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6 - 박경리 대하소설, 2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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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6권을 읽어 보니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책이었다.

토지 6권은 ‘간도’라는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옛 이야기지만 마치 우리가 겪은 가족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던 책이다. 이 권은 특히 사랑과 이별, 신분과 자존심, 그리고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의 민족의식까지 한꺼번에 짊어진 인물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더 깊이 와 닿는다.


무엇보다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서희다. 서희는 길상과 상현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한 사람은 하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양반 자제였다.

하지만 서희의 마음은 단순한 신분 문제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녀는 길상과의 관계에서 늘 스스로를 경계한다. 자신이 길상을 사랑하는 게 진심인지, 아니면 야망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길상 역시 서희를 사랑하지만, 서희가 자신을 ‘수단’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는 그 사랑이 순결하길 바란다. 서희가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지만, 사랑만큼은 거래의 도구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 사이의 거리는 가까우면서도 결코 닿지 못한다. 그 간극이 무척 아프게 느껴졌다.


상현은 조금 다르다. 그는 서희를 향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소유욕에 더 가깝다. ‘명색이 사대부 집 규수가 하인 놈하고 혼인이라니’라며 분노하고, 자신이 서희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한다. 서희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자존심과 자격만을 앞세운다. 결국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길상이를 “죽이고 싶다”, “함께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싶다”는 말까지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 순간 상현이란 인물의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자기 연민과 패배감에서 비롯된 감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간도의 풍경은 그런 감정들을 더욱 뾰족하게 만든다. 조선에서 밀려나온 사람들, 나라 없는 백성들이 모여 사는 땅. 이들은 청나라 땅에서 소작도 못 되는 반 머슴으로 살고, 딸과 아내조차 빚 때문에 빼앗기기도 한다. 삶은 늘 가난하고 추위는 매섭다. 먹고사는 문제 하나 해결하는 것도 버겁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송장환, 이동진, 권필응 같은 이들은 손문이 일본을 끌어들인 것에 대해 회의감을 품고, 김옥균의 실패를 떠올리며 또다시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외세를 끌어들여 안 망한 나라가 없다”는 말이 참 무겁게 들렸다.


그런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떠나지 못한다. 용이와 월선의 이야기가 그렇다. 월선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용이는 결국 그녀를 다시 찾아간다. 캄캄한 움막 속에서 그녀를 부르며 헤매는 용이의 모습은 절박하고 애틋하다. “꿈을 꾸었소”라는 용이의 고백과 “호랭이 새끼는 산으로, 오리 새끼는 물로 간다”는 월선의 대답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장면이었다. 그 대화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책 후반부로 가면 점점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진주에서는 봉순이가 ‘기화’라는 이름으로 기생이 되어 살아간다. 과거를 끊고 새로운 삶을 택한 그녀의 모습은 안쓰럽지만 동시에 강단 있어 보인다. 한 여자로서 자기 삶을 선택하고 감당해내는 모습이 멋있었다. 석이, 환이, 동학 출신 젊은이들이 등장하면서는 이 이야기가 단지 과거의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민족의 아픔을 품은 다음 세대가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는 건, 어떤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6권의 마지막 장, ‘밤에 일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 같다. 밤이란 시간은 피곤하고 외롭고, 누구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 밤에 누군가는 일을 하고, 싸우고, 살아간다. 땡땡이중, 나룻배꾼, 술집의 여자들, 의병들, 기생들까지. 낮의 세상에서 밀려난 이들이 밤을 붙들고 자신을 지켜내려 애쓴다. 그 모습이 너무 먹먹했다. 밤이 지나도 밝은 아침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이들의 삶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토지』 6권은 한 편의 사랑 이야기이자,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백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역사의 문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희와 길상의 아픔, 상현의 좌절, 용이의 애틋함, 월선의 쓸쓸함, 봉순이의 결심, 그리고 밤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모두가 이 소설 속에서 저마다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울컥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이 땅의 밤은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 없는 고요한 투쟁으로 이어져왔다는 것을!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다산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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