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최강 용사의 재취업 1
아쿠츠 히로노리 지음, 하기오 노부토 그림, 한나리 옮김 / 시공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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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츠 히로노리의 『전직최강 용사의 재취업』 1~3권은 단순한 판타지 액션 만화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고용 구조와 노동 현실을 정교하게 은유한 서사가 담겨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단’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한때 세상을 구했던 전설적인 용사였지만,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드문 과거의 인물로 전락한 채, 길드에 다시 등록해 신입 모험가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으며, 심지어 그에게 중요한 무기였던 마법조차 봉인된 상태다. “기초 체력이 신인 모험가급”이라는 말을 들으며 체력 훈련부터 다시 시작하는 그의 모습은, 현실에서 경력 단절을 겪은 중장년층이 변화한 시장과 기술 흐름 속에서 다시 한 번 커리어를 시작해야 하는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

작품 속 세계는 ‘길드’라는 시스템 아래 모험가들이 퀘스트를 수주받아 수행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동서남북 지역을 담당하는 네 명의 ‘공작’들이 각 지역의 길드를 관리하며 퀘스트를 제공하는데, 이 구조는 현실의 취업 생태계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공작은 기업의 고용자, 길드는 잡코리아 같은 취업 플랫폼, 모험가는 구직자로 읽히며, 퀘스트는 곧 업무나 프로젝트의 은유이다. 어떤 마을이 위기에 처해 있어도, “난이도에 비해 보수가 낮다”는 이유로 아무도 구하러 가지 않으려는 장면은, 실제로 열악한 처우와 리스크가 큰 일자리가 외면받는 현실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모험가라면 보수가 높은 게 좋잖아. 뭐가 문젠데?”라는 대사와 함께 “실패 시에는 빚을 져야 한다”는 패널티 구조는 단순한 퀘스트 시스템을 넘어서 성과급제와 위험 전가가 만연한 현실의 노동 환경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성공하면 큰돈을, 실패하면 모든 책임을 지게 만드는 구조 속에서 모험가들은 더 안전하고, 실패 확률이 낮고, 고수익이 보장된 퀘스트만을 고르려 한다. 이는 당연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마을과 사람들, 즉 ‘보상이 적고 효율이 낮은’ 곳은 점점 더 외면받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단은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인다. “너희들 그러고도 모험가니?!”라는 대사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채 조건만 따지는 현대인의 태도를 향한 일침처럼 들린다. 그는 기꺼이 위험한 던전에 들어가고, 때로는 자신을 미끼로 삼는 무모함도 감수한다. 그의 선택은 비효율적이고 손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다움과 책임감, 그리고 진정한 용기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야기 속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단이 동료인 ‘앰버’를 두고 한 말이다. “바보 같을 만큼 올곧은 녀석이라 왠지 내버려둘 수 없는 놈이야.” 이 대사는 단이 앰버라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작품 전체에 흐르는 정서와 가치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바보 같을 만큼 올곧은’ 태도는 효율과 타산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유독 튀는 성격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인물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결국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작중 북부 길드 출신 모험가가 “강자는 정면으로 부딪힌다. 돌아가는 길은 약자나 하는 짓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현실의 학벌주의, 정규직 선호, 정면돌파만을 미덕으로 치는 사고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단은 다르게 움직인다. 그는 상황을 읽고, 지형을 분석하며, 동료의 능력을 파악해 우회와 전략을 선택한다. 이는 무모한 돌진보다 유연함과 통찰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직최강 용사의 재취업』은 그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진짜 강함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일하고 있는가?” “효율만 따지며 누군가의 절실함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퀘스트라는 게임적 설정을 빌렸지만, 이 작품은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만화다. 퀘스트의 난이도와 보상, 실패의 패널티 구조까지 모두가 현실 노동 구조와 닮아 있으며, 무대는 이세계 판타지지만 실제로 하고 있는 질문은 오늘 우리의 삶에 관한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선택하고 있는가. 효율과 안정만을 좇으며 누군가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다시, ‘단’이라는 인물의 무겁고도 묵직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여전히 미련스럽게 검을 휘두르고, 팔굽혀펴기를 하며, 다시 한 번 용사가 되기 위한 길을 걷는다.

그 모습이야말로, 이 만화가 말하는 진짜 ‘최강’의 정의다.


'시공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이봐! 왜 구하러 가지 않는 건데?! 응?
퀘스트 보수를 봐. 난이도에 비해 보수가 너무 낮아.
마을이 가난하니 변변한 돈을 마련할 수 없었겠지.
너희들 그러고도 모험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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