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7 - 박경리 대하소설, 2부 3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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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7권은 인물 간의 정서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역사와 시대의 격랑 속에서 삶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간도와 평사리를 오가는 인물들은 각자의 사연과 상처를 안고 돌아오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변화, 시대의 폭력성, 관계의 균열이 중심 주제로 부상한다.

■ 환이, 돌아온 망각의 자리에 서다

초반에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환이다. 그는 동학 당시 무명 지도자로 활동했으나, 윤도집 등과의 노선 갈등 끝에 고립되었고 이후 오랜 시간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고, 그의 이름은 이미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존재였다. 하지만 어느 날, 환이는 갑작스레 평사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며 당혹감과 불신을 드러낸다. “최참판댁 사돈 팔촌이라더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퍼지고, 환이는 마치 공동체가 억눌러온 증오의 대상을 떠안은 듯한 존재가 된다. 그 결과, 그는 폭행을 당한다. 군중의 분노는 그를 무차별하게 몰아붙인다.

이 폭력은 동학의 패망, 식민지 체제의 억압, 농민들의 고통, 삶에 대한 불만—그 모든 감정이 가장 약한 고리로 향한다. 환이는 끝까지 저항하지 않는다. 맞으면서도 묵묵히 침묵을 택하고, 공동체의 비뚤어진 정의와 죄의식, 불안의 응축을 전부 감내한다. 그의 침묵은 곧 시대가 한 개인에게 씌운 죄의식의 무게이며, 인간이 짊어진 역사의 슬픈 초상이다.

■ 서희, 외면의 단단함과 내면의 균열

간도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서희는 이제 ‘길서상회’를 운영하며 번듯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내면은 여전히 공허하다. 봉순과의 재회 장면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냉정한 태도는 감정의 단절이 아닌, 감정을 숨기고 견디는 방식이다.

“자기 감정에 가장 냉혹한 사람은 최서희였다.” 이 문장은 단지 차가운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 연민, 슬픔, 죄책감—그 모든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서희의 방식이다. 성공은 했지만,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를 뿌리처럼 잡아당긴다. 그녀의 단단함은 생존의 기술이자 고립의 징후다.

■ 귀녀와 송해, 여성 서사의 어두운 그림자

귀녀는 최치수를 죽인 뒤 사라졌다가, 이제 유중의 아들 ‘두메’를 안고 장교수와 함께 다시 등장한다. 그녀는 아이의 출생 배경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적 시선과 도덕의 잣대 속에서 또다시 아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귀녀는 희생자인 동시에, 살아남기 위해 선택을 해야 했던 여성의 상징이다.

또한 공노인의 양딸 송해는 김두수에게 처녀성을 강제로 빼앗긴 후, 그의 지시를 따라 서희와 길상 등 주변 인물을 감시하고 동향을 보고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감정적으로는 공노인에 대한 배신감, 서희에 대한 거리감, 길상에 대한 애틋함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그녀의 삶은 감시자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피해자로서 이 시대의 여성들이 처한 복합적 상황을 보여준다.

■ 월선, 용이, 김훈장 — 시대의 저물어가는 빛

월선은 병에 걸려 조용히 세상을 떠나고, 용이는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이들의 서사는 소리 없이 스러지는 수많은 이들의 애정을 상징한다.

김훈장의 죽음은 더욱 상징적이다. 그는 조선의 도덕과 질서를 상징하던 인물이었지만, 나이가 들어 병약해진 몸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그의 죽음은 곧 조선이라는 하나의 가치 체계가 저물어가는 모습을 은유한다.

■ 조준구와 공노인, 몰락한 권력의 허상

7권의 마지막은 조준구의 평사리 복귀로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는 과거의 악행을 무릅쓰고 다시 돌아오지만, 더 이상 그를 환영하는 이는 없다. 공노인은 예전처럼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날카로운 통찰과 냉정한 시선으로 조준구를 맞선다.

조준구는 아직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안다. 하지만 공노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 환상을 무너뜨린다. 그들의 대화는 단순한 개인의 갈등이 아니라, 조선 말기 기득권의 몰락과 허위의식의 붕괴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공노인의 담담한 말 속에는 이 모든 구조적 폭력과 가식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담겨 있다.

■ 결론

『토지』 7권의 말미는 자연스럽게 종결을 예고한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오고, 또 누군가는 남아 있다.

그들의 감정은 겹치고 부서지며, 역사의 물살은 언제나 사람 위로 흐른다.

“역사의 무게는 사람의 어깨 위에 실린다.

그 무게를 견디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역사는 그 삶의 궤적 속에서 새겨진다.”

이 작품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감정, 선택, 침묵, 분노, 사랑, 후회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산다’.

『토지』는 그것을 잊지 않는다. 그 누구의 삶도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고, 어떤 장면도 쉽게 잊히지 않게 한다. 그것이 바로 『토지』라는 대하소설이 시대를 넘어 읽히는 이유다.


도서협찬 #채손독 을 통해 #다산북스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채손독 @chae_seongmo

다산북스출판사 @dasanbooks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애국애족이 뭡니까, 애국애족은 피가 통해야, 피란 말입니다.
싸늘하게 식은 피 말구요. 펄펄 끓는 피 말입니다. 그건 시초에 부모 형제 처자식에 시작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옛날에 미친 것은 헛미쳤던 것입니다. 그, 그렇습니다!
헛미쳤기 때문에 처자를 죽인 겁니다. 바로 그놈의 남아장부라는 허깨비 때문에요.
처자를 이, 잃은 후 저, 저는 참말로 미쳤습니다. 애국애족의 신념도 생기구요, 가차없이 한 점 주저 없이 왜놈과는 하늘을 같이 아니하겠다는 맹세를 해, 했습니다. 했지요?
그리구 비로소 비, 비로소 고통과 슬픔에서 일어서는 힘을 어, 얻는 것입니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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