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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사람들 - 위대한 예술가들의 사랑, 우정, 스캔들에 관하여
최연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5년 6월
평점 :

예술가를 생각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모두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대체로 외롭고, 가난하고, 어딘가 괴짜 같은 사람들이었다.
천재지만 늘 외로워 보이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선입견이 조금씩 깨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곁에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싸우고,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화가의 사람들(최현욱 지음)’이라는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이 책은 서양 미술사의 유명한 화가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지 그림이나 명성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관계, 함께했던 인연들에 집중한다.
누군가와 함께여서 더 빛날 수 있었던 순간들, 혹은 반대로 관계가 틀어지며 생긴 슬픔까지.
전부 그림만큼이나 진한 이야기들이다.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건 클로드 모네와 그의 아내 카미유, 그리고 후에 함께한 알리스 오슈데의 이야기였다. 모네는 아내 카미유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녀를 그렸다. 눈을 감은 아내의 얼굴을, 붓으로 조용히 담아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어가는 슬픔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 상상조차 어려웠다. 그게 작가로서의 숙명일까, 사랑의 기록일까.
나였다면, 붓을 들 수 있었을까? 이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르누아르와 알린의 이야기였다.
르누아르는 여자 모델을 참 많이 그렸고, 연애도 많이 한 화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곁에는 늘 조용히 함께해준 여인이 있었다. 바로 알린 샤리고. 모델이었고, 아내였으며 아이들의 엄마였다. 겉으로 보면 바람둥이 남편과 그를 참아준 아내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믿음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게 꼭 뜨겁고 열정적인 모습만은 아니라는 걸 다시 느낀다.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우정도 인상적이었다.
둘은 어릴 적부터 정말 친한 친구였지만, 졸라가 세잔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발표하면서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 평생 화해하지 못했지만, 세잔은 죽는 날까지도 졸라의 책을 곁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의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한 채 어긋난 우정으로 끝난 것이 슬펐다.
오랜 친구 사이였지만 그렇게 틀어진 사실 자체가 슬펐고, 동시에 마음을 진하게 나눈 인연은 감정적으로 쉽게 정리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가장 따뜻했던 이야기는 반 고흐와 외젠 보쉬의 이야기였다.
우리가 아는 반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한 화가다.
그런데 그런 고흐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그의 그림을 모아준 사람이 있었다.
외젠 보쉬. 돈을 떠나 그의 그림을 좋아했고 진심으로 응원했던 사람이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작품을 지켜주었다. 그들의 우정이 참 뭉클했다.
‘그림은 팔리지 않았지만, 그 사람을 알아봐준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 삶에서도 그런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은 거장이라고 불리는 화가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상처받고, 사랑하고, 실망하고, 외로워하고.
그 모든 감정들이 그림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한 것들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그림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책의 서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화가는 혼자 거장이 된 것이 아니다. 언제나 곁에는 그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이 참 오래 마음에 남는다. 모네 곁에는 카미유와 알리스가 있었고, 르누아르 곁에는 알린이 있었고, 반 고흐 곁에는 테오와 요한나가 있었다. 그들을 떠올리면, 예술이란 결국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그 외에도 수많은 화가들과 그들과 얽힌 특별한 인연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단지 사랑이나 연인 사이의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정, 존경, 갈등, 정치, 시대적 얽힘까지—그 폭이 넓고 다양하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화가의 삶을 넘어 그들의 내면과 그들을 둘러싼 시대, 관계, 감정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게 된다. 마치 그림 속 인물들 사이에 있었던 말과 감정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작가가 마지막에 남긴 말도 인상 깊었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만큼 예술적인 일은 없는 것 같다.”
반 고흐가 동생에게 남긴 편지 속 한 문장이지만, 이 책 전체를 감싸는 말이기도 하다.
『화가의 사람들』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누군가의 곁을 지킨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누군가의 곁에 있어준 사람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위대한 예술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책.
지금 혼자인 것 같아 외로운 이들에게, 이 책이 따뜻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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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온더페이지(경이로움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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