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
노대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I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의문을 품고 읽게 된 책이었는데 막상 다 읽고 나니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지?”

노대원의 『소설 쓰는 로봇』은 그 물음에서 시작된 긴 사유의 여정이다.

얼핏 보면 이 책은 SF 비평서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이 책은 AI, 포스트휴먼, 인류세, 사변적 소설, 디지털 시대의 창작 문제까지…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이 꽤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을수록 점점 ‘인간’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예술은 느낌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논리와 해석의 영역이기도 하지 않은가.”

감정이 없지만 감정을 흉내 낼 수 있는 AI, 논리를 넘어선 상상력을 시뮬레이션하는 기계들.

이런 시대에 작가란 어떤 존재여야 할까?

더 이상 ‘창조의 권위자’로 남을 수 없는 지금, 우리는 쓰기라는 행위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까?


김초엽 작가는 ‘러버덕 디버깅’ 이야기를 통해 ChatGPT가 글쓰기의 조력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러버덕 디버깅(Rubber Duck Debugging)’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고무 오리 인형에게 문제 상황을 설명하다가 스스로 해결책을 깨닫는 방식에서 유래한 용어다. 이처럼 ChatGPT 같은 AI에게 생각을 말로 풀어내다 보면, 막연했던 아이디어가 점점 또렷해지고, 내가 왜 이걸 쓰려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스스로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결국 글쓰기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 전에, 나 자신과의 대화다. 겉보기엔 혼자 하는 일 같지만, 그 안에서 더 깊은 사유가 자라난다.

테드 창은 AI가 만든 글을 “웹상의 흐릿한 JPG 이미지”에 비유한다. 그럴듯하지만 영혼이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반문한다. “모든 사람이 테드 창처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AI는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창작의 근육을 키워주는 ‘헬스 머신’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과연 불행한 일일까?

책 후반으로 갈수록 사유는 점점 더 깊어진다. 예컨대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라는 소설 속 세계는 AI가 문자, 목소리, 그림, 소설까지 모두 대신 만들어주는 시대를 그린다. 감정조차 자동화되고, 콘텐츠는 사용자의 취향에 딱 맞게 생성된다.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곧 소름이 돋는다. 진짜 내 감정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인간의 감정이 ‘희귀 자원’이 되는 시대, 우리는 진짜 마음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장강명의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미디어가 나에게 보고 싶은 세상만 보여주면, 나는 타인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차단’ 버튼 하나로 누군가의 현실을 없애버릴 수 있다면, 나의 현실은 점점 작고 단단한 벽에 갇히는 건 아닐까? 이 책은 그 벽을 어떻게 깨야 하는지, 문학이 어떤 다리가 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SF는 더 이상 허황된 공상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장르다. SNS, 메타버스, 챗봇… 우리의 일상 대부분은 이미 한때의 SF였다. 김보영 작가는 “공상이 가짜가 되는 시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SF는 우리에게 미래를 상상하라고 요구하는 문학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를 다르게 보라고 말해주는 문학일지도 모른다.

『소설 쓰는 로봇』은 철학서이자 에세이고, 한 편의 사변적 소설처럼 읽힌다. 무인 드론, 기후위기, 인류세, 포스트휴먼 대학… 문학이 다루기엔 너무 낯선 주제 같지만, 책은 말한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쓰는 이유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 AI 시대의 작가 역할이 궁금한 사람

- SF가 단지 장르가 아닌,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

- 문학과 기술, 예술과 윤리를 동시에 사유하고 싶은 독자

- ‘왜 쓰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자꾸만 멈칫하는 모든 창작자


문학은 기술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모사하더라도 상처받고 흔들리고 사랑하고 외로워하는 마음까지는 흉내 낼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여전히 이야기를 써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가 아직 인간이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첨단 기술이 출현하고 있다. 세상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예지력을 바란다. SF는 ‘변화의 장르’로, 현재의 변화 추세를 통해 미래를 상상한다. 이것이 외삽이라고 부르는 SF 장르 특유의 문학 기법이다. 그러니 우리는 SF를 통해 세상에는 없는 상상의 과학기술을, 하지만 어쩌면 곧 출현할지도 모르는 그런 기술을 미리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 SF가 변방의 소외된 장르에서 매력적인 문학 장르가 된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SF 작가 프레드릭 폴Frederick Pohl은 "좋은 과학소설 이야기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교통 체증까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P2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