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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만날 때
엠마 칼라일 지음, 이현아 옮김 / 반출판사 / 2022년 10월
평점 :

엠마 카일라의 그림책 『나무를 만날 때』는 펼치기도 전에,
표지를 가득 채운 초록빛 나무 그림이 시선을 단숨에 끌어당긴다.
이 책의 첫인상은 단연 책의 크기에서 비롯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큰 판형의 책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장을 몇 장 넘기자 그 의문은 곧 납득으로 바뀌었다. 나무의 웅장함, 고요한 존재감, 그리고 우리가 미처 다 담지 못했던 숲속의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한 그루의 나무를 눈앞에서 마주보는 것처럼, 이 책은 우리를 깊고 넓은 자연의 품으로 안내한다.
이 책의 저자인 엠마 카일라는 나무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나무를 마치 사람처럼 의인화한 문장들이 눈에 띈다.
“나무도 생각을 할까? 무언가를 느낄까? 혹시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이런 물음들은 나무를 감정과 의식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나무를 단지 풍경의 일부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 풍경 속에서 나무 하나하나를 개별적인 존재로 포착해낸다.
그렇게 나무는 이 책 속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누군가의 오래된 친구이자 이야기의 주체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나무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뿌리 주변에 자리한 균류망을 통해 영양분과 신호를 교환하는 모습은 마치 자연 속에서 작동하는 또 하나의 인터넷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이를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고 소개한다.
이 표현을 듣는 순간, 나는 ‘월드 와이드 웹’을 떠올렸다.
인간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나무들도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서로를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병에 대한 경고, 병든 나무를 위한 영양분 공유, 생존을 위한 협력—이 모든 자연의 소통은 우리보다 더 오래된, 더 지혜로운 연결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자연과 인간 세계는 이렇게도 닮아 있다.
이 책은 단지 자연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는 데 그치지 않고, 바라보는 ‘자세’를 바꾸게 만든다.
저자는 책을 쓰기 전, 조용한 공간에서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바닷가보다 숲과 나무가 있는 조용한 장소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처음엔 다 비슷하게 보였던 나무들이, 산책을 하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서로 다른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그녀는 나무를 단순한 식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 시작했다.
“나무는 얼마나 오래 이 자리에 있었을까?”
“이 나무는 몇 살일까?”
“가지 끝에서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서 시작된 관찰은 사진과 그림, 기록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 그림책이다.
작가의 그림은 세밀하고 따뜻하다.
나무의 결, 가지의 모양, 잎의 떨림 하나하나가 담백하게 표현되어 있다.
각 페이지는 저자가 나무와 시간을 공유하며 쌓아 올린 내면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평소 무심코 스쳐 지나던 길목의 나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르게 보이기를 바란다.
어떤 나무는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켜봐 왔을 테고, 또 어떤 나무는 누군가의 추억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나무뿐일까. 여름 끝자락, 꽃 위에 앉은 나비, 포장도로 틈새를 비집고 자라는 작은 풀도 그 자체로 신비로운 존재다.
우리는 종종 이런 자연의 조각들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조금만 더 가까이, 조금만 더 천천히 다가가 보라’고.
『나무를 만날 때』는 어린이 그림책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 메시지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의 마음에 닿는다.
자연을 관찰하는 것, 그것을 통해 내 안의 감각을 되살리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이 책은 다정한 속도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책을 읽고 나서 한 그루 나무가 떠올랐다.
동네의 오래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늘 그 자리에 있어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자연을 다시 마주본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나무를 만날 때』는 그런 만남의 첫걸음을 조용히 안내해주는 책이다.
나무가 되어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며 살아보는 하루.
그럴 때 세상은 조금 더 풍요로워지는 게 아닐까.
삶이 팍팍할 때, 이런 사소한 풍경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느껴보길 바란다.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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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엘 @lael_84' 님을 통해 '반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나무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음, 그렇긴 한데, 분명한 건 단어로 말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 나무는 뿌리 주변에서 자라는 균류망을 통해서 영양분과 정보를 주고받거든. 이 신기한 소통 연결망을 ‘우드와이드웹(Wood Wide Web)이라고 부르는데, 수백 마일까지 뻗어나갈 수 있대. 나무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까? 아마 나무들은 자신들을 해치는 질병이나 곤충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받을 거야. 서로 영양분을 나눌 수도 있고, 건강한 나무들이 아파서 죽어가는 나무를 도와줄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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