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 - 코람라치오네의 윤리학
김재호 지음 / 스누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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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 물음으로 시작하는 책이다.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도덕적인 삶이란 가능한가?”

김재호의 『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은 이처럼 윤리학의 근본 물음을 던지며 시작된다.

그런데 이 물음은 철학 전공자만의 고민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은밀히 자리한 의문이다.

누군가를 배려했지만 ‘호구’ 취급을 당하고, 정의롭게 살았다 생각했는데 불편한 사람으로 낙인찍혔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이 책은 이러한 현실의 갈등 속에서, 여전히 ‘착하게(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철학자 칸트를 다시 불러낸다. 그리고 그의 대표 저서 『도덕형이상학 정초』를 바탕으로 도덕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우리 시대의 언어로 풀어낸다. 칸트는 도덕이란 감정이나 결과가 아니라, 이성의 명령에 따라 ‘의무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선한 마음이나 좋은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 행동을 했는가’이며, 그 동기가 이성적이고 보편적일 때에만 도덕적인 행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전통적인 철학 해설서와는 다르다.

각 장의 도입부에는 실제 대학 수업에서 학생들이 던진 생생한 질문들이 등장하고,

본문은 그 질문들을 바탕으로 칸트의 철학을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장의 말미에서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질문에 대한 응답을 정리한다.

이 구조 덕분에 이 책은 단순히 개념을 설명하고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독자가 철학적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며 스스로 성찰해보도록 이끄는 일종의 ‘대화형 철학 수업’ 형태다. 읽는 이는 단지 정보를 습득하는 수동적인 독자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전개해보는 능동적인 사유의 참여자가 된다.

이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칸트 윤리학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를 짚어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흔히 칸트를 ‘동기주의자’라고 부른다. 즉, 어떤 행위가 옳은가는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한 사람의 ‘동기’에 달려 있다고 여기는 관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분류가 칸트의 철학을 단순화시켜 그 핵심을 흐리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칸트가 말한 ‘동기’의 개념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기’라고 하면 ‘좋은 마음’, ‘선한 의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감정’ 같은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를 떠올린다. 하지만 칸트에게 동기란 그런 감정 차원의 것이 아니다. 칸트가 강조한 것은 “도덕 법칙을 존중하는 마음”, 즉 이성적으로 옳다고 믿는 원칙을 내면화하여 스스로의 행동 기준으로 삼는 태도다. 다시 말해, 자신이 따르기로 한 원칙이 모든 이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가를 스스로 묻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를 돕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하자. 일반적으로는 ‘착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칸트는 이 상황을 다르게 본다. 그는 “만약 모두가 같은 상황에서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판단한다면, 그 사회는 과연 신뢰 가능한가?” 거짓말이라는 행위가 하나의 보편적 규칙이 되어도 괜찮다면 괜찮다. 하지만 거짓말이 일반화 된다면, 언어의 신뢰 자체가 무너지고, 사회적 약속과 계약의 기반도 붕괴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선한 목적이 있었다 해도 그 수단이 보편화 불가능하다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

이때 칸트 윤리학의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코람라치오네(coram ratione)’, 즉 ‘이성 앞에서의 삶’이다. 이 말은 저자가 기독교의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라는 개념을 참고해 새롭게 만든 표현이다. 신이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있다고 믿었던 기독교 신자처럼, 칸트는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성의 기준 앞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외부의 감시나 법적 처벌 없이도 인간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성’은 마치 양심과도 같다. 누구도 보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도, 자기 안의 기준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자각이 있다면, 우리는 도덕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플라톤의 기게스 반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만약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반지가 있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플라톤은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칸트는 달랐다.

그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기에, 그런 상황에서도 도덕적일 수 있다고 믿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믿음을 다시 꺼내 들며 말한다.

이성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외부의 감시도 신의 눈도 필요 없다.

후반부로 가면, 저자는 니체와 칸트의 철학을 대조하며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에서 도덕과 종교를 향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특히 칸트의 윤리학을 ‘의무의 자동기계’라 부르며, 감정과 생명력을 억압하는 차가운 윤리로 평가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칸트 윤리학이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고민에서 출발한 철학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사유였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끝까지 믿은 철학이었다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

니체의 문장을 패러디한 듯 보이지만 실은 도덕을 향한 깊은 애정과 회복의 의지를 담은 말이다.

저자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도덕적인 것이다.”

착한 사람은 손해를 본다는 말이 진리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이 책은 다시 묻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말한다. 부끄럼 없는 삶은 가능하다고.

그것은 신의 감시가 아닌 스스로의 이성 앞에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삶이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도, 옳다고 믿는 길을 걷는 것.

그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 도덕의 조건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가능성을 믿는 이들에게 작은 철학적 불씨가 되어준다.

『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은 단순한 철학 입문서가 아니다. 도덕이 사라진 시대에 다시 도덕을 말하는 책, 철학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진심 어린 기록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안의 이성 앞에서 당당한가?” 그리고 그 질문은 아마도, 우리의 삶을 조금씩 바꿔가기 시작할 것이다.


'우주서평단 @woojoos_story 모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첫 문단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세 학문이 등장한다. 자연학, 윤리학, 논리학이 그것이며 이들은 다양한 분류 기준에 따라 새롭게 나누어진다. 먼저 형식적인 것과 질료적인 것에 의한 분류다. 이에 의하면 논리학은 내용과 무관하게 사고의 규칙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형식적 학문이고 나머지 두 학문은 내용을 다루기에 질료적 학문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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