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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 이곳은 도쿄의 유일한 한국어 책방
김승복 지음 / 달 / 2025년 7월
평점 :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건, 이건 누군가의 열정적인 출판일기이자,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쓰인 책이라는 점이었다. 김승복 저자가 운영하는 일본 진보초의 한국어 전문 서점 ‘책거리’는 책에 대한 사랑,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어떻게 책이라는 매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는 바로 그런 공간을 만든 사람의 기록이다.
책은 참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어떤 손님은 책 제목도 저자 이름도 말하지 않고 그냥 ‘이런 주제의 책이요’라고 이야기한다. 직원은 해당 책을 정리하고 추천하며 며칠에 걸쳐 메일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고객이 끝내 결정한 책은 500엔짜리 중고책 한 권이다. 저자는 그 순간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것만큼 효율이 좋지 않아 “시간 대비 효율이 안 좋은데…”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점장은 “이런 분이야말로 오래도록 우리 책거리를 응원해주실 분입니다”라고 답한다. 저자는 책거리를 오픈한 이유로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으로 이때를 꼽는다. 책을 판다는 건,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걸 다시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장애가 있는 한국 작가 김원영의 책을 일본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 여정이다. 한 명의 작가를 세 명의 편집자와 두 명의 번역가가 나눠 맡아, 세 권의 책을 각각 다른 출판사에서 동시에 출간하는 프로젝트. 읽다 보면 이건 거의 ‘출판판 어벤져스’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사이보그가 되다』, 『희망 대신 욕망』—세 권을 통해 저자는 일본 독자들에게 김원영이라는 사람을 온전히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책의 결이 모두 달라서, 함께 읽어야 그 사람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출간을 앞두고는 미리 가제본을 보내고, 북토크를 기획하고, 독서회를 여는 등 홍보에도 공을 들였다. 심지어는 책거리를 찾기 힘든 휠체어 이용자들을 위해, 김원영 작가의 글을 읽고 난 뒤 “우리 서점도 계단 없는 곳으로 이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가 좋은 책을 판단하는 기준은 실행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했다. 이러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야 말로 책의 힘이 아닐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일본에 처음 소개한 출판사 쿠온의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에게는 “무명을 유명으로 만드는 일이 내 일”이라는 생각이 있다. 이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무모하다며 말릴 때, 한국 문학을 일본에 소개하겠다고 출판사를 차리고 첫 책으로 『채식주의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실제로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되었고, 쿠온은 그 시작점을 함께한 출판사가 됐다.
책 속에는 요조라는 한국의 가수이자 작가, 그리고 책방 주인에 대한 인상적인 일화도 담겨 있다. 처음에 저자는 요조를 잘 몰랐지만, 책거리에 종종 들르던 한 일본인 신사 손님이 계기가 되었다. 그 손님은 한국 여행 중 요조의 음악을 우연히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귀국 후 그녀의 책을 찾기 위해 책거리를 방문했다. 책을 구매하면서는 “한국어로 써 있어서 읽기 어렵다”며 개인적으로 번역까지 부탁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보였다.
그 일을 계기로 저자도 요조의 책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팬이 되었다. 『오늘도, 무사』,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아무튼, 떡볶이』 등 요조의 책들을 쫓아 읽으며 그녀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게 된 것이다. 이 애정은 ‘요조 코너’를 서점에 만들고, 『아무튼, 떡볶이』를 쿠온에서 일본어로 출간하기로 결정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번역은 서울에서 교환학생 경험이 있는 화요일 점장 교코 씨가 맡았고, 그녀 특유의 ‘떡볶이 사랑’이 번역 속에도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처음엔 손님의 요청으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결국 모두가 함께 좋아하게 된 작가로 이어진 이야기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겪는 일화들도 많다. 늘 와서 책만 읽고 사지 않던 손님이 사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손님에게 종이에 써서 이야기해달라고 하자 그 뒤로 편지가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 편지는 2019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그 편지를 ‘하야미상의 러브레터’라고 부른다. 책방이 단지 책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게 확 느껴지는 부분이다. 분명히 짜증이 나고 화가 날법한 상황인데도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달라고 대응한 분의 센쓰가 남다르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건, 저자가 진짜 ‘행동하는 책방지기’라는 점이다. 김원영 작가의 책을 세 출판사와 연결하고, 휠체어 이용자를 생각하며 서점의 이전을 결심하고(책방 이동이 쉬운 일이 아니라 이전은 못했지만 책방지기님이라면 여건이 되는대로 옮길 것 같다), 좋아하는 책은 곧장 편집자에게 편지를 써서 번역을 제안하고, 북토크를 열고, 책을 소개하고, 반응을 나눈다. 이렇게 바지런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바지런함이 억지로 한 게 아니라 ‘좋아서’ 한다는 점이다.
그게 이 책 제목의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책을 읽고 나면 문득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나도 좋아하는 걸 이렇게 열심히 해본 적 있었나?
나는 좋아하는 걸 행동으로 옮긴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출판계 종사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방에 관심 있는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지금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걸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 이 책이 응원을 건네는 것 같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생각만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주는 것도 같다.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한번 해보세요. 결국,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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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주간심송에서 함께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언젠가 ‘금요일 점장’인 시미즈씨가 아즈마씨의 성가신 주문을 메일로 대응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도 저자나 책 제목 없이 주제나 소재만 주어져, 숲속에서 비스킷을 찾아가는 느낌의 메일이 며칠에 걸쳐 이어지고 있었다. 수없이 메일을 주고받아 결국 주문으로 이어진 것은 단돈 500엔짜리 중고책 한 권. 이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 발생한 매출이 고작 500엔이라니… 아즈마씨도 아즈마씨지만 대응을 맡은 시미즈씨에게 ‘이건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 한마디했다. "시간 대비 퍼포먼스가 안 좋네요." 하지만 곧이은 시미즈씨의 대꾸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이런 분이야말로 오래도록 우리 책거리를 응원해주실 분입니다. 매출 금액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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