 두렵고 낯설지만, 가까이서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다정한 얼굴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여행지에서 마주한 화려한 순간보다는 그 안에 숨어 있는 작고도 깊은 울림에 더 주목한다.
베트남 황제릉 앞에 선 작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죽은 뒤 무덤을 아무리 화려하게 꾸민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시황도, 람세스도 영생을 꿈꿨지만 결국 남는 건 단 하나,
‘살아 있을 때 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여행은 언제나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헝가리의 드넓은 평원, 호르토바지에서 작가는 마부의 채찍 소리에 놀라며 말 위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아야 했고, 그 하루의 끝자락에는 또 다른 고단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넘은 늦은 밤.
직원은 이미 퇴근한 뒤였고 열쇠를 방 안에 둔 채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는 결국 밖에서 꼬박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렇게 긴 하루를 마무리하며 작가는 문득 ‘시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역의 시계탑 아래에서 기차 시간표를 바라보며 흘러가는 햇살 속에 앉아 그는 깨닫는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지쳐 있어도,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시간은 늘 앞을 향해 흘러간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은 이 세상의 절대 강자다.”
아무리 고된 순간이라도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 분명한 진실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조금 더 버틸 수 있게 된다.
요르단의 와디 럼 사막에서 만난 베두인들과의 짧은 인연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그들은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고 조용히 차를 내주고 식사를 권한다.
황량한 사막에서 “오지 말라”는 말도, “떠나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 만남을 통해 진짜 환대란 말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임을 배운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잡아 주고, 먼저 뿌리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도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따뜻할까?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여정의 끝에서 작가는 오래된 아랍 속담 하나를 떠올린다.
“여행하는 자, 승리한다.”
과거에는 이동이 곧 생존을 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어디로 향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쉬운 길은 없다.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문장이 필요해졌다.
“버티는 자, 승리한다.”
움직이든 멈추든,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짐 챙겨』를 읽다 보면, 문득 가방을 챙겨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이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여행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되묻고 바라보게 만든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잘 살아야 한다.”
『짐 챙겨』는 멀리 떠나야만 만날 수 있는 진실들과,우리의 가장 가까운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삶의 가치를 조용히 일깨운다. 화려한 장면이나 특별한 사건보다 여행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더 깊은 질문, 그리고 더 오래 남는 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그 모든 인생의 풍경들을 하나씩 자연스럽게 풀어놓는다.
ㅡ
'출판그룹 상상'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그러나 이 움막도 1년 후엔 떠나야 한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물이 고갈되거나, 뜯어 먹을 수 있는 관목들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낙타도, 인간도, 이동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막의 생명체일 뿐이다. "여행하는 자, 승리한다." 아랍의 속담이다. 이동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여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투아레그도 베두인도 이동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면 지금,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한참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떨까? 이동하든 가만히 있든, 버티는 게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어디로 가든 쉬운 곳은 이제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잠시 이동해도 좋고, 죽치고 눌러앉아도 좋다. 무조건 버텨야 한다. 이기는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 "버티는 자, 승리한다." - P1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