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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 지음 / 좋은생각 / 2025년 6월
평점 :

“누군가 인생이 아름답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할 것 같아요.
그러나 그림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파리의 골목과 하늘, 그리고 눈 내리는 거리들을 보며,
“이건 누가 그린 거지?“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면,
아마 그 그림은 <미셸 들라크루아>라는 화가의 그림일 확률이 높다.
이 책 『영원히, 화가』는 그가 직접 자신의 삶과 그림을 이야기한 자전적 그림 에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미술가의 회고록은 아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그러하듯,
그의 말 한 줄 한 줄에도 그 시절의 공기와 시간 사람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듯 하다.
“저는 과거의 파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 그림은 과거에 대한 사진이나 문서가 아닙니다.
파리의 인상에 대한 기록이지요.”
책 속에서 발견한 이 문장은,
그의 그림이 사진처럼 정교하지 않고 사실적이지 않은지를 단박에 이해하게 만든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그가 본 ‘풍경’이 아니라, 그가 간직한 ‘기억’에 가깝다.
정확한 원근법보다는 마음속 인상에 따라 배치된 건물들, 제멋대로인 크기의 인물들,
그리고 항상 어딘가 아련한 색감들
그는 그저 자신이 살았던 세계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의 유년기는 평범하면서도 풍요로웠다.
이브르라는 작은 도시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비를 잡고, 숲속에서 나무 아래의 노을을 바라보며 보낸 여름방학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낯을 가리고 몽상에 잠긴 채로 그룹에 잘 섞이지 못한 아이였다. 성적은 좋지 않았고, 보이 스카우트나 피아노 수업은 오히려 괴로움이었다. 수업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으로 느껴졌고, 상상력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곤 했다.
그런 그에게 그림은 유일한 통로였고, 열 살 때 그림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첫 스승인 브르통에게 받은 물감 상자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흔이 넘은 지금도 그는 그 스승에게서 배운 원칙을 여전히 따르고 있으며,
그림은 그에게 단지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자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그의 그림에는 전쟁 이전의 파리가 등장한다.
빈부격차를 넘어 서로를 존중하던 시절, 축제처럼 빛나던 파리의 밤,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계절, 노을빛에 물드는 거리. 그는 “전쟁 이전의 파리에는 서로를 존중하고 도와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하며,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고백한다.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은 이름도 없고, 뚜렷한 표정도 없다.
하지만 익명성 속에 깃든 다정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의 기억을 투영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몽마르뜨의 언덕에서 사랑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창문에 불을 밝힌 아파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는 미셸과 함께한 시간들을 회고하는 신미리 큐레이터의 에필로그가 실려 있다.
큐레이터는 2024년 전시 준비로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들라크루아와 직접 나눈 대화들,
그의 집과 작업실에서 마주한 인간적인 모습들을 감동적으로 전한다.
미셸은 그림을 가리키며 “이런 그림을 보면 에이전트가 충격 받을지도 몰라요”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보티첼리의 그림 앞에 서면 그림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그는 새 스튜디오를 짓고, 붓을 들고, “이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두고 봐야 알지요.”라며 캔버스를 채운다. 그림이란 그런 것이다. 정해진 형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손끝에서 태어나는 또 하나의 생. 밥 로스를 연상시키는 그의 붓질에는 과시도 없고 욕심도 없다.
오직 진심과 시간, 그리고 기억만이 녹아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한 도시의 역사와 감정까지 함께 들여다본 기분이 든다.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들라크루아는 어쩌면 다음 생에도 여전히 화가로 살아가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그는 정말 ‘영원히,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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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좋은생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저의 풍경이자 환경이었으니 자연히 파리의 명소들을 많이 그릴 수밖에요. 저는 제가 살았던 곳을 얘기할 뿐입니다.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냐고요? 명소들은 친구와도 같은 존재죠. 에펠탑, 개선문 등 모든 명소는 모두에게 속해있어요. 우리의 문화유산이죠. 이것은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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